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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말이 있다: 인간의 등불이 별빛을 가릴 때

장수객(長袖客)

【정견망】

네바다주 블랙 록 사막의 은하수가 빛나는 밤하늘 (공유영역)

1. 추억 속의 은하수와 도시의 야경

어린시절 여름밤이면 어른들은 늘 대나무 평상을 바깥으로 옮겨 더위를 식히곤 했다. 평상에 누우면 온하늘의 별과 함께 희미한 은하수가 야경을 가로질렀다. 어른들은 견우성과 직녀성이 어디쯤인지 알려주셨고, 우리는 빽빽한 별무리 속에서 그 두 별을 찾곤 했다. 그때는 은하수가 얼마나 거대한지 몰랐으나, 하늘이 높고 별이 많으며 사람이 그 하늘 아래 누워 있다는 느낌만 가득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다시 도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렵다.

밤은 이미 깊었으나 도시는 여전히 빛난다. 가로등, 빌딩, 광고판, 자동차의 불빛이 흑밤을 회백색으로 물들인다. 올려다본 하늘은 크지만 텅 빈 것 같다. 운이 좋으면 가장 밝은 별 몇 개가 보이고, 더 많은 별은 사라진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시를 멀리 떠나 진정한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리면, 별들은 다시 하나둘 떠오른다. 날씨가 충분히 맑고 주위가 충분히 어두워질 때, 은하수는 여전히 하늘을 가로지르고 빽빽한 별들이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펼쳐진다.

이런 밤하늘 아래 서면 사람은 머리 위가 검은 막이 아니라 심오하고 끝없는 우주임을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별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한 것은 인간 세상이다.

2. 고인의 관측과 현대인의 거리감

수천 년 동안 밤이 오면 인간은 어둠과 마주하고, 별을 마주했다. 고인(古人)는 방향을 분간하려 북두칠성을 보고, 절기를 정하려 성숙(星宿)을 보았으며, 해와 달의 운행뿐만 아니라 혜성, 객성, 일식과 월식도 기록했다. 중국 역대 정사에는 특별히 《천문지(天文志)》가 설치되었고, 사마천 《사기》에는 《천관서(天官書)》가 있다. 고인의 세계에서 천문은 인간과 아주 먼 지식이 아니었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듯 사람에게는 일과 휴식이 있고, 하늘에 해와 달의 차고 이지러짐이 있듯 인간세상에는 성장과 수확이 있으며, 북두가 회전함에 따라 절기가 그에 따라 이동했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멀리 본다.

현대 천문학은 거대한 지상 망원경과 우주 망원경을 빌려 인간의 시선을 우주 극히 먼 곳까지 뻗친다. 허블 이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초기 우주에서 오는 미미한 빛을 쫓게 해준다. 빛이 공간을 건너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극히 먼 은하를 볼 때 우리는 우주 오랜 과거를 보는 셈이다.

과거 육안으로 은하 속 별만 보았듯, 오늘날 사람들은 은하 외에도 무수한 은하가 있음을 안다. 과거 밝은 별 하나를 보았다면, 오늘날은 그 스펙트럼, 온도, 구성, 운동을 분석할 수 있다. 우주 깊은 곳에서 지구로 온 미미한 빛줄기도 먼 세계를 아는 단서가 된다.

현대과학은 우주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광대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말해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의미심장한 반차가 있다. 우리는 점점 더 멀리 보지만, 하늘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우주망원경은 시선을 억만 광년 너머로 밀어내지만, 도시의 삶을 사는 사람은 집밖을 나서도 은하조차 못 볼 수 있다. 우주는 데이터 속에, 사진 속에, 망원경의 다른 쪽에 있으나, 삶의 감수성 속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3. 사람과 하늘의 연결

중국 전통문화에서 사람은 결코 天地(천지) 바깥에 따로 놓여진 적이 없다.

고인은 ‘천인상응(天人相應)’,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말하였다. 대우주에 음양이 사라지고 생김, 일월운행, 성신열부, 사시대서(四時代序)가 있듯이 인간의 생명 역시 자신만의 성장, 성쇠, 율동이 있다.

이런 천지관 속에 사람은 천지를 벗어나 독자 생존히는 생명이 아니라 더 큰 천지 운행과 연결되어 있다. 도가는 인체가 소우주라고 보며, 도가 수련에서는 안을 향해 자신을 관조하라고 말한다. 이 작은 인신(人身) 속에도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광대하고 복잡한 생명 세계가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의미심장한 말: “하늘에 별 하나, 인간에 정(丁) 하나.”

하늘의 별과 땅 위의 생명은 완전히 격절된 두 세계가 아니다. 하늘을 보는 것은 곧 나와 서로 이어진 우주를 마주하는 것이다.

바깥으로 창궁을 보고, 안으로 자신을 본다. 우주를 아는 것은 곧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옛사람들이 왜그리 진지하게 하늘을 관측했는지를 이해해보면, 한 겹의 의미가 더해진다. 그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단순히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가 아니라, 인간이 천지간에서 과연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무엇을 따르고 경외해야 하는지, 그리고 더 큰 질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였다.

고개를 들어 보면, 가옥과 길, 성읍은 천지간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그 위에는 달, 태양, 은하수, 그리고 육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있다. 이러한 척도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 보이지만, 이 작은 존재가 우주를 우러러보고 자신을 성찰하며, 심지어 별을 통해 자신의 기원을 묻는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깊이 사유해 볼 만하다.

4. 뭇별이 찬란할 때

어쩌면 언젠가 우리는 진정으로 도시를 떠나 어둠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마지막 가로등이 저 멀리 사라지고, 눈이 진정한 야색에 적응할 때. 처음엔 별 몇 개, 이어서 십수 개, 수십 개, 수백 개가 어둠에서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올려다보면 머리 위에 늘 이런 세계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인간 세상이 문득 조용해진다.

도시에서 온 주의를 빼앗던 일들——메시지 한 조각, 다툼 한 번, 득실 한 번, 하루의 분주함——이 만천성신 아래 놓이면 문득 작아진다.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척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발밑은 대지, 머리 위는 우주임을 사람이 다시 알게 된다.

인간의 등불이 밝아지며 진짜 어둠이 멀어지고, 은하가 사라지며 사람과 성공 사이의 직적 연락도 옅어졌다. 등불에 가린 것은 별빛만이 아니라 무형 중에 사람과 하늘을 갈라놓은 것이다.

인간 세상의 등불이 물러나고 뭇별이 다시 나타날 때, 오랫동안 가려졌던 사람과 하늘 사이의 그 연결도 다시 이어지게 된다.

그 순간, 사람이 다시 보는 것은 자신이 진정한 고향: 천향(天鄉)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