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고대에도 많은 문인(文人)들이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목소리를 냈고, 또 이에 연루되어 쫓겨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도 황제가 비교적 개명(開明)해 다시 임용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당조(唐朝) 시인 채우석(劉禹錫)의 시 《낭도사(浪淘沙)•제8》은 귀양간 후에도 소침해지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전문을 감상해 보자.
참언이 깊은 파도와 같다고 말하지 말고
좌천된 이 모래에 묻혔다 말하지 말라.
천 번 일고 만 번 거름이 비록 고생스럽지만
모래를 모두 불어 내야만 황금이 나타난다네.
莫道讒言如浪深
莫言遷客似沙沉
千淘萬漉雖辛苦
吹盡狂沙始到金
“참언이 깊은 파도와 같다고 말하지 말고
좌천된 이 모래에 묻혔다 말하지 말라.”
시인은 여기서 ‘막도’(莫道 말하지 마라)와 ‘막언’(莫言 말하지 마라)로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권고한다. 시인은 솔직하게 자신이 참언(讒言)의 피해를 받아 멀고 황량한 곳으로 쫓겨났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강바닥에 가라 앉은 모래처럼 더는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귀양 간 후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 채 절망에 빠져 있다. 어쩌면 영원히 그곳에 머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을 위로하고 다른 이들에게 위안을 주며 잃지 말라고 말하며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천 번 일고 만 번 거름이 비록 고생스럽지만
모래를 모두 불어 내야만 황금이 나타난다네.”
시인은 이런 귀양은 일종의 인생 경험으로 오직 이런 세례를 거쳐야만 진정으로 금으로 단련될 수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일종의 자기 위안인지 아니면 진정한 깨달음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도리가 있다.
지금은 창세주(創世主)께서 친히 중생을 구도해 자신의 하늘 고향으로 돌려보내시는 정법(正法) 시기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고생을 겪고 위덕을 쌓아 오늘날 법을 얻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천상에서 창세주를 따라 아득히 먼 천국 세계에서 이곳에 왔다. 왜 왔는가? 바로 법을 얻기 위해서다.
이렇게 본다면 시인의 생각이 옳았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오늘날 정법을 위해 문화를 다진 것이다. 어쩌면 시인의 이 시는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줄곧 역경에 처한 생명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스스로 잘하라고 격려해 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때의 시인이 지금 법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인간 세상의 집착을 내려놓고 하루빨리 법을 얻어 자신의 천국 세계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26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