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내가동화를 쓰기 시작한지 한참 되었다. 그동안 많은 심성의 단련이 있었고 수련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었다. 왜냐면 대법제자가 걷는 것은 수련의 길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목적은 바로 법 실증을 위함이지 속인중의 무엇을 유추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류도덕이 미끄러짐에 따라 문예도 함께 미끄러졌으니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 좋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선택하며 미래에 진선인의 가치 이념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속인중의 많은 동화는 인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대개 왕자와 공주의 애정이야기 등을 묘사한 것이다. 듣기에는아주 좋고 사람을 향상시키는 것 같지만 수련인이 보기에는 변이된 것이다. 사람은 이미 길을 잃었으며 정을 위해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 이런 것을 위해 세상에 내려온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의의는 절대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면 수련인의 책임은 바로 이렇게 미혹중의 사람을 불러 일깨우는 것이며 그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의와 사람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모든 중생이 법을 위해 온 목적일 것이다.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하는 행위나 생각하는 것은 모두 이것을 실증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내가 한편의 동화를 쓰고 나서 정견망에 발표할 때 편집부에서는 나의 글 뒤에 두글자 ‘계속’ 이라는 단어를 붙여 나는 매우 압력을 느꼈고 좀 원망하기도 했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그저 이따금 짧은 문장을 쓸 뿐인데 왜 나더러 ‘계속’하라는 것일까. 나는 장편 소설을 쓸 줄 모르며 그렇게 큰 흉금이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
마음이 좀 가라앉은 후 불평하는 마음이 점점 평정되었다. ‘큰 문장을 쓸 수 없으면 짧은 글을 좀 써보자. 동화는 아이들이 말하는 이야기 일 뿐이다. 재미있고 법을 실증하며 사람을 계발할 수 있는 줄거리를 적어 내려가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쉽지 않겠는가?’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서 천천히 어떻게 동화를 쓸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초기 얼마간은 한편의 동화를 쓸 때마다 정견망에 오른 후 며칠 동안 나의 마음은 안절부절 했다. 속으로 매우 비관적인 정서가 맴돌고 있었다. 내가 쓴 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문장 수준도 높지 않고 정말 부끄러웠다. 어떻게 처음에 동화를 쓸 생각을 했을까? 동화를 쓰는 이런 일은 속인 작가들과 비교해 볼 때 경험도 없고 미숙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정말 외로웠고 혼자 뿐 이었으며 마치 황량한 광야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속으로 자신이 없었다. 그런 자괴감 자신감의 결핍이 때때로 밀려왔다. 나는 이런 사상은 부면적이며 승인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가치 있는 것을 써내지 못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웠는데 역시 체면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한동안의 단련을 거쳐 이런 생각이 점점 사라지고 차츰 머리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왜냐면 나는 대법제자이며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쓴 그런 동화는 거의 아이가 제 마음대로 찾은 것이었다. 대개 나는 선택을 하지 않았고 당시 이렇게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이 더 좋다고 느꼈다. 나중에 내 글이 법실증 하는 주제를 떠날 수 없음을 느껴 매 편의 동화를 쓸 때 거의 다 수련과 연관된 것을 사용했다.
얼마 전 나는 3편의 동화를 연달아 썼는데 하나는 발표하지 않았다. 매번 내가 발표하지 않은 이유를 잘 생각하고 동시에 다음 편의 방향을 확정하고 이후 동화의 사로를 정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의기소침해지고 이전의 그런 비관적인 정서가 또 올라와 많은 시간을 헛되이 썼다고 느껴 발표할 수 없었다. 나는 심성을 제고해야 해 발표할 마음을 구해보자. 먼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동화 쓰는 일을 잠시 멈추고 나중에 썼다.
멈춘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청류》상에 내가 쓴 동화를 하나 보냈는데 제목만 바뀌어 있었다. 내가 쓴 동화가 발표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는 사부님께서 내가 계속 붓을 들어 써 나가라고 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깨달은 바를 말하자 아이도 다시 노력하겠다고 했다. “얘야, 이번엔 동화를 몇 개 찾으면 우선 내게 대충 줄거리를 말해줄래? 그래서 함께 선택하여 법실증과 관련이 있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자.”
나는 또한가지 원칙을 말했다. “그저 단순하고 한번 하하 웃으면 그만인 그런 영혼 없는 글을 선택하지 말고 가능한 한 재미있고 사람들을 계발시킬 수 있는 글을 선택하자. 신전문화의 내포가 있는 것은 예술적인 의미가 있다.”
아이는 내 뜻을 알아듣고 재빨리 두편을 썼는데 나는 그중 하나를 선택해 정견망에 보낸 후 마음이 불안했다. 발표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또 써 말아? 글이 채택되는 명예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글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만일 쓴 것이 인정을 받지 못 한다면 나는 쓸 아이디어가 없었다. 어쩌면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2,3일 기다렸는데 아직 내 글이 발표되지 않았다. 아- 가망이 없구나! 속으로 탄식하며 사부님께 ‘제자는 정말 우둔하여 만일 제가 쓴 글의 방향이 옳지 않거나 쓴 것이 법 실증을 할 수 없거나 동화라는 이런 형식으로 법 실증을 하는 것이 엄숙하지 않다면 제발 발표하지 않게 해주세요.’ 네가 한때 흥분하여 동화를 쓰기 시작한 것 때문에 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면 안 됩니다. 아마 나는 마땅히 붓을 놓아야 할 사람은 아닌지? 당시 내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4,5일 후 우연히 사이트를 보니 동화가 발표되어 있었다. 내 마음은 매우 평온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시며 계속 써 내려 가라고 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동시에 나도 글 쓰는 방향을 정했고 이후에 어떻게 써야할지 알았다. 자료를 선택하는데 나는 아이에게 많은 동화를 구하라고 했고 그중 좀 다양한 내포가 있으며 법 실증을 할 수 있는 것을 쓰라고 했다. 아이도 인내심을 키워 머리를 써가며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리 둘은 소재 선택에 신중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했는데 많은 부족이 나타났다.
우리가 심성이 제고된 후 자신과 방향을 찾았다. 이틀 전 아이가 법을 외울 때 사부님은 아이에게 엄지를 치켜세우셨다. 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사부님께서 왜 너를 칭찬하시니?” 아이는 “사부님의 엄지에 ‘동화를 고른 게 훌륭하다’고 쓰여 있어요.”라고 대답했다.그래서 나는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소재를 선택하여 글을 쓰게 하신다. 우주공간이 이렇게 복잡한데 층층에 다 생명이 있다. 모든 생명이 다 이야기가 있는데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만일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법 실증 하는 게 아니고 우리는 그저 메가폰이나 붓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단련을 거쳐 나는 자신이 생겼다. 이상은 동화를 쓰는 과정의 작은 깨달음이다.
문장발표: 2013년12월28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5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