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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목기 시즌 3 (48)

화본선생

【정견망】

희화는 떠나갔고 청란은 잠들었으며 오직 요진 혼자 곤륜산을 거닐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곤륜의 산맥을 바라보다가, 또 한동안 곤륜의 성공(星空)을 바라보기도 하고, 잠시 고개를 숙여 풀잎을 쓰다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새를 응시하기도 했다. 마치 곧 먼 길을 떠나려는 나그네가 고향에 대해 마지막 애착을 갖는 듯했다. 고토(故土)에 대한 이 정과 사랑의 깊이는 비록 마음속에 감추려 해도 눈빛에서 흘러나왔다. 곤륜산의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를 그녀는 마치 가슴속에 깊이 새겨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달빛 아래 그녀는 산다화 한 송이를 붙들고 꽃잎의 뺨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나뭇잎 하나를 집어 들어 잠든 작은 쥐의 몸 위에 살포시 덮어주었으며, 가벼운 비단 소매를 걷어올리고 맑은 물방울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이 고요한 밤, 이 수려한 곤륜, 이 깊이 잠든 생령들, 이 평온함과 아름다움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더럽혀질 수 없는 천국이었다.

요진은 걷다 보니 어느덧 이원(梨園)에 도착했다.

요진은 은은하게 풍겨오는 술 향기를 맡고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에 배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요진이 배나무 아래 앉아 손을 한번 까딱하자 청주 한 병이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요진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네가 풍기는 술 향기였구나.”

이것은 그녀가 만 년 전에 배나무 아래 묻어둔 이화루(梨花淚) 한 병이었다. 만 년 동안 여전히 그 한 방울의 눈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진이 이 술병을 집어 들고 마개를 뽑아 향기를 맡으니, 문득 예전에 인간 세상에서 황제와 나란히 작전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풍잠에게 이 이화루가 다 익으면 주겠노라 약속했던 일도 생각났으나, 이 이화루는 오랫동안 인연 있는 눈물 한 방울을 만나지 못했었다. 그때의 자신이 평남원수로서 남주 백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일, 이후 사법천신이 되어 선악의 상벌을 관장하고 사주를 정벌했던 일, 그리고 반도원을 세웠던 일 등 지난 일들이 눈앞에 역력히 스쳐 지나갔다.

요진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사법천신 계승 대전이 있던 날, 내가 다보를 끌고 천제께 가서 그를 폭로하며 사법천신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네. 천제께서 내게 물으셨지. 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하하……”

요진은 웃었다. 웃다가 더는 웃지 않고 나직이 속삭였다.

“자격이 없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마침 눈물 한 방울이 그 이화루 속으로 떨어졌고, 이 이화루 병은 순간적으로 차가운 빛을 발산했다.

요진은 이 이화루를 바라보고 병마개를 닫으며 말했다.

“사형, 이화루가 다 익었소. 이 인연 있는 눈물이 결국 내 것일 줄은 몰랐구려.”

말을 마친 뒤 법력으로 밀어 이 이화루 병을 풍잠의 오두막 밖 창가로 보냈다. 요진은 배나무 아래서 일어나 말했다.

“됐다, 이번 생의 가장 어려운 약속 하나를 이행했으니 이제 가야겠다.”

요진은 말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밀실로 옮겨갔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요진이 손바닥으로 석벽을 가르자 봉인되어 있던 유리정곤검이 나타났다.

요진이 이 검을 보며 말했다.

“아버님, 이 검은 당신께서 씻어주신 것이니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약수 앞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반 못의 약수를 들이켰다.

이때 가마 안에 있던 희화도 무언가 짐작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요진, 설마 너… 정말 우리를 떠나려는 것이니?”

그녀는 요진이 동주왕에게 쓴 편지를 보며 말했다.

“지금은 예절을 따질 때가 아니야. 동주왕은 요진을 구해준 적이 있고 요진도 그를 흠모했으니, 만약 요진이 정말로… 그렇다면 동주왕에게 쓴 것은 분명 유서일 거야!”

희화는 입술을 깨물고 그 편지를 뜯어보았다.

불과 몇 글자 되지 않았으나 희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희화는 서둘러 편지를 품속에 넣고 휘장을 걷어보니 백마가 끄는 가마가 너무 느렸다. 이에 그녀는 영롱보검을 들고 가마에서 나오며 말했다.

“곤륜의 딸이 어찌 가마를 타겠는가!”

말을 마친 뒤 보검을 뽑아 가마와 말을 잇던 고삐를 단칼에 끊고, 금오를 데리고 말에 올라 동주를 향해 질주했다.

요진은 약수를 마신 후 머리에는 유리비녀를 꽂고 허리에 신목 지팡이을 찬 채 남주를 향해 구름을 타고 날아갔다.

요진이 남주 인간세상에 도착하니, 공공이 몇몇 졸개 마귀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여러 날째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백성들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요진은 먼저 졸개 마귀 몇을 처단했는데, 나무 아래 한 어린아이가 겁에 질려 숨어 있는 것을 보았다.

요진은 나무 아래로 다가가 자애로운 눈빛으로 아이를 보며 품에 안아주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몸의 떨림도 멈추었다. 요진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이가 말했다. “진아(眞兒)라고 합니다.”

요진이 말했다.

“마침 내 이름도 진아란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요진이 말했다.

“내가 너의 호법신이란다.”

아이는 눈을 떼지 않고 요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처럼 아름다우시네요.”

요진은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무슨 소원이 있니? 내가 이루어 줄 수 있단다.”

아이가 말했다.

“어머니께서 별똥별이 떨어질 때만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셨어요.”

요진이 물었다.

“유성우를 보고 싶은 게로구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진은 웃으며 조심스럽게 아이를 나무뿌리 밑에 내려놓고 선법(仙法)으로 보호막을 씌워주었다. 요진은 아이의 앳된 얼굴을 보며 자애롭게 말했다.

“진아야, 여기 앉아서 기다리렴. 조금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유성우가 내릴 거란다.”

아이는 웃으며 손뼉을 치며 좋아하더니 정말로 그곳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다.

요진은 아이와 작별하고 이번 생의 마지막 일을 완수하러 갔다.

“요진! 결국 네가 왔구나!”

음산한 그림자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바로 공공이었다.

요진은 아무 표정 없이 조용히 공공의 뒤에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공이 다시 말했다.

“이 인간세상은 곧 내 것이 된다! 이 삼계도 머지않아 내 것이 될 것이다!”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홍추단(紅貙丹)을 꺼내더니 요진을 향해 사악하게 웃었다.

요진은 여전히 표정 없이 침묵을 지켰다.

공공은 요진이 말이 없자 또 말했다.

“이 홍추단이 있는데 네가 감히 나를 건드리겠느냐! 화해하러 온 것이냐? 좋다, 내가 이 범인들을 다 도살하고 내 마귀 자손들이 인간세상을 점령하면 네게도 한구석을 떼어주마!”

공공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줄기 용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요진의 등 뒤에서 거대한 창룡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창룡이 입을 벌려 오색 화려한 빛을 내뿜으며 예리한 검 한 자루가 구름 위로 솟구쳤다.

공공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유리정곤검!”

요진은 구름을 타고 솟구쳐 유리정곤검을 손에 쥐고 공공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검법은 날카롭고 매서웠으며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공공은 급히 자신의 낫과 도끼를 꺼내 막으며 말했다.

“요진!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 나에게는 홍추단이 있으니 네가 정말 살수를 뻗는다면 너와 나, 그리고 이 인간세상은 함께 파멸할 것이다!”

그러나 요진은 여전히 묵묵부답인 채 한 걸음씩 압박하며 매 초식마다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공공도 약이 올라 온 힘을 다해 요진과 고전하며 싸웠다.

머지않아 공공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나 요진은 여전히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공공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아 요진의 검 아래 죽게 될 처지에 놓이자 큰소리를 쳤다.

“좋다! 그렇다면 같이 죽자!”

요진은 바로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공공이 홍추단을 공중으로 세차게 던지며 외쳤다.

“죽어라!”

공공이 홍추단을 던진 그 찰나, 호랑이 포효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몸집의 백호가 하늘만큼 커다란 입을 벌려 그 홍추단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이 광경에 공공은 넋이 나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백호는 홍추단을 삼킨 후 다시 신의 몸으로 변했다. 그렇다, 요진이었다.

요진은 그 단을 삼킨 후 구름 끝에 서서 하늘을 보며 크게 웃었다.

공공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급히 도망치려 했다.

요진이 크게 꾸짖었다. “어디를 도망치느냐!”

요진이 지팡이로 공공을 내리쳐 땅에 거꾸러뜨리고 검끝을 공공의 목에 겨누었다.

공공은 여전히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이치를 알고 있지 않느냐, 하하하! 너는 영원히 나를 죽이지 못한다, 요진! 하하하!”

뜻밖에도 요진 역시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다마다. 상생상극의 이치를 알고 있지. 알고 말고……”

요진은 웃으며 천천히 검을 공공의 목에서 떼어냈다.

공공은 요진이 감히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줄 알고 막 일어나 도망치려 했다. 그때 요진의 안색이 급변하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내가 그것을 알았기에 네가 내 반도원을 파괴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말을 마치고 단칼에 공공을 베어버렸다.

이 유리정곤검은 공공의 원신을 두 토막으로 냈고, 공공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사라졌다.

공공의 잘린 몸 두 덩이가 인간세상의 산으로 떨어졌다. 산의 주민들은 커다란 푸른 뱀 두 토막이 산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두 혼비백산했다.

이때 요진이 신의 형상으로 구름 위에 나타나 ‘천신이 악을 제거했으니 세인들은 두려워 말라’는 뜻을 보였다.

(공공의 두 토막 난 몸은 두 산에 떨어졌는데, 이 두 산이 바로 지금의 상해 사산(佘山)이다. 원래는 뱀 사(蛇) 자를 써서 사산이라 불렀으나 어감이 좋지 않아 사(佘) 자로 바꾸었다. 사 자를 풀이하면 ‘사람에게 보이다[示人]’라는 뜻이 있다.)

산의 마을 사람들은 구름 위에 신이 나타난 것을 보고 앞다투어 절을 올렸다. 사람들 중 고인(高人)이 있어 요진의 전신(前身)을 알아보고 누군가 외쳤다.

“서왕모(西王母)님이시다! 서왕모님이야! 서왕모님께서 인간 세상을 위해 악을 제거하셨다……”

요진은 생각했다.

‘며칠 전 나 자신이 서왕모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나를 서왕모로 알아보는구나. 보아하니 인간 세상의 사람들은 확실히 간단치 않다. 이토록 너희를 지켜준 보람이 있구나.’

요진은 세인들에게 한번 미소 짓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는 혼자 천천히 마계(魔界)를 향해 걸어갔다.

이때 희화도 말을 달려 동주에 도착했다.

마침 4,999일 7시진 8각이 되어 청허가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

청허가 나오자마자 한 백의 여인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를 찾아와 편지 한 통을 건네며 울면서 말했다. “제발 요진을 구해주세요!”

청허가 급히 편지를 뜯어보니 거기에는 열여덟 글자가 쓰여 있었다.

“심장을 찌르는 고통과 부상을 치료해 준 은혜, 내생이 있다면 평생토록 갚겠습니다. 요진.”

청허는 대경실색하여 급히 천목(天目)으로 별들을 살폈다. 그의 초조한 눈빛은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찾으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공공의 그 별은 어디 있느냐! 공공의 별은 어디 있느냐!! 떨어진 것인가…… 아니, 그럴 리 없어. 내가 구하러 가겠다!”

청허는 초조함이 극에 달해 당장 남주로 날아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궁 위에서 불진(拂塵) 하나가 내려와 청허를 휘감아 채 가버렸다. 청허는 이 불진 안에서 법력(法力)을 조금도 발휘할 수 없었다.

단지 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얘야, 네게는 아직 마지막 한 차례 겁난이 남아 있느니라!”……

이때 요진도 마계(魔界)에 이르렀다.

갑자기 한 목소리가 들렸다.

“요진! 빨리 홍추단을 토해내라! 사부가 이 상생상극의 겁난에서 너를 피하게 해주마!”

요진이 들으니 원시천존이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사부님, 저는 진아와 약속했습니다. 오늘 밤 그에게 가장 찬란한 유성우를 보여주겠노라고요. 신(神)이 어찌 사람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때 요진은 이미 추악한 귀신들이 울부짖는 마계 한복판에 처해 있었기에, 남몰래 흘리는 사부의 울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요진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어떻게 해야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누이는 아직 진정한 ‘여심(如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내생이 있다면 다시 오라버니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이때 마계의 썩은 귀신과 사마(邪魔)들이 요진을 보고 앞다투어 굴에서 나와 이빨을 드러내고 울부짖으며 광분했다. 마치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했다.

요진은 마계의 정중앙에 서서 귀신들이 물어뜯게 내버려둔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생의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아버님,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사악이 다시는 선량한 이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요진이 말을 마친 뒤 두 눈을 감고 단전에 기를 모으자, 천지간에 ‘쾅’ 하는 거대한 폭음이 들리며 마계가 폭발해 평지로 변해버렸다.

그 시각 밤하늘에서는 별 하나가 굉음과 함께 터지며 운석들이 쏟아져 내렸다. 고요한 밤하늘에 매우 찬란한 유성우가 나타난 것이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인간 세상의 사람들은 환호하고 기뻐하며 소원을 빌었다. 사람들은 이 찬란한 유성우가 분명 인간 세상에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때 청허 역시 홍균노조의 불진에 말려 인간 세상의 윤회 속으로 들어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