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한참 동안 만(灣)속의 일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만 밖의 일을 이야기해보자. 장가만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과 달라서, 장가만의 3년이 인간 세상의 1년에 해당했다.
한편 강자아는 산을 내려온 후 신공표(申公豹)를 만났는데, 사람 마음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하마터면 봉신방을 태울 뻔했다. 다행히 서학이 백학동자에게 명하여 신공표의 머리를 물어가게 한 덕분에 봉신방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강자아가 신공표를 위해 간청한 덕분에 신공표는 죽음을 면했지만, 그는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서기(西岐)를 “순식간에 피바다로 만들고 백골을 산처럼 쌓이게 하겠다”라며 모진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봉신연의》를 보면 신공표가 천지를 멸할 듯한 모진 말을 내뱉은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문중(聞仲)이 군사를 이끌고 서기를 공격할 때에야 신공표가 줄곧 절교(截教) 사이를 떠돌며 여러 절교 제자들을 설득해 강자아를 공격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중간에 무엇인가 빠진 게 아닐까?
또 하나 의심스러운 점은, 신공표가 서기를 “순식간에 피바다로 만들고 백골을 산처럼 쌓이게 하겠다”라고 호언장담했는데,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것이다.
그는 옥경산 문하에서 다년간 수행했지만, 세상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학처럼 한가로이 지내는 서학 같은 인물조차 그를 몹시 죽이고 싶어 했을 정도니, 사람의 연[人緣]이 매우 없다고 보아야 한다. 옥경산 문하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면서도 사람의 연이 그토록 차(差)했는데, 그는 도대체 어디서 천지를 멸할 그런 자신감을 얻었을까?
이는 신공표의 신분 내력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이자는 교활함과 잔인함을 한 몸에 갖추었으며, 거짓말과 사기는 입만 열면 나왔고, 질투와 원한은 마치 심장에 박혀 있는 듯했다. 그는 본래 변이(變異)된 존재였다.
남섬부주에 청구국(靑丘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구미호(九尾狐)의 고향이다. 구미호 종족에게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요술인 매혹술(魅惑術)이 있다.
남섬부주에는 또 ‘신(申)’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괴수 ‘와(訛)’의 고향이다. 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토와(兔訛)이고 하나는 묘와(貓訛)이다. 와라는 짐승은 태어날 때부터 거짓말을 할 줄 알아서 하나하나가 거짓말과 사기의 대가였다. 토와는 귀여운 척을 잘하고 묘와는 잘생긴 척을 잘했다.
하루는 신(申)나라의 묘와 왕자가 미남자로 변해, 구미호 왕의 딸이 변한 미녀를 만났다. 이 두 짐승은 서로 속이고 미혹하다가 눈이 맞았으니, 그야말로 큰 사기꾼과 큰 허풍쟁이가 만난 격이었다. 유유상종이라더니 그들은 서로를 늦게 만난 것을 한탄했다.
이 두 짐승이 교배하여 새끼를 낳고 또 낳았는데, 이 새끼들은 어떤 것은 여우를 닮고 어떤 것은 고양이를 닮았으며, 어떤 것은 여우와 고양이를 합친 듯 표범과 비슷하기도 했는데, 신공표가 바로 그중 하나였다.
훗날 신공표가 스승을 찾아 기예를 배우려 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여우나 와 같은 존재는 본래 받아주는 이가 없는데, 그는 잡종이기까지 하니 더욱 그러했다. 나중에 그는 옥경산 아래에서 서성이며 이런저런 잡다한 재주를 훔쳐 배웠고, 틈틈이 마당을 쓰는 강자아에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약간의 재주를 갖게 되었는데, 어느 날 구미호 한 마리가 뜻밖에도 인간 세상의 왕비가 된 것을 발견하고는 생각했다.
‘저 헌원분(軒轅墳)의 세 요괴도 인간 세상에서 왕비 노릇을 하는데, 나는 저들보다 출신이 고귀하고 가문이 현격하지 않은가?’ 그는 다시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모진 말을 내뱉기 전부터 이미 달기와 연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우 족과 와 족, 그리고 남섬부주의 다른 요괴들의 힘을 모아 주왕을 도와 서기(西岐)를 치려 한 것이다. 서기가 자기 손에 멸망한다면 그도 달기처럼 인간 세상에서 권세와 부귀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옥경산 아래에서 강자아에게 원한을 쏟아낸 뒤 곧장 달기를 찾아갔다.
달기는 신공표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남주(南洲)의 여러 요괴들을 선동해 그 힘으로 서기를 멸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은 영화를 보존하고 신공표에게도 부귀를 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달기는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어 선뜻 승낙하지 못했다.
신공표가 물었다.
“마마께서는 아직 무엇이 걱정되십니까?”
달기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그대는 공공(共工)이 어떻게 죽었는지, 마계(魔界)가 어떻게 폭발했는지 잊었는가? 우리가 이토록 노골적으로 움직인다면 사법천신(司法天神)이 어찌 수수방관하겠는가?”
사실 요진(瑤眞)이 세상을 떠난 뒤, 신의 일을 어찌 요괴들이 알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많은 요마귀괴들은 요진이 이미 선거(仙去)한 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신공표는 옥경산 아래에서 수년 동안 머물며 자주 엿들었기에, 비록 단편적인 정보였지만 몇 가지 비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신공표가 말했다.
“마마! 헌원분에 계시더니 바보가 되신 것 아닙니까? 사법천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무엇이라? 그럴 리가 없다!”
“정말로 죽었습니다! 그해 옥경산 제자들이 산으로 돌아올 때, 사법천신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정말이냐? 믿을 수 없구나.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있는데 이름은 요진이라 했지. 그녀는 매우 대단해서 요마들은 ‘요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느니라. 그녀 머리의 비녀는 날카로운 검으로 변할 수 있고 그 검을 쥐면 마왕도 당해내지 못했는데, 그런 그녀가 어찌 죽었단 말이냐?”
달기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신공표가 다시 말했다.
“마마,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왜 수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겠습니까? 문왕과 무왕이 주왕을 칠 때도 그녀의 종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녀가 살아있다면 이런 살벌한 전쟁터에 어찌 강자아 같은 무능한 자가 나와서 세상을 지도하겠습니까?”
달기가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여겨 신공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기와 신공표는 먼저 자기 종족의 요괴들을 설득하고, 이어 다른 종족의 많은 요괴들까지 설득했다. 가장 잘 먹힌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서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면 인간 세상의 권세를 이용해 인간의 정화(精華)를 마음껏 흡수하여 자신의 수련에 쓸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사법천신이 이미 죽었으니 이제 법도 하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서기 쪽에는 끊임없이 요괴들이 쳐들어왔고, 강자아는 속이 타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요괴들이 연전연승하며 서기의 병력이 크게 손실되자, 달기와 신공표는 점점 신이 나서 ‘만요대진(萬妖大陣)’을 펼쳐 서기를 단번에 섬멸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다급해진 강자아는 다시 옥경산으로 돌아갔다.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결국 문전박대를 당했다. 도가의 사부는 만만한 분이 아니다. 지난번에 정성을 다해 권할 때는 듣지 않더니, 이제야 다시 찾아오니 누가 그 뒷감당을 해주겠는가?
강자아가 만약 범태(凡胎)의 육체가 아니었다면, 지난번에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마터면 봉신방을 태울 뻔한 그 큰 잘못만으로도 타신편(打神鞭) 수백 대는 맞았을 것이다.
이번에 다시 사부님을 찾아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강자아는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자못 가련했다….
그렇다면 비록 윤회 전생했을지언정 여전히 요마들을 벌벌 떨게 하는 ‘전임 사법천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자수를 놓고 있었다.
검을 잡던 손이 바늘을 잡았는데도 제법 솜씨가 좋고 다재다능했다. 아마 이것이 여러 신에게 선택받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 수놓았다, 정아, 이것 좀 보렴!” 양회가 웃으며 정아에게 말했다.
정아가 그 자수 작품을 보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어쩜 이렇게 낯이 익을까요… 아, 생각났다! 이건 무류(無留) 선생의 그림이잖아요!”
양회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난 일을 회상했다.
…
“자광 이모, 원앙을 다 수놓았어요.”
자광 이모가 자수를 들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다정하게 가리키며 말했다.
“아가씨, 이모가 가르쳐줄께요. 암컷과 수컷은 구분이 있어야 해요. 마치 남녀가 유별하듯이 남자는 양강(陽剛)해야 하고 여자는 수미(秀美)해야지.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수놓으면 안 됩니다, 아셨죠?”
“네… 그렇군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조금 있다가 무류 선생님이 가르쳐주실 거예요.” 자광 이모가 부드럽게 말했다.
어린 양회가 이모의 말을 되새기고 있을 때 마침 무류 선생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린 양회가 물었다.
“선생님, 여자의 수미함은 어떻게 그려야 하나요?”
무류 선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붓을 들어 어린 양회를 가르치며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양회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실 수 있나요?”
무류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꽃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어찌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겠느냐?”
어린 양회가 다시 물었다.
“그럼 선생님 눈에는 어떤 여인이 가장 아름다운가요?”
그림을 그리던 무류 선생의 손이 멈췄다. 그는 어린 양회를 한번 슬쩍 보더니 창밖을 내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재주가 뛰어나시잖아요, 저를 위해 한 번만 그려주세요!” 어린 양회가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다.
그러자 무류 선생은 새로 비단 한 장을 꺼내 그 위에 그리기 시작했다….
무류 선생은 먼저 산천을 그리고 산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과 선학(仙鶴)을 점점이 그려 넣었다. 또 산 사이에는 도대(道台)를 그리고 그 곁에는 바둑판을 그렸다. 바둑판 옆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피리를 든 채 두 팔을 벌려 막 도망가려 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피리를 든 사람을 쫓아가려는 또 한 사람을 그렸다….
어린 양회가 물었다.
“선생님, 이게 다 무엇을 그리신 거예요? 저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싶단 말이에요!”
주변의 배경을 다 그린 뒤, 무류 선생은 드디어 그 ‘아름다운 여인’을 그렸다. 그는 비단 한가운데에 작은 여인을 천천히 그려냈는데, 그 여인은 노란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올려 매우 활발하고 귀여워 보였다. 그녀는 입을 가린 채 허리를 숙여 웃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뒷모습뿐이었다.
거기까지 그린 무류 선생이 붓을 멈추고 말했다.
“다 그렸다. 그녀가 아름답게 보이느냐?”
어린 양회가 말했다.
“얼굴도 없는데 어디가 아름답다는 거예요?”
무류 선생이 말했다.
“내 생각엔 이것이 가장 아름답단다.”
어린 양회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의 안목은 정말 남다르시네요.”
무류는 웃으며 다시 가르침을 이어갔다.
“자, 너를 위해 다 그렸으니 이제 수업을 하자꾸나.”
무류는 어린 양회가 입술을 내밀며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말했다.
“아가씨, 미인은 뼈대에 있지 피부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피부는 그리기 쉬워도 뼈대를 그리기는 어렵고, 뼈대를 그리려면 형체가 없어야 하지. 방금 내가 그녀의 얼굴을 그렸더라도 네가 반드시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마다 눈이 다르고 심미안이 다르기 때문이지.”
“뼈대를 그리려면 형체가 없어야 한다니, 그 무형의 형체는 무엇인가요?” 어린 양회가 물었다.
무류 선생이 말했다.
“무형은 글을 빌려야 한단다.”
말을 마친 그는 다시 비단 한 장을 꺼내더니, 가장 오른쪽에 세 글자를 세로로 써서 제목을 삼았다. 이 세 글자가 바로 훗날 세상에 전해진….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