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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조의 《성성만·심심멱멱(尋尋覓覓)》 감상

흔열(欣悅)

【정견망】

찾고 구하고, 쓸쓸하고 썰렁하며, 처량하고 비참하고 슬프도다.
잠깐 따뜻했다가 다시 추워지는 때가, 가장 몸을 돌보기 어렵구나.
세 잔 두 잔 엷은 술로, 어찌 저녁에 오는 급한 바람을 대적하랴!
기러기 지나가는데, 바야흐로 마음이 아픈 것은,
도리어 옛날에 서로 알던 사이이기 때문이구나.

尋尋覓覓,冷冷清清,淒淒慘慘戚戚。
乍暖還寒時候,最難將息。
三杯兩盞淡酒,怎敵他、晚來風急!
雁過也,正傷心,卻是舊時相識。

바닥에 노란 꽃이 가득 쌓여, 초췌하게 시들었으니, 이제는 그 누가 딸 수 있으리오?
창가를 지키며, 혼자서 어찌 밤이 되게 할 수 있으리오?
오동나무에 또 가는 비까지 더해져, 황혼 무렵에, 뚝뚝 뚝뚝 떨어지는구나.
이러한 정경을, 어찌 ‘시름(愁)’이라는 한 글자로 다 나타낼 수 있으랴!

滿地黃花堆積,憔悴損,如今有誰堪摘?
守著窗兒,獨自怎生得黑?
梧桐更兼細雨,到黃昏、點點滴滴。
這次第,怎一個愁字了得!

이청조(李清照)는 호가 이안(易安)거사이며, 산동 제남 장구(章丘) 사람으로, 송대의 유명한 여류 시인이자 완약사파(婉約詞派)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후세에 ‘천고 제일의 재녀(才女)’로 칭송받는다.

이청조의 초기 사(詞) 작품은 한가롭고 우아한 생활을 많이 묘사하여 언어가 맑고 고우며 자연스럽다. 남쪽으로 이주한 후에는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부서지며 남편과 사별하는 일을 겪어, 사의 풍격이 침울하고 비장하게 바뀌었으며 깊은 인생의 감회를 담았다. 《이안거사문집》, 《이안사(易安詞)》를 저술하였으나 지금은 이미 흩어져 없어졌고, 후대 사람들이 엮은 《수옥사(漱玉詞)》가 세상에 전해진다.

이 작품 《성성만·심심멱멱》은 이청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자 천고에 유전되는 명편이다. 사 전체가 내면 깊은 곳의 비통함과 고통을 쏟아내며 층층이 나아가, 시름과 고통을 극치로 써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또한 문자를 빌려 고통을 토로하고 우울함을 떨쳐버린 작품이다.

“찾고 구하고, 쓸쓸하고 썰렁하며, 처량하고 비참하고 슬프도다.”

시인은 열네 개의 중첩된 글자인 첩어(疊語)로 시작하여 단숨에 써 내려가며, 내면의 공허함, 고독함, 처량함, 비통함을 층층이 추진하여 마치 조수처럼 세차게 분출시켰다. 비록 읽을 때 사람에게 처참함을 배가시키지만, 마음속에 억눌린 고통을 하소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배출이자 해소일 것이다.

“잠깐 따뜻했다가 다시 추워지는 때가, 가장 몸을 돌보기 어렵구나.”

잠깐 따뜻했다가 다시 추워지는 것은 일 년 중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때이다. 많은 중년층도 계절이 바뀔 때 종종 신체적 불편함, 관절의 시린 통증, 정신적 피로를 느낀다. 시인은 이러한 계절에 처해 있고 또 인생의 거대한 변화를 겪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으니, 자연히 몸을 보양하고 휴식하기가 더욱 어렵다. 여기서는 날씨를 썼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심경을 썼다.

“세 잔 두 잔 엷은 술로, 어찌 저녁에 오는 급한 바람을 대적하랴!”

몇 잔의 엷은 술을 마셔 본래 추위를 쫓아내고자 했으나, 결국 저녁에 갑자기 일어난 차가운 바람을 당해내지 못한다. 여기에서의 ‘추위’는 신체로 느끼는 추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마음속의 추위이다.

사람의 힘은 많은 경우 온전히 외재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오는 것이 많다. 내면이 희망과 빛으로 가득 찰 때는 비록 역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만, 내면이 의탁할 곳을 잃었을 때는 아무리 많은 술이라도 그 뼛속까지 시린 차가움을 쫓아낼 방법이 없다.

남편과의 사별, 조국의 멸망, 정처없는 유랑은 시인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거의 잃게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비통해하는 근원이다. 그리고 ‘저녁에 오는 급한 바람’ 역시 자연계의 바람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바람 앞의 등불 같고 산하가 부서진 시대 상황을 상징하는 듯하다.

“기러기 지나가는데, 바야흐로 마음이 아픈 것은, 도리어 옛날에 서로 알던 사이이기 때문이구나.”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데, 지금과 옛날의 처지는 이미 천지 차이이다. 옛날의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과 오늘날의 외롭고 고통스럽게 떠도는 인생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어, 눈앞의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어나 시인의 끝없는 슬픔을 더욱 자아낸다.

“바닥에 노란 꽃이 가득 쌓여, 초췌하게 시들었으니, 이제는 그 누가 딸 수 있으리오? 창가를 지키며, 혼자서 어찌 밤이 되게 할 수 있으리오?”

곳곳에 국화꽃이 이미 시들어 떨어져 다시는 꺾을 사람이 없으니, 마치 시인 자신처럼 바람과 서리 속에서 점차 초췌해진다. 홀로 창 앞을 지키며 길고 긴 하루가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니,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이토록 길게 느껴진다. 그러한 날을 보낼 때 일 년처럼 느끼는 고독과 무력함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픔을 배가시키게 한다.

“오동나무에 또 가는 비까지 더해져, 황혼 무렵에, 뚝뚝 뚝뚝 떨어지는구나.
이러한 정경을, 어찌 ‘시름(愁)’이라는 한 글자로 다 나타낼 수 있으리오!”

오동나무, 가는 비, 황혼은 본래 중국 고전 시가에서 가장 쉽게 시름을 자아내는 의상(意象)의 조합이다. 가는 비가 한 방울 한 방울 오동나무 잎을 두드릴 때, 마치 시인의 마음을 한 번 또 한 번 치는 것과 같다. 공기는 더욱 서늘하고 축축하며, 눈앞의 모든 경물이 내면의 비통함과 하나로 융합된다.

여기에서의 ‘뚝뚝 뚝뚝(點點滴滴)’은 비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생에 잇달아 닥쳐오는 온갖 고난을 상징한다. 진정으로 사람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결코 어떤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무수한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끊임없이 누적되어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중한 짐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찌 ‘시름’이라는 한 글자로 다 나타낼 수 있으리오라는 천고의 개탄을 한 것이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보면, 이청조가 겪은 것은 개인 운명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 왕조가 번성함에서 쇠락함으로 가는 시대의 축소판을 비추어 보여준다. 국가가 바람 앞의 등불 같고 개인이 의지할 곳 없이 떠돌며, 안팎의 우환이 잇달아 닥쳐오니, 속담에서 말하는 “지붕이 새는데 마침 잇따라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도 종종 이와 유사한 느낌을 갖는다. 각종 곤란과 번뇌가 연이어 끊이지 않아, 한 가지를 해결하면 또 다른 한 가지가 나타나 마치 영원히 끝이 없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미래에 대해 미망함을 느끼고 심지어 희망을 잃어버린다.

지금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져 중생을 위해 하나의 광명한 길인 ‘법을 얻어 원만하여 하늘로 돌아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간 세상의 일시적인 명리와 향락 에 빠져, 이 소중한 기연(機緣)에 대해 아무런 감흥이 없다. 만약 이 때문에 반본귀진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