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고금의 시인들은 흔히 감응이 있어 자신의 마음속 감촉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에 비상(悲傷)이 있다.
꽃을 사랑한들 죽을 만큼 사랑하는게 아니고
단지 꽃이 지면 늙음을 재촉할까 두려울 뿐
무성한 가지에선 분분히 떨어지기 쉬우니
어린 꽃봉오리야 상의해서 천천히 피거라.
不是愛花即欲死
只恐花盡老相催
繁枝容易紛紛落
嫩蕊商量細細開
이 작품은 당조(唐朝)의 대시인 두보(杜甫)의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강변을 홀로 거닐며 꽃을 찾다》의 마지막 수다.
시인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자신의 운명을 생각한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배후에는 지나간 인생의 세월이 있다. 시인은 분분히 피어난 꽃들을 보면서 너무 몰리면 배척받아 떨어지니, 꽃들이 너무 다투듯이 서두르지 말고 상의해서 서서히 피어나길 소망한다.
아마 시인은 인간 세상의 명리를 위해 쟁탈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특히 전쟁은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참을 수없는 상처를 가져다준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시인은 마치 더는 비 개인 날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시인은 꽃이 떨어지는 것과 백성들이 이리저리 떠도는 것에 상처받는데 특히나 자신의 운명이 상처받았음을 느낀다. 혼란한 세상에 태어났으니 어찌 또 기대할 게 뭐가 있겠는가?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미모, 명예와 재산은 모두 눈앞을 스쳐 가는 안개에 불과해 오늘 또는 내일 잃어버릴지 모른다. 조설근의 말처럼 “하나는 물속의 달이고 다른 하나는 거울 속의 꽃”이니, 모두 가상(假象)이다.
시인이 자신을 슬퍼함은 이지적이고 청성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인들은 미망(迷妄)에 빠져 진정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3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