효봉(曉峰)
【정견망】
삼국시대의 제갈공명은 촉 땅 백성들에게 은덕이 두터워 인심을 깊이 얻었다. 아마도 이런 인연 때문인지 훗날 그가 당조(唐朝)의 위고(韋皋)로 전생하여 다시 촉 땅에 와서 18년간 관리로 지냈고, 촉 땅 백성들 역시 두터운 정으로 그에게 보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실지(宣室志)》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기재되어 있다.
당조에 일찍이 검남(劍南)절도사, 태위 겸 중서령을 지낸 위고(韋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집안에서 승려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어 축하했다. 자리에 갑자기 한 호승(胡僧)이 나타났는데 용모가 매우 추했고 초청받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왔다. 위씨 집안의 종들은 모두 불쾌해하며 그를 마당의 해진 멍석 위에 앉게 했다.
잔치가 끝난 후 위씨 집안에서 유모에게 아이를 안고 나오게 하여 승려들에게 축복을 빌어달라고 청했다. 그 호승이 갑자기 계단 위로 올라오더니 아기에게 말했다.
“헤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그간 평안하셨소?”
아기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나타나는 듯하자 사람들이 보고 모두 매우 놀랐다.
위고의 부친이 물었다.
“이 아이는 태어난 지 겨우 한 달인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헤어진 지 오래되었다고 하십니까?”
호승이 대답했다.
“이는 시주께서 아실 바가 아닙니다.”
위씨 집안에서 재차 묻자 그제야 말했다.
“이 아이는 바로 제갈무후(諸葛武侯 공명)의 후신(後身)입니다. 무후는 동한 말기에 태어나 촉한의 승상을 지내며 촉 땅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이제 다시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니 장차 반드시 촉 땅의 통솔자가 되어 촉 사람들의 옹대를 받을 것입니다. 내가 예전에 검문에 머물 때 무후와 매우 우호적으로 지냈습니다. 이제 그가 위씨 가문에 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것입니다.”
위씨 일가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이하게 여겨 위고의 자(字)를 ‘무후(武侯)’라고 지어주었다. 훗날 위고는 젊은 나이에 장군의 인장을 쥐고 검남의 군대를 통솔했으며 관직이 태위 겸 중서령에 이르렀다. 촉 땅에서 18년간 재직했으니 과연 그 호승이 당년에 했던 말과 부합했다. (《선실지》 참조)
[역주: 제갈량의 사후 시호가 충무후(忠武侯)이기 때문에 이를 줄여서 흔히 ‘무후’ 또는 ‘제갈무후’라 부른다. ]
세상 사람들은 흔히 생사를 매우 무겁게 보지만 사실 생사는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가 아니다. 생명은 끊임없이 윤회전생하며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사람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것인데, 악행은 흔히 내생에 응보를 받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생전에 촉 땅 백성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베풀었기에 내생에도 복보(福報)를 얻은 것이다.
사실 사람이 몇 번을 전생하든 모두 오늘날의 길을 닦기 위함이다. 역사의 수많은 인물 역시 아마도 이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창세주는 천체 중의 수많은 신ㆍ왕ㆍ주와 그리고 더욱 거대한, 천체의 한 지역을 주재(主掌)하는 각각의 대신(大神)ㆍ대각(大覺)들이 하세하여 사람으로 전생하도록 동의했으며, 그들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봉하고, 가장 고생스럽고 가장 무능력하고 지혜가 없는, 완전히 봉폐(封閉)된 인체 내에서 고생을 겪고 소업하게 하며, 고생 속에서 정념에 의거하여 선량한 본성을 지키게 하는데, 그래야만 뭇 신과 창세주에 의해 정시(正視)될 수 있고, 비로소 미래에 승인될 수 있다.”(《인류사회는 왜 미혹의 사회인가》)
그러므로 생명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생사 자체가 아니라 선량한 본성을 지켜낼 수 있는지, 그리고 하루빨리 법을 얻어 수련할 수 있는지다. 오직 이래야만 자신의 천국 세계로 돌아갈 기연이 있으며 자신의 세계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천백 년의 기다림이 이미 눈앞에 와 있으니 결코 이 마지막 기연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5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