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다음날 진시(辰時) 전, 옥두, 다보와 아택 등은 일제히 전산(前山)에 와서 기다렸다. 옥경산의 제자들이 소란을 피우며 자운산 제자들에게 말했다.
“평남원수께서 오실 때 너희는 반드시 공경히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해야 한다. 천제께서 친히 임명하신 원수이니 모든 것은 규칙대로 해야 한다!”
옥두가 그들을 노려보자, 다보는 옥두에게 눈짓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절을 하라면 하지 뭐. 다들 보고 있으니 잠시 참자꾸나. 전장에서는 아무도 그녀에게 절하지 않을 테니까!”
진시 15분 전이 되자 저 멀리 하늘가에서 한 무리의 선병(仙兵)이 나타났고 그 뒤로는 신수(神獸)들이 따르고 있었다.
바로 요진이 곤륜산의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온 것이었다. 옥경산 상공에 도착한 후 이 대오는 구름 위에 머물렀고 내려오지 않았으며, 오직 요진 한 사람만이 내려왔다.
멀리서 바라보니 체구만 보아도 여신장(女神將)임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은색 갑옷에 흰색 망토를 걸치고 머리채를 높이 묶었으며 허리에는 검 한 자루를 찼는데, 영락없이 요진이 작전할 때의 모습이었다.
아택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봐, 저기 오네. 저분이 천제께서 친히 임명하신 평남원수인데 도호(道號)는 요진이라고 해. 여선(女仙)도 원수가 될 수 있다니.”
아택은 속으로 생각했다.
‘여선이 원수가 된 것이 무엇이 희한한가? 당년의 서왕모, 두모원군(斗姆元君) 등 여선들이 젊었을 때 어느 누가 군대를 이끌고 싸우지 않았던가? 도가(道家 신선의 몸(仙身)은 절로 음양이 있는데 어찌 남녀를 나누겠는가?’
이때 요진이 모두의 앞에 내려오자 사람들은 읍하며 인사를 했다.
“요진 원수님!”
요진도 읍하며 답례를 했다.
아택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몹시 놀랐다. 이 순진하고 영롱한 얼굴, 인중에서 은은히 빛나는 매화는 바로 어젯밤 물가에서 즐겁게 웃던 그 여인이 아닌가? 그녀가 바로 평남원수였다니! 아택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때 원시천존이 옥경산의 정본징원대(正本澄元台)에 나타났다. 요진은 사부님을 뵙자 방긋 미소를 지었는데, 이 웃는 모습은 아택으로 하여금 그녀가 어제 물가의 그 여인임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원시천존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구름 위로 가서 기다려라. 나는 평남원수와 할 말이 있다.”
그리하여 옥두, 다보와 아택 등은 구름 위로 날아올라 요진의 대오 옆에 섰다.
원시천존은 요진의 허리에 찬 유리정곤검(琉璃淨坤劍)을 보며 말했다.
“이 검은 잠시 검집이 없으니 이렇게 차고 다니기 불편할 것이다. 이것을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비녀로 변할 것이니 잠시 머리채에 꽂아 두거라.”
요진이 곧 검을 손바닥에 올리자 정말로 한 떨기 유리 비녀꽃으로 변했고, 요진은 그것을 머리채에 꽂았다.
원시천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말했다.
“이 검에는 검집이 하나 더 있는데 이 또한 삼계의 지보(至寶)다. 네가 개선하여 돌아오면 천제께서 자연히 네게 주실 것이다.”
요진이 입술을 깨물며 미소 짓자 원시천존이 다시 요진에게 말했다.
“얘야, 사형 사저(師姐)들의 보살핌이 없으니 이번 행차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요진이 대답했다.
“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원시천존이 또 말했다.
“명심하거라. 인간 세상의 황제(黃帝)를 뵙거든 군신(君臣)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요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사부님, 저희는 신선인데 그가 설령 인간 세상의 제왕이라 한들 역시 사람입니다. 왜 구태여 그에게 군신의 예를 갖추어야 합니까?”
원시천존이 요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말이 많구나!”
요진은 사부님이 알려주기 곤란하신 것을 보고 혀를 살짝 내밀더니 다시 엄숙하게 말했다.
“제자자 사부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원시천존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거라!” 하고 말했다.
이에 요진은 구름 위로 날아올라 그곳에서 즉시 군사를 점검하고 작전 계획을 세웠으며, 일행은 곧 남주(南洲)로 날아갔다.
남주 지계(地界)에 들어서자마자 기운이 원활하지 않음을 느꼈다. 이곳은 업력(業力)이 쌓여 남주 지계 전체에 억눌린 느낌이 나타나고 있었다.
요진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온통 하얀색뿐이었다. 천안(天眼)으로 살펴보니 치우(蚩尤)의 군대가 흰 안개를 피워 황제 군대의 노선을 흐리게 하여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진이 분개하며 “비겁하다!”라고 한 마디 한 후, 곤륜 병사를 앞으로 보내 막게 하고 자운 병사들은 뒤에서 수습하게 했으며, 자신은 먼저 가서 황제를 배알한 후 곤륜 병사를 지원하러 가기로 했다. 배치가 깔끔하고 명쾌했다.
아택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가씨가 평소에는 순진하고 귀여워 보이더니 지금은 정말 영웅의 기개가 넘치는구나.’
요진 등은 구름에서 내려와 각자 맡은 일을 수행했다. 요진은 흰 안개 너머로 멀리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황포를 입고 안개 속에 묵묵히 서 있는 한 형체를 보았는데, 마치 그녀를 기다리는 듯했다.
요진이 그 형체 뒤로 가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며 말했다.
“평남원수 요진,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는 서두르지 않고 몸을 돌려 자세를 낮추며 “천신(天神)께서는 예를 차릴 것 없으니 어서 일어나세요”라고 말하며 요진을 부축했다.
요진이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의 광경에 경악했다! 그녀는 황제를 본 것이 아니라 꿈속에 뵌 남색 머리의 부처님을 뵈었다! 여전히 미소를 지으시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진은 자신의 눈이 침침해진 줄 알고 눈을 세게 비비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다시 눈을 뜨자 방금 전의 푸른 머리 불타는 보이지 않고, 대신 인자한 동방(東方) 노인의 얼굴이 미소 지으며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이분이 바로 황제였다.
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흰 안개 때문에 내 눈이 침침해져서 검은 머리가 남색 머리로 보였나 보군.’
요진이 잠시 멍해 있는데 황제가 입을 열었다.
“짐이 오늘 점을 쳐보고 신장(神將)께서 도와주러 올 것을 알기에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진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정말로 신기묘산(神機妙算)이십니다! 제가 이미 천병(天兵)을 보내 응전하게 했으니 폐하께서는 분부하실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시키소서!”
황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천신께서 나를 대신해 잠시만 막아주십시오. 머지않아 짐이 반드시 우리 군대를 이끌고 흰 안개를 뚫고 나가겠습니다.”
요진이 “명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요진은 응전하러 나갔다.
요진이 곤륜 병사들이 싸우는 곳으로 날아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치우의 군대 하나하나가 정말로 구리 머리에 철 팔을 가진 동두철비(銅頭鐵臂)라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요진은 의아했다.
‘설마 이 보통 사람들이 어찌 머리에 뿔이 났으며 구리 머리에 철 팔을 가졌단 말인가? 설마 적우(赤尤)가 데리고 내려온 마자마손들이 전생한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사명성군(司命星君)도 허락했을 리 없다! 참으로 이상하구나.’
요진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필경 적을 맞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요진은 구름에서 뛰어내려 곤륜 병사들과 함께 싸웠다.
한편 자운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는 싸움이 막 시작되었을 때 아택이 손을 몇 번 휘두르자 힘도 들이지 않았는데 치우 병사이 크게 쓰러졌다. 아택은 갑자기 사부님의 경고가 생각났다.
“지기만 하고 이겨서는 안 되니 명심하고 또 명심해라!”
이에 아택은 싸우는 척만 하며 대충 몇 수를 응대하고 최대한 이기지 못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요진이 한창 통쾌하게 싸우고 있는데 후방의 어린 병사가 와서 보고했다.
“원수님! 후방의 자운 병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진은 곧 후방 자운 병사 쪽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옥두와 다보는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으나 아택은 싸우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적을 상대하면서 ‘원수’의 말투로 아택에게 소리쳤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밥을 먹지 않았느냐!”
아택은 멍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그녀가 내게 한 첫마디인데 이다지도 흉악하다니. 참으로 악연이로구나!
아택은 아무 말 없이 서둘러 힘써 싸우는 척 연기했지만 그렇다고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속으로 ‘연기하는 것이 실제 전투보다 더 힘들구나’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진과 여러 장수들이 치열하게 싸우는데 남주의 날씨가 덥고 습한 데다 흰 안개까지 더해져 숨쉬기조차 곤란했다.
요진이 지쳐서 물을 마시려 했으나 남주의 물 또한 미지근하고 그 위에도 흰 안개가 한 층 덮여 있어 맛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 요진의 어깨를 쳤는데, 요진이 돌아보니 바로 풍잠(風潛)이었다.
풍잠은 요진의 입술이 마른 것을 보고 소매 안에서 옥병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빙심옥호(冰心玉壺)인데 안의 빙옥수는 시원하여 갈증을 풀어줄 것이다. 이 한 병이면 네가 몇 년은 마실 수 있다.”
요진은 빙심옥호를 받아 아무 말 없이 통쾌하게 들이켰다.
풍잠이 또 말했다.
“설봉과 맹황에게 남주에서 싸운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네가 전쟁하러 온 줄도 몰랐을 것이다. 왜 일부러 나를 속였느냐?”
요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에휴, 사형이 도와줄 것도 없는데 알려줘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풍잠은 조금 화가 나서 “내가 왜 쓸모가 없느냐! 나도 조력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는 검을 꺼내 응전하러 나갔다. 요진은 그의 보잘것없는 솜씨와 초식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문인의 기색을 보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저었다.
양군이 한참을 교전하는데 치우는 군막 안에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온통 하얀 안개뿐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그의 눈도 가렸기에 요진이 도우러 온 줄도 모르고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우사(雨師)와 풍백(風伯)아! 너희 둘이 흩뿌린 이 안개가 정말 대단하구나! 황제의 군대는 짙은 안개 속에서 우리 군대와 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 어떤 음모나 계략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병사들은 모두 동두철비이니 몸싸움으로는 저들이 분명 안 될 것이야. 하하, 아마 지금쯤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니 잠시 후 승전보를 기다리자꾸나!”
우사가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이 우사는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었는데, 우사(雨師)이자 치우의 군사(軍師)로 매우 음험하고 교활했다. 그는 또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이름을 가졌으니 바로 공공(共工)이었다.
공공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무엇 하러 저들과 몸으로 부딪히십니까? 우리 화살에 독을 발라 오만 발을 쏘면 저 황제 군대들이 모두 독이 퍼져 죽을 것이니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치우가 듣기에 이 계책이 매우 절묘하여 “좋다, 좋아! 활과 화살을 준비해라”라고 했다.
공공이 치우의 말을 끊고 서둘러 말했다.
“대왕, 독화살은 이미 준비되었으니 대왕의 명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치우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명령을 전하라, 군사를 물리고 독화살을 쏘아라!”라고 했다.
요진 등 신병들이 싸우다 보니 사실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는데 갑자기 적군이 신속하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요진은 속으로 ‘갑자기 철수하는 것을 보니 분명 속임수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에 구름 위로 뛰어올라 살펴보니 치우 군대가 저마다 활을 들고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진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보고 전 군대를 구름 위로 철수시켜 다시 계획을 세우려 했으나, 문득 천병들이 모두 구름 위로 가버리면 황제 군대는 육안 범태(肉眼凡胎)인 데다 안개까지 끼었으니 큰 화를 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요진은 급히 명령을 내렸다. “적군이 화살을 쏘려 하니 곤륜 병사들은 신속히 원을 그려 황제 군대를 보호하고 힘써 화살을 막아라. 자운 병사들은 적군 궁수 부대의 후방을 기습하되 지체함이 없도록 하라!”
“슉! 슉! 슉!” 수만 발의 화살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천병들이 일반적인 화살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이 화살에는 독이 있어 몸이 조금이라도 긁히면 천병의 상처가 검보라색으로 변하며 고통을 참기 힘들었고 범병(凡兵)들은 곧바로 목숨을 잃었다.
한참을 싸우다 보니 많은 천병천장이 부상을 입어 고통을 참지 못했고, 자운 병사 쪽은 아직 기습에 성공하지 못했다. 요진은 본래 곤륜 병사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으나 자운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설봉, 맹황을 데리고 자운 병사들을 지원하러 갔다.
요진이 치우 궁수 부대 후방에 도착하니 옥두가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을 뿐 싸울 마음이 없었다. 요진이 그녀를 일으켜 보니 얼굴에 깊은 상처가 났고 이미 고름이 생기며 검게 변해 있었다. 요진은 맹황에게 그녀를 데리고 진영으로 돌아가 독을 제거하고 정성껏 싸매주라고 했다.
그리하여 요진 자신이 옥두의 자리를 메워 자운 병사 쪽에서 힘써 싸웠다. 아택은 여전히 힘껏 연기를 하고 있었고 요진은 그의 쪽까지 돌봐야 했으니, 사실상 자운 병사 쪽은 두 명의 장수가 빠진 셈이라 요진 혼자 버티는 형국이라 매우 고전했다.
이렇게 고전하는 와중에 멀리서 깃발이 꽂힌 바퀴 달린 수레 한 대가 곤륜 병사의 보호망을 뚫고 돌진해 나왔다. 이것이 바로 황제의 군대였으며 이 수레가 황제가 막 만들어낸 지남차(指南車)였다.
이 지남차는 어디에 있든 항상 남쪽을 가리켰다. 황제 군대는 이 지남차가 생기자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흰 안개에 갇히지 않았고, 곤륜 병사들의 보호를 받을 필요 없이 힘써 적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지남차가 포위망을 뚫고 곧장 치우 궁수 부대의 후방으로 달려와 요진의 자운 병사들을 지원했다.
아마 안개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탓인지 잠재력이 크게 폭발하여 황제 군대는 사기가 충천했고, 한 사람이 여러 명을 당해내는 모습이 선병(仙兵)보다 더 신선 같았다!
순식간에 치우의 궁수들은 모두 소탕되었다! 황제 군대는 대승을 거두었고 치우 군대는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중독되거나 부상당한 장졸들이 많았기에 모두 승세를 몰아 추격하지 않고 각자의 진영으로 퇴각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