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林雨)
【정견망】
파도는 구름처럼 가더니 다시 돌아오고,
북풍은 몇 차례 천둥소리를 몰아치네.
붉은 누각 사면에 성긴 발을 걸어 두고,
누워서 천 산에 소나기 오는 것을 보노라.
海浪如雲去卻回
北風吹起數聲雷
朱樓四面鉤疏箔
臥看千山急雨來
——《서루(西樓)》
이 시는 북송의 시인 증공(曾鞏)이 지은 것이다. 정황으로 보아 해변에 세워진 어느 주루(酒樓)인 듯하다. 물론 강변일 수도 있으며, 소위 해랑(海浪)이라 한 것은 하나의 형용일 뿐이다.
“파도는 구름처럼 가더니 다시 돌아오고, 북풍은 몇 차례 천둥소리를 몰아치네.”
파도가 굽이칠 때는 마치 뭉게구름 같아 기복하며 솟구치다가 다시 물러갔다 돌아온다. 북풍이 불어오자 멀리서 은은한 천둥소리가 몇 차례 들려오니, 이는 비바람이 들이닥칠 징조다. 시인은 서루에 올라 바다와 하늘을 멀리 바라보는데, 천지 사이에 풍운이 변환하며 한 차례 소나기가 태동하고 있다.
갔다 돌아오는 파도는 마치 세사(世事)의 기복과 변천을 상징하는 듯하며, 구르는 천둥소리는 천지간에 감도는 한 차례 비바람과 같다. 이러한 광경을 마주하여 시인은 회피하지 않고 종용(從容)한 심태로 그 변화를 고요히 관찰한다. 아마도 그가 벼슬길에 처하여 조정의 풍운 변화를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내면의 침착함과 견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과 같으리라.
“붉은 누각 사면에 성긴 발을 걸어 두고, 누워서 천 산에 소나기 오는 것을 보노라.”
시인은 가게 주인에게 사면의 주렴을 걸어 올리게 하여 시야를 더욱 넓게 틔운 뒤, 자신은 누각에 옆으로 누워 먼 산 사이로 소나기가 달려오는 것을 고요히 감상한다.
상식적으로 비바람이 들이닥치려 하면 사람들은 대개 발을 내려 피하기 마련이지만, 시인은 도리어 반대로 행동하여 주렴을 걸게 하고 누각을 활짝 열었다. 이러한 거동은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것이 아니라, 태연하게 비바람을 맞이하는 자세다. 비바람이 어차피 들이닥칠 바에야 종용하게 상대하며 천지의 변화를 고요히 지켜보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시 속에 나타난 것은 억눌렸던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가슴이 트이고 기도(氣度)가 여유로운 활달함이다. 자연계의 비바람이든 인생과 벼슬길에서의 곡절이든, 시인의 눈에는 모두 천지간의 한 차례 풍운 변화일 뿐이다. 누워서 소나기가 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인생 태도를 체현한 것이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사실 굴곡을 만날 수 있고 비바람의 세례를 겪기도 한다. 비바람을 피하기 어렵다면 시인처럼 여유있는 심태로 마주하는 것이 낫다. 비바람이 올 때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할 필요 없이 태연히 맞이한다면, 어쩌면 천지의 광활함과 인생의 여유를 더욱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4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