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대법제자
【정견망】
회화(繪畫)의 형식으로 대법(大法)의 아름다움을 실증할 수 있고 또 그 속에서 회화에 대한 인식과 창작 경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큰 영광이자 행복이다. 이 그림은 전통적인 청록(靑綠)산수화를 사용해 우의(寓意)적 형식으로 수련의 내함을 표현하고 진상을 알린다. 이 작품은 작자 평생 최초의 거대한 산수화 창작이었다. 창작과정에서 대법의 깨우침을 깊게 받았고 작품에 기맥(奇脈)이 흘러넘치며 에너지가 순정해서 나 자신마저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사존의 자비하신 가호와 끊임없는 계발에 우선 감사드린다.
중국화는 역대로 ‘뜻(意)’의 표현을 위주로 했고 문화 속에서도 자연환경에 큰 내함을 부여했다. 예를 들면 대나무의 절조(節操), 큰 산의 흉금 등은 역대 문인들이 기리고 표현해왔다. 대법을 수련해서 법리를 분명히 알게 된 후 나는 우주 중에는 보다 높은 이치와 보다 높은 경지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또 예술은 천국(天國)에서 내원했으며 회화의 내원은 신(神)이 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내함에서도 마땅히 신을 위주로 표현해야 한다.
이 그림은 구도에서 거대한 산체(山體)의 일부만을 그렸다. 전체를 볼 수 없는 큰 산으로 대법(大法)대도(大道)의 무변무제(無邊無際)함을 비유하는데 우리는 단지 그 일부만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산의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높이를 알 수 없음을 비유하고, 산의 바닥을 볼 수 없는 것은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음을 비유한다. 또 원경(遠景)에 멀리 작은 산이 있고 산위에는 장엄한 보탑이 있는 것은 아득히 멀어 다다를 수 없음을 비유한다.
산속에는 또 폭포가 흐르고 계곡에서 담(潭 못)을 이룬다. 담의 모양이 태극과 흡사한 것은 우주 진리가 도가(道家)에서 체현된 것이다. 태극 위의 폭포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오지만 그 기원은 알 수 없는데 이는 태극 위에 무극(無極)이 있고 대법(大法)은 불도(佛道)를 포함함을 비유한다. 때문에 운무의 형식으로 만(卍)자 부호의 형상을 그렸다.
이런 세부적인 것들은 창작하는 과정에 의도했다기보다는 저절로 붓이 움직인 것으로 쉽게 보아낼 수 없다. 또 이것을 표현하자면 회화 기교도 필요한데 세밀하게 들여다봐야만 볼 수 있다.
근경(近景)의 절벽 위에는 한 신선이 퉁소를 불고 있고 그 옆 연화대 위에는 대법서적이 공경히 놓여 있다. 우리 수련인들은 만물에 모두 영(靈)이 있음을 아는데 그렇다면 그림 역시 하나의 생명이다. 한 폭의 그림은 다른 공간에서 하나의 진실한 세계이다.
때문에 나는 화신(畵神 그림의 신)을 선택해 그로 하여금 퉁소를 부는 방식으로 그림 속 에너지를 그림 밖으로 표출해 그림을 보는 사람이 이익을 보게 했다. 근경에 보이는 소나무는 중원대지를 대표하며 매 하나의 솔잎은 대법제자를 대표한다. 나무 위에 있는 등라(藤蘿 넝쿨)는 구도할 중생을 상징하는 동시에 왕자(王者)의 화관(花冠)을 상징한다.
또 짙은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소나무는 미혹 속의 세인(世人)을 대표하며 또한 수련인이 미혹 속에서 수련하고 있음을 비유한다. 신선이 그들을 마주하고 퉁소를 부는 것은 이 중생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의 제목을 《각성(喚醒)》으로 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48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