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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지키며 달이 차기를 기다려

흔열(欣悅)

【정견망】

달이 성재(誠齋)에는 오지 않고, 만화천곡(萬花川谷)에 먼저 왔구나.
성재에 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 숲의 대나무에 가려진 탓이리라.
이제 겨우 열사흘 밤이건만, 달빛은 이미 옥과 같네.
가을 풍경의 기이함과 절묘함은 아직 이르니, 보름과 열엿새를 보아야 하리.

月未到誠齋,先到萬花川谷。
不是誠齋無月,隔一林修竹。
如今才是十三夜,月色已如玉。
未是秋光奇絕,看十五十六。

세상 사람들의 눈에 달이 둥글어지는 것은 아름다움과 단란함을 상징한다. 옛사람들이 중추절(仲秋節)을 유독 중시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인 양만리의 이 사(詞) 《호사근·7월 13일 밤에 만화천곡에 올라 달을 바라보며 지은 노래(好事近•七月十三日夜登萬花川谷望月作)》은 전체적으로 쉽고 이해하기 편하여, 많은 이들에게는 내용이 다소 빈약해 보일 수 있다. 시인의 지식 축적이 부족해서였을까?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본연의 성품이다.

시인은 불쾌한 일들로 자신의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시인의 시는 불가의 선어(禪語)와 같아서,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내포된 뜻은 깊고 오묘하다.

“달이 성재(誠齋)에는 오지 않고, 만화천곡(萬花川谷)에 먼저 왔구나.
성재에 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 숲의 대나무에 가려진 탓이리라.”

여기서 ‘성재’는 시인이 당시 머물던 거처를 말한다. 달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은 시인이 직접 목격한 풍경으로, 대나무 숲에 가려져 달빛을 볼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달빛은 아름다움과 희망을 상징한다. 시인이 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시인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암시한다. 조정은 어둡고 혼탁하며, 관료들은 저마다 이익만을 쫓느라 기개를 잃어버렸다. 시인은 그들과 동류가 되어 흐려지기를 거부했기에 산림으로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달빛을 가로막은 대나무 숲은 여기서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가? ‘대나무 숲’은 대나무의 지조와 기개를 뜻한다. 대나무에는 굳세고 곧은 면모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자신이 신념을 굳건히 지키며 이익을 위해 굴복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올곧음 때문에 동료 관료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그 결과 ‘달빛’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겨우 열사흘 밤이건만, 달빛은 이미 옥과 같네.
가을 풍경의 기이함과 절묘함은 아직 이르니, 보름과 열엿새를 보아야 하리.”

시인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 보름이나 열엿새가 되면 달빛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거처인 ‘성재’를 비추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곤궁하고 궁핍한 처지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그 안에서 희망과 동경을 품기란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양만리의 시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심상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 이는 시인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수함의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깃들어 있다.

시인의 시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음미해 보면 시인이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깊은 내면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눈에는 선량함과 정의를 굳건히 지키는 자만이 진정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며, 권세에 아부하고 세태에 영합하는 것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었다.

오늘날의 사회는 인심이 예전 같지 않고, 모든 업종이 도태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희망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때 대법(大法)이 널리 전파되면서, 사람들은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 제자들의 선량함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마지막 희망임을 깨닫게 된다.

시인이 선량함을 굳건히 지켜낸 것은 인류가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을 지켜낸 것과 같다. 아울러 이는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법을 얻을 기초를 다져준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가장 감탄스럽고 본받을 만한 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