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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의 《상견환》 해설

청풍(清風)

【정견망】

말없이 홀로 서쪽 누각에 오르니 달은 초승달
적막한 오동나무 정원 맑은 가을을 가뒀구나
잘라도 잘라지지 않고
다듬어도 여전히 흩어지는
이것은 이별의 슬픔
또 다른 맛이 마음속에 남는구나

無言獨上西樓,月如鉤。
寂寞梧桐深院鎖清秋。
剪不斷,理還亂,是離愁。
別是一般滋味在心頭。

이욱의 시 《상견환(相見歡)》은 처량하고 쓸쓸하지만 비록 이별의 슬픔을 노래했지만 처량한 아름다움이 극치에 달한다. 청소년 시기 이 사를 읽을 때면 친근하다는 공감을 느낀 것 같다.

다년간 수련을 한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는 문득 마음속에 진동이 일었고 단번에 이 작품에 담긴 깊은 뜻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사실 작가가 진정으로 표현하고 한 것은 속인의 그런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진정한 천국에서 멀리 떨어져 내려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이별의 슬픔이다. 바로 이런 내함(內涵)이 법에 동화하면 내심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불성(佛性)과 서로 통한다. 때문에 이 작품이 비로소 천고의 매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말없이 홀로 서쪽 누각에 오르니 달은 초승달”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혼자 서쪽 누각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니 달은 갈고리 모양의 초승달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늦은 밤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다볼 때면 은하는 비할 바 없이 거대하다. 만약 가득 찬 보름달을 만나며 기쁨을 느끼지만 갈고리 모양의 초승달을 보면 마음속에 고독감을 느낄 것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늘 고독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집을 떠났고 그곳은 우리와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고 시간도 아득히 길다.

이런 감수는 절대 우연이 아니라 내재적인 원인이 있다. 중국어에서 ‘잔(殘)’이란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다는 것으로, 잉여로 남아 장차 완결해야 한다는 뜻과 파괴되어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장면을 눈앞에 두면 비록 수많은 윤회를 거쳤지만 고향에 대한 그런 그리움과 고독감 여전히 우리 내심 깊은 곳에 남아 특정한 시기가 되면 이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최근 늘 버려진 건축, 버려진 병원이나 쇼핑몰, 별장 등 예전에는 사람과 차량으로 가득 찼지만 지금은 부서진 벽만 남은 장면을 보곤 한다.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 옛 고향의 일부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잘 수련한 부분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점화하신 것으로, 우리가 수련에 용맹정진해서 그들이 예전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하신 것이다.

“적막한 오동나무 정원 맑은 가을을 가뒀구나”

오동나무 한 그루가 적막한 마당에 외로이 서 있고, 깊은 마당에는 서늘하고 처량한 가을빛이 가득하다. 이 구절은 겉으로 보면 풍경에 대한 묘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 몇몇 글자로 만들어 낸 장면이 이별의 슬픔을 아주 생생하게 표현했다.

“잘라도 잘라지지 않고
다듬어도 여전히 흩어지는
이것은 이별의 슬픔”

이곳에서 말한 이별의 슬픔은 바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한편으로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동시에 또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 슬픔과 기쁨, 만남과 헤어짐이란 감정에 이끌려 이를 잘라내기 어려운 것을 표현한다. 잘라도 잘라지지 않고 다듬어도 여전히 흩어진다는 것은 문학적인 표현인 동시에 다른 공간에 대한 진실한 표현이다. 특정한 공간에서 정(情)이란 마치 실과 같아서 가위로 잘라도 잘라지지 않고 다듬으려 해도 곧 엉클어진다. 아마도 시인은 정말로 이런 장면을 보았거나 적어도 느꼈을 것이다.

“또 다른 맛이 마음속에 남는구나”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 많은 경우 늘 이런 감수가 있다. 내 기억에 학창시절 한 동창이 글을 썼는데 친구와 함께 거리에 서서 번잡하게 오가는 군중을 보면서 과거를 떠올려 보니 마음에 특별한 맛이 남는다고 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나는 늘 그녀가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똑똑히 알고 수련이 어느 층차에 도달했다면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천국의 고향을 바라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세계를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명예와 이익 정에 얽매여 고생스레 윤회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비록 돌아가려는 뜻이 있다 해도 명예와 이익을 잘라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에 특별한 맛이 남는게 아닌가?

이욱(李煜)은 극히 재능이 뛰어난 인물로, 수련의 각도에서 볼 때 근기가 아주 좋았고 또 오성도 좋았다. 하지만 역사가 그에게 준 배역은 이런 천고의 절창이 될 가사를 써내는 것으로 이는 우리 마음속 불성(佛性)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고대 사인(詞人 작사가)들 중에는 인생이 굴곡진 이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황제에서 죄수가 되어 거의 사람의 양극단을 산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다. 비단옷을 입고 옥을 먹던 지고무상한 제왕(帝王)의 신분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죄수가 되었으니 인생의 기복이 대단히 컸다. 세간의 사람들은 사실 모두 이렇지 아니한가? 그들의 진정한 원신(元神)은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고층차의 천국 고향인데 극히 높은 층차에서 우주에서 가장 낮은 층차인 인간세상으로 내려왔으니 이는 이욱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간수소에서 겪은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당시 막 저녁이 되었는데 날마다 정해진 방을 검사하는 시간이었다. 당직 인원들은 모두 평상시 자리에 앉고 교도관이 방을 조사했다. 하지만 그날 당직 인원이 큰소리로 “뭇신 귀위[衆神歸位 뭇 신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란 뜻]”라고 외쳤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것을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결합하고 나는 사부님께서 나더러 법연(法緣 법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하루빨리 진정하게 돌아가라고 점화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세인들이 모두 법연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을 인정해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