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송대 시인 서부(徐俯)의 시 《장강만망(章江晚望)–장강의 저녁 풍경》은 의경(意境)이 우아하고 아름다워 읽어보면 사람의 심경(心境)이 평온해진다. 하지만 시인의 진정한 의도는 꼭 그렇진 않다.
먼저 전체 시를 감상해 보자.
잔잔한 천리 수면 거울과 같아
지는 해그림자 온 강을 붉게 물들이네
어선은 고요해도 새는 오히려 서두르나
담담한 푸른 연기 마름 끝에 흔들리네
水面無波千裡鏡
日斜倒影一溪紅
漁舟不動飛鳥急
淡淡碧煙蘋末風
“잔잔한 천리 수면 거울과 같아
지는 해그림자 온 강을 붉게 물들이네”
여기서는 수면 위로 석양(夕陽)이 물드는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읽어보면 심경이 확실히 평온해진다. 마음속에 따사함이 가득하고 거울처럼 매끈한 수면에 석양이 지면서 불처럼 따사로운 붉은 색이 반사된다. 아마 이 장면을 보면 정말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어선은 고요하나 새는 오히려 서두르나
담담한 푸른 연기 마름 끝에 흔들리네”
어부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강가에는 어선만 정박해 있다. 햇살처럼 따뜻한 잔잔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시는 정말로 독자들에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몰(日沒)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새는 오히려 서두르나”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다. 새들이 서둘러 자기 둥지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또 다른 심정을 드러낸다.
우주는 멸(滅)에 진입했고 모든 것이 다 패괴(敗壞)되고 있다. 하지만 이때 마치 회광반조(回光返照)처럼 모든 것이 다시 아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석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황혼이 다가올 뿐이다”라는 이상은(李商隱)의 시구처럼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여전히 말일(末日)이고 해체되기 전야(前夜)일 뿐이다. “새”는 청성하고 이지적이라 이때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 하며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갈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가장 비참한 것은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시인이 쓴 시 자체는 대단히 아름답다. 단지 배후에 내함(內涵)이 있는 것처럼 같다. 지금 정법시기(正法時期) 사람들에게 약간의 깨달음을 준다. 즉, 눈앞의 화려한 번영에 미혹되지 말고 다그쳐 구도 받을 방법을 찾는 것만이 옳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파룬따파(法輪大法)뿐이다. 대법(大法)에 동화하거나 적어도 대법을 인정하며 대법에 먹칠하지 않고 대법제자를 해치지 않아야지만 구도받을 기회가 있다.
아직도 대법제자를 해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가장 비참한 끝장이다. 이는 대법이 자비롭지 않은 것이 아니고 대법제자가 선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선택이다.
우주 말법 시기에 모든 것은 해체될 운명에 처해 있다. 자비로우신 창세주(創世主)께서는 사람들에게 한 차례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다. 사람 속에 미혹된 그런 사람들은 바로 사람을 선택하고 있다. 박해를 선택한 사람들은 또한 해체를 선택한 것이다. 아직은 그래도 선량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88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