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다음 날 아침, 어제저녁 지나치게 흥분해서 늦게 잠든 탓인지 청허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 식사 후 두 사람의 심경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요진은 슬픔과 갈등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고, 청허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청허가 방에 들어서자 도도가 묵묵에게 눈짓을 하며 나직이 말했다.
“봐!”
묵묵이 살펴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요진이 처음 온 이틀간도 꽤 싱글벙글하시더니, 오늘은 더 흥분하신 것 같네. 요진이 꿀이라도 먹여준 걸까?”
도도가 살금살금 청허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주인님, 오늘 무슨 경사라도 있습니까?”
청허는 웃으며 도도를 바라보고 말했다.
“경사까지는 아니고, 그저… 그저…. 의문스러웠던 일을 하나 알게 되었느니라.”
묵묵도 그 말을 듣고 곁으로 다가왔고, 두 사람은 청허에게 그 의문이 무엇인지 캐물었다.
청허가 말했다.
“나는 줄곧 그녀가 왜 요 몇 년간 유리정곤검을 쓰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방금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고서야 나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허는 도도와 묵묵에게 조금 전 요진이 눈물을 흘리던 상황을 들려주었다.
이 일은 도도와 묵묵도 몹시 놀라게 했다. 도도가 말했다.
“보아하니 요진은 정말 정과 의리가 깊은 분이군요. 과연 삼계의 사법천신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묵묵이 말했다. “이 여선(女仙)은 자신에겐 참 모질군요. 한 번 실수로 다치게 했다고 평생 그 검을 쓰지 않다니, 맨손으로 싸우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말입니다. 정말 기개가 대단하신 분입니다!”
도도가 말했다.
“본래 삼계 제일의 미인이라는 옥탁(玉琢) 선자 정도나 주인님께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요진 천신이야말로 우리 주인님께 더 어울리는 분이네요.”
청허가 말을 받았다.
“옥탁이 비록 이목구비는 반듯하나 귀여운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으니, 어찌 요진과 비길 수 있겠느냐?”
묵묵이 손으로 도도를 쿡 찌르며 눈을 찡긋거렸다.
“지금은 요진이 제일 예쁘고말고요, 요진이 제일 예쁩니다…….”
도도 역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진 상신은 삼계의 사법대천신이시고 주인님은 동승신주의 왕이시니, 그야말로 서로 잘 어울리시네요! 주인님, 내일은 저 얼굴 가린 구름을 벗어 던지십시오. 사정을 다 털어놓으시면 요진 상신의 죄책감도 덜어드리고 두 분의 정분도 이루어질 테니, 얼마나 좋습니까!”
청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일 기회를 봐서 이 구름을 벗고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주마.”
…….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 요진은 이마의 작은 구슬 장식을 떼어내고 입술의 붉은 기운도 닦아냈으며, 가벼운 비단옷 대신 관복으로 갈아입고 이미 대당에 단정히 앉아 청허와 작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허가 뒤늦게 나타나 당황하며 말했다.
“어찌 이리 급히 가려 하오?”
요진은 청허가 허둥지둥 달려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청허에게 읍하고 말했다.
“곤륜산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먼저 작별을 고해야겠습니다. 그동안 동왕님의 융숭한 대접에 깊이 감사드리며, 요진은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요진은 말을 하면서 어제 그 ‘노인 목걸이’를 무심한 척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청허는 요진이 급히 떠나려 하자 마음이 무척 아쉬워 말했다.
“그럼 조찬이라도 들고 가시오!”
요진은 사양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미 여러 날 폐를 끼쳤으니 요진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요진이 막 몸을 돌리려 하자 청허가 다시 다급히 말했다.
“본왕이 아직 그대에게 할 말이 있소.”
요진은 멈칫하며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억누르고 말했다.
“사정이… 급하여, 여심천 만드는 법은… 요진이 훗날 다시 와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요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몸을 돌려 도망치듯 떠나려 했다.
요진이 이미 돌아섰을 때 청허가 다시 외쳤다.
“기다리시오!”
요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심장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고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들었다.
청허는 이때 이미 얼굴을 가렸던 구름을 벗어 던진 상태였다. 그는 ‘노인 목걸이’를 손에 받쳐 들고 깊은 정을 담아 요진에게 말했다.
“그대의 노인을 잊고 가셨소.”
요진은 지금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목이 메어 말했다.
“동궁으로 오는 길은 이미 익혔으니, 가져가지 않아도 됩니다.”
청허는 요진의 말과 행동을 모두 지켜보며 그녀가 이 노인을 가져가지 않음으로써 자신에 대한 연정을 거절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일편단심인 청허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가슴을 찌르는 두 번째 통증이었다.
하지만 청허는 여전히 노인을 손에 들고 요진의 눈앞까지 손을 뻗으며 말했다.
“받으시오, 나중에 다시 본왕을 찾을 때도 편하지 않겠소.”
요진이 고개만 돌리면 청허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청허가 바로 아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요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청허를 등진 채 한 자 한 자 힘겹게 내뱉었다.
“아닙니다, 동왕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요진은… 이만 가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부디 보중하십시오!” 한 마디 한 마디가 그토록 고통스러웠다.
요진은 말을 마치고 눈물을 머금은 채 떠나갔다. 청허는 그녀의 팔을 잡아채서 다시 끌어당기고는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청허가 모든 것을 밝히려던 찰나, 갑자기 가슴에 격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 바람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법력도 쓸 수 없게 되어, 멀리 하늘 끝으로 사라지는 요진을 속절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도와 묵묵은 주인님이 가슴을 움켜쥐고 탁자에 기대는 것을 보고 급히 다가가 물었다.
“주인님!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청허는 한참 동안 넋이 나간 듯 허공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다시 노인 목걸이를 바라보며 멍하니 말했다.
“오는 길은 인도하였으나, 겁수(劫數)는 건너지 못하고 명수(命數)는 바꾸지 못하는구나.”
말을 마친 그는 가슴팍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눈물을 쏟았다.
도도와 묵묵은 청허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아파 걱정하며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 왜 우십니까? 주인님, 가슴이 아프신 건가요? 주인님, 어찌 된 일입니까……”
청허가 한 자 한 자 읊조렸다.
“약수(弱水)의 부침 속에 사랑과 원한이 얽히고,
어리석고 무명(無明)하여 환상 속을 헤매네.
본래 수행의 겁난이거늘,
어찌하여 가슴 아파 눈물만 흘리는가.”
沉浮弱水愛恨間,
愚癡無明幻中顛。
本是修行劫中難,
何故揪心淚潸潸。
청허는 말을 마친 뒤 홀로 조용히 선방(禪房)으로 들어갔다……
요진 역시 동주를 떠난 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배회하다가 겨우 곤륜산으로 돌아왔다.
저택(府邸)로 들어가기 전, 요진은 특별히 물로 눈을 씻어 눈물 흘린 흔적을 지웠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인 뒤에야 안으로 들어갔다.
“요사(瑤司)님의 귀부를 환영합니다!”
시녀들이 일제히 외쳤다.
“오오오! 돌아왔구나!”
청란(靑鸞)이 요진을 보았다.
요진은 얼른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하! 돌아왔소! 다들 어때요? 다 나았소?”
청란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 아주 좋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해졌어!”
요진도 웃으며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 자! 앞뜰에 연회를 차려라! 천년 묵은 술을 몽땅 꺼내오너라! 내가 제대로 대접하마!”
청란이 신이 나서 말했다.
“좋아 좋아! 곤륜산이 오랜만에 북적거리겠네! 내가 가서 식구들에게 알릴게!”
좋은 술과 음식이 준비되고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요진이 일어나 말했다.
“그동안 다들 이 복숭아숲 때문에 고생이 많았어. 얼마 전에는 목숨을 잃을 뻔하기까지 했으니 내 마음이 참 좋지 않구나. 다들 정말 수고 많았어. 내가 한 잔 올리마!”
요진은 술을 단숨에 비웠다.
해치(獬豸)가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게 엄숙하게 말씀하세요. 그냥 동산 좀 돌보고 밭 좀 일군 건데 고생은 무슨! 다들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가할 때 소일거리였는걸요!”라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고생은 우리 사법천신님이 제일 많이 하시죠, 날마다 동분서주하시니……”라고 말했다.
요진은 모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무척 흐뭇했다. 이때 해치가 술기운을 빌려 말했다.
“요진님, 곤륜에 사법천신부가 세워지고 나서 지위는 올라갔지만 사실 예전만큼 자유롭지는 못하잖아요. 장기자랑 같은 거라도 하나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다들 즐겁게 한바탕 놀아보게 말입니다!”
요진이 해치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혀가 꼬여서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장기자랑이야!”
곁에 있던 희화(曦和)도 웃으며 말했다.
“해치가 비록 취하긴 했어도 말은 일리가 있어요, 우리도 한번 해봐요!”
요진은 생각에 잠겼다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 당신들 뜻대로 하지! 이 일은 해치가 맡아서 해보게.”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요진이 덧붙였다.
“그동안 천제께서 내리신 보물도 많고 각지의 선우(仙友)들이 보내준 기진이보도 많은데 내가 쓸 데가 없더구나. 그때 좋은 것들로 골라 상품으로 내걸고 모두에게 나눠주마!”
식구들은 더욱 기뻐하며 노래하고 춤추니 그 즐거움이 끝이 없었다!
오직 요진 한 사람만이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탁자 위의 큰 술동이를 보더니 번쩍 들어 들이키려 했다. 하지만 마시려던 찰나 다시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를 본 청란이 말했다.
“왜? 술이 향기롭지 않아? 이건 만정방(滿庭芳)이야! 눈물로 빚은 이화루(梨花淚)를 빼면 이게 제일 향기롭다고! 네가 안 마시면 내가 마신다!”
요진은 웃으며 술을 청란에게 건네주고 말했다.
“아니, 됐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하는 건 사법(司法)의 체통에 어긋나지. 너희들이 먹어, 난 남주에 가서 좀 살펴봐야겠어.”
청란이 말을 길게 늘이며 말했다.
“가~세~요~, 사법대천신님!”
요진이 막 떠나려다 방금 청란이 언급한 이화루가 생각나 뒤돌아 물었다.
“참, 내가 만 년 전에 저 배나무 정원에 묻어둔 술 말이야, 혹시 인연 있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을까?”
청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정말 이화루가 빚어졌다면 곤륜산 전체에 향기가 진동하지 않았겠어?”
요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좋은 술은 빚기 어려운 법이야.”
말을 마친 그녀는 남주로 향했다……
며칠 뒤, 동궁에 수십 상자의 기이한 보배와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요진이 사람을 보내 동주왕의 구명지은에 특별히 감사를 표시한 것이다.
“어이쿠! 세상에나….. 보라고….. 보라고! 역시 곤륜산은 다르네……”
도도는 수십 상자의 기진이보를 어루만지며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그 모습이 무척 익살스러웠다.
“예전 곤륜이 삼계의 보물 창고였다더니, 지금 곤륜도 그에 못지않구나! 우리 이 궁색한 꼴 좀 봐, 이게 어디 임금님 곁에 있는 사람들 같아? 밭 갈고 씨 뿌리는 농사꾼 같지!”
묵묵이 약간 심술 섞인 투로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곤륜으로 출근해! 동궁에 뭐 하러 있어?”
도도가 농담조로 말했다.
“관둬! 난 저 암호랑이가 무섭다고!”
묵묵이 말했다.
“암호랑이라니 말도 안 돼. 이번에 우리 동궁에 온 거 보니까 유정(柔情)이 물처럼 넘쳐흐르던데. 남주에서 싸울 때의 무서운 기색은 하나도 없더라고!“
도도가 말했다.
“그런데 왜 우리 주인님을 거절했을까? 주인님을 볼 때 그 눈빛도 분명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는데 말이야?”
묵묵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느낌에는 주인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도도가 말했다.
“하지만 주인님은 분명 그렇게 생각 안 하실 거야. 주인님은 한 주의 왕으로서 먼저 그녀에게 검 한 자루를 맞으셨고, 이번엔 이토록 세심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셨잖아. 그 지극한 마음은 이미 겉으로 다 드러났는데 말이야. 그녀가 결국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고 노인도 거절했으니, 주인님 가슴엔 두 번 대못이 박힌 셈이지. 에휴!”
“어? 여기 편지가 하나 있네, 주인님께 가져다드릴까?”
묵묵이 말했다.
“선방에서 나오시면 드리자!” 도도는 말을 마치고 편지를 잘 챙겨 두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7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