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의 《승원화》와 석법훈의 《게송》 감상
임우(林雨)
【정견망】
세상 사람들은 모두 고향을 그리워한다. 고인(古人)은 고향을 그리워했고 오늘날의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일들이 우리 생각과는 다른 데 배후에 더 깊은 내함(內涵)이 있다.
당조(唐朝)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유배된 적선(謫仙 유배당한 신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사(詩詞)에는 선의(禪意)가 가득하다. 여기서 소개할 시 《승원화(僧院花)》는 더욱 그렇다.
색과 공을 깨달아 불사(佛事)를 하고 싶어
절집에 향기로운 나무 한 그루 심었다네.
자세히 보니 화엄의 한 구절이니
방편의 바람이 지혜의 꽃을 피웠구나
欲悟色空爲佛事
故栽芳樹在僧家
細看便是華嚴偈
方便風開智慧花
백거이가 말하는 ‘색공(色空)’이란 사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色]이 다 공(空)하다는 뜻이다. 확실하고 확실하게 여기에 있고, 심지어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데 왜 공하다고 하는가? 시인이 불가의 승원에 꽃나무를 심은 것은 선기(禪機)를 보여준다.
비록 사람들이 “한 송이 꽃은 하나의 세계이고 하나의 잎이 하나의 보리[一花一世界,一葉一菩提]”라고 말하지만, 이는 다른 공간의 사물을 가리킨다. 우리 이곳 표면 공간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주 잠깐에 불과하다. 최근 우리 사무실에 해바라기 두 송이가 있는데 아침에 꽃이 피고 밤이면 진다. 그것이 진짜라고 말하자니 확실히 그것이 왔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자니 그것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시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깨우치고자 하는 이치일지 모른다. 인간 세상이 비록 좋아 보여도 그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오랫동안 지속 할 수 없다.
시인은 이 모든 것을 하늘이 세인들의 지혜를 일깨우기 위한 것으로 보았고 그래서 ‘지혜의 꽃’이라 불렀다. 바람에 따라 피지만 사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
송조(宋朝) 시인 석법훈(釋法薰)의 《게송(偈頌)》도 이와 같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니
몸밖에 아무것도 없네
장안이 비록 즐겁다 해도
오래 머물 곳은 아니로다
身心一如
身外無餘
長安雖樂
不是久居
시인은 마치 초심을 찾은 것처럼 보이는데 몸 밖의 물건은 이미 더는 의미가 없다. 인간 세상이 비록 번화하고 흥미롭지만 필경 자신이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다.
시인 석법훈은 더 분명하게 인간 세상의 번영 배후에는 오히려 우리는 나그네의 신분임을 지적했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돌아가는 전제이자 인생의 의미다.
인간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도 오히려 우리가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다. 인간 세상이 꽃처럼 화려하지만 꽃처럼 수명이 아주 짧다.
번영 배후에는 지울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이 세상의 과거를 내려놓고 우리의 진정한 고향인 천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사(詩詞)의 내용은 삼라만상을 포괄하는데 아름다운 것도 있고 또한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선기(禪機)도 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우리의 진정한 지혜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