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투표가 시작되었다.
우선 정화군이 조서를 내려 투표에 관한 사건과 선택 항목을 대중에게 공표해야 했다. 그런 다음 두 개의 ‘집의낭(集議囊)’을 준비해 정사재에 두고, 중생들이 자신의 건의를 집의낭 속에 넣게 하여 다수결로 판가름하게 했다. 사실상 중생들에게 자신의 군주를 인간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게 할 것인지 선택하게 한 것이다.
조서가 내려진 뒤 일진천의 모든 중생은 목욕재계하고 맑은 곳을 골라 가부좌하고 앉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한 뒤, 왼손을 검지 모양으로 세워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 그런 다음 자신의 건의를 손가락 끝으로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손을 하늘로 향하면, 이 ‘표’는 자연스럽게 해당하는 집의낭 속으로 떨어졌다.
그날 밤, 표는 대체로 속속들이 거의 다 던져졌다. 정사재의 집의낭은 원래 두 명의 신관이 직접 관리해야 했으나, 마침 흑요가 정사재에 근신 중이었기에 흑요가 두 신군을 대신해 집의낭을 관리하게 되었다.
혜희는 다시 살금살금 정사재를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혜맹이라는 도우미까지 데려왔다.
혜희가 흑요에게 한참을 빌며 투표수를 확인하고 싶어 했으나, 흑요는 여전히 강직하고 사심 없는 표정으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했다.
혜희와 혜맹은 어쩔 수 없이 떠나려는데, 이때 갑자기 비천이 와서 청령만에 문제가 생겼으니 흑요 신관이 급히 가봐야 한다고 보고했다.
혜희와 혜맹은 비천의 말을 전해 듣고 이것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문 앞에서 흑요가 떠나기를 조용히 기다렸고, 역시나 한 줄기 푸른 빛과 함께 흑요가 청령만으로 달려갔다.
혜희와 혜맹은 얼른 다시 정사재로 들어가 방 안에 걸린 두 개의 큰 금색 비단 주머니를 발견했다.
혜맹이 먼저 다가가 집의낭을 열어보려 했으나 도저히 열리지 않았다.
혜희가 생각해보니 지난번 흑요가 준 타액을 팔의 모공 속에 소중히 간직해 두었는데, 벨라를 보러 갈 때 조금 쓰고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아마 흑요의 타액이라면 집의낭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혜희가 다가가 팔을 주머니 입구에 갖다 대자, 주머니 입구가 정말로 열렸다! 다시 팔을 다른 주머니 입구에 대니 그것도 열렸다. 정말 잘된 일이었다!
혜희와 혜맹은 확인했다. 3분의 2의 중생이 어머니가 삼계로 내려가는 것에 반대하고 있었으며, 오직 3분의 1만이 찬성하고 있었다. 이 결과를 보고 혜맹과 혜희는 만족하며 자리를 떴다.
정사재를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혜희가 날아가던 중, 마치 머리카락이 나뭇가지 같은 것에 쓱 긁힌 느낌이 들었으나 별로 개의치 않고 서둘러 자신의 침전으로 향했다. 어쨌든 규칙을 어긴 일을 했기에 마음이 좀 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들은 계략에 빠진 것이었다.
다음 날, 공시 대전(公示大典)에는 거의 모든 신관이 다 모여 있었다. 정화군이 주석에 앉았고 구지는 정화군의 왼쪽 아래에, 혜교, 혜희, 혜맹이 차례로 차석에 앉았다. 혜희와 혜맹은 자신들이 투표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고, 차분하게 공시를 기다렸다.
구지신군이 사법 대천신이었기에 투표 결과는 그가 공표했다. 구지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고인 물처럼 고요했다. 그가 투표 결과를 공표하기 시작했다.
“중생의 뜻을 모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중생의 4할이 군주의 하세에 반대했고, 6할의 중생이 군주의 하세에 찬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원래의 안배대로 시행하겠습니다.”
혜희와 혜맹은 깜짝 놀랐다. 혜희가 경악하며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안 돼요!…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히…”
혜희는 ‘분명히’라는 말을 내뱉고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구지가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는데, 그 차가운 눈빛에는 약간의 멸시가 담겨 있었다. 혜희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은 온통 의혹뿐이었다. 분명 어제 본 결과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자, 혜희 전하께서도 그리 호들갑 떨 것 없습니다. 이 집의낭은 때가 되기 전에는 흑요 신군 외에는 아무도 열 수 없으니 결과는 당연히 공정합니다.”
구지신군은 말을 마치고 정화군에게 읍하며 이어서 말했다.
“군주님, 결과가 나왔으니 지금 즉시 내려가시지요!”
뭇 신관 사이에 술렁임이 일었고 혜교조차 무척 놀랐다. 어찌 어머니를 이토록 서둘러 보내려 한단 말인가?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거예요! 전에는 지금 즉시 떠난다는 말씀은 없으셨잖아요?” 혜희가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구지 신군은 냉소를 흘리며 마치 혜희 전하가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는 듯, 일부러 자애로운 척 혜희에게 말했다.
“전하, 첫째로 때가 되었으니 지체하면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둘째로 일진천에는 중생이 너무 많아 차질이 생기기 쉬우니 더 머물러 봐야 이로울 게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일진천의 생사가 걸린 큰일이니까요.”
“그렇지만…” 혜희가 막 반박하며 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데, 구지가 소매 속에서 비녀 하나를 꺼냈다. 혜희는 그 비녀를 보자마자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 비녀는 혜희의 것이었다. 원래 혜맹이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오색 원추형 운석을 발견하여 비녀로 만들어 혜희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 비녀는 영성이 있어 혜희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절대 쉽게 잃어버릴 물건이 아니었다.
어젯밤 혜희가 머리카락이 무언가에 긁힌 것 같다고 느낀 것은, 사실 누군가 그녀의 비녀를 뽑아갔던 것이고 이를 빌미로 협박하려는 것이었다.
“혜희 전하, 어젯밤 누군가 정사재 밖에 비녀 하나를 떨어뜨린 모양입니다. 어린 비천이 혜희 전하의 것이라고 하던데, 전하의 것이 맞습니까?” 구지신군은 짐짓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요.” 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것인데, 그래서요?” 혜희는 이미 그의 수법을 간파하고 차갑게 물었다.
“아, 그럼 전하께 돌려드리지요. 혜희 전하께서는 평소 흑요 신군과 친하게 지내시는데, 어젯밤처럼 정사재 근처에서 노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만약 집의낭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흑요 신군까지 연루되지 않겠습니까?”
구지의 얼굴은 여전히 고인 물처럼 평온했으나, 혜희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음험하고도 득의양양한 낯짝을 어렴풋이 보았다.
그렇다. 구지가 집의낭의 투표수를 조작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혜희가 청령만에 던져질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집의낭을 몰래 훔쳐보았다고 자백하며 그를 폭로한다 해도, 그것은 동시에 흑요까지 연루시키는 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녀와 흑요는 구지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허탈한 사실은, 모든 대가를 치른다 해도 판세를 뒤집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혜희는 억울함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어머니는 금방 돌아올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정화군은 말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주석에서 일어나 구지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구지가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바닥에서 삼계로 바로 연결되는 통로가 서서히 나타났다.
정화군은 통로 앞으로 걸어가 태연하게 머리 위의 신환(神環)을 벗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과위(果位)였다!
이 순간 모든 신이 차례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혜희와 혜맹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혜교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으나 첫째였기에 침착하게 동생들을 다독여야 했다.
정화군은 마지막으로 일진천을 한 번 둘러보고 눈빛으로 중생들에게 작별을 고한 뒤, 미련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세 아이는 아쉬움에 어머니를 불렀다. 그 부름은 마치 영원한 이별인 것처럼 구슬펐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1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