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천외객(天外客)
【정견망】
이 그림의 제목은 《근원(源)》으로 전에 올린 《각성(喚醒)》이후 내가 그린 두 번째 창작이다. 사실 나의 창작경력을 말하자면 대법(大法)의 위력과 사부님의 은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길 좋아했다. 특히나 중국화(中國畫)를 접한 이후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나는 줄곧 혼자 모색하면서 어느 스승에게도 배우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한분 엄한 스승을 만났고 비로소 기법(技法)에 있어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중국화에 대한 나의 사랑과 또 끊임없이 연구하고 옛 그림을 임모(臨摹 역주: 모범이 되는 그림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하면서 점차 일정한 층차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국화 분야의 동료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름 유명해졌다. 사실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애초 이 모든 것은 오늘날 대법을 실증할 창작의 기초를 다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2015년)까지 이미 5년이 흘렀지만 나는 수련에 정진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5년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창작방면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비록 과거에 썩 잘하진 못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지혜를 주어 회화 창작의 정수(精髓)와 현기(玄機)를 깨닫게 하셨고 내게 창작의 문을 열어주셨다.
중국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바로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花鳥畵)다. 과거 내가 주로 배웠고 가장 많은 힘을 쏟은 것은 화조였고 그 다음이 인물이었으며 산수화는 기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러나 법학습 과정에서 나는 창작의 주체는 마땅히 신(神)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천박하게나마 앞으로는 오직 신만을 그리고 산수나 화조는 가급적 적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누군가 내게 미래 창작방향을 물을 때면 나는 매번 인물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의도치 않게 산수화 방면에서 점차 창작의 문을 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법 법리(法理)의 지도하에 중국화 창작에 대한 인식이 넓어졌는데 사실 신은 단순히 인물화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경관은 모두 생명 존재이며 모두 신이 창조한 것으로 우주 역시 신이 창조한 것이고 매 한 층차의 천체우주 자체도 신이다. 그렇다면 선경(仙境)의 이미지를 이용해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표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의 경지를 뛰어넘는 게 아닌가? 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나서 비로소 격동을 느끼고 또 최저한도로 아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과거에 세상에 존재했던 중국화의 경전작품들은 비록 아주 뛰어난 작품임에도 신성(神性)이 충만한 것은 오히려 많이 볼 수 없고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전인(前人)들이 도달했던 수준은 단지 오늘날 대법제자들의 진정한 창작을 위해 기초를 다져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전인의 경험을 학습하는 것은 꼭 필요하고 또 이것이 가장 빠른 길이긴 하지만 고인(古人)을 학습함은 다만 고인의 어깨에 서야만 더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명리(名利)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인을 배우길 소홀히 하며 소위 ‘창신(創新)’을 ‘성경(聖經)’처럼 삼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중국화가 이렇게 쇠퇴하고 부패한 것이다.
때문에 산수화를 창작한 경험이 없는 상태의 내가 단번에 이런 대작을 창작해낸 것은 기적이 아닌가? 이것은 나조차도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것이 올해 들어와서 자신의 수련상태가 개변되었기 때문에 얻어온 것임을 안다. 즉 법리에 대해 전보다 더 새롭고 더 높은 깨달음이 생기자 사부님께서 나를 가엾게 여기시어 주신 능력이다.
이 그림은 또 전통적인 청록산수화 방식으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층층이 위로 올라가 큰 산의 기세를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여기에 담긴 뜻은 아주 풍부하다. 아주 높고 먼 곳에 그린 한 권의 책은 대법(大法)을 암시한다. 호탕(浩蕩)한 신불(神佛)의 대오가 책에서부터 나와 각자 다양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입장(立掌)하여 정념을 하고 어떤 이는 손에 향반(香盤 향을 피우는 쟁반)을 들고 있고 어떤 이는 보탑(寶塔)을 들고 어떤 이는 감로를 뿌리며 어떤 이는 법을 시전하고 어떤 이는 검무(劍舞)를 추며 어떤 이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등등이다.
신불의 주위에는 또 춤추는 파룬(法輪)이 있어 이들이 법(法) 속의 신(神)임을 대표한다. 각종 형식으로 세상에 내려와 사부님을 돕고 정법(正法)하며 중화신전문명을 개창한다.
또 한 층의 함의가 있는데 바로 《전법륜》의 《논어(論語)》에 나오는 첫마디 “대법(大法)은 창세주(創世主)의 지혜이다. 그는 천지개벽(開天闢地)ㆍ우주조화(造化宇宙)의 근본이다”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것은 또 이 그림 제목의 최종적인 내원이다.
산 속에 보이는 전통가옥은 산 자체를 포함하여 중화문명을 뜻한다. 또 흰 구름 빛이 위에서 아래까지 한 가닥 맥락을 형성한 것은 신이 내보내는 에너지띠를 상징한다. 그림 좌측 하단에서 그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관람자를 이롭게 한다. 그림 우측 하단의 한 행인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는데 일반인들도 수도인(修道人)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천상의 신에 대응하고 또한 도를 구하고 도를 닦는 중화문명의 문화를 표현하는데, 시공을 초월해 오늘날에 이르면 진상자료를 짊어진 대법수련자가 세인들에게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뜻한다. 이 일체의 근원은 모두 대법(大法)에서 나오는 것으로 일체의 역사, 일체의 생명은 모두 법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근원(源)》이라 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48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