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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을 탈출한 기쁨과 다행 — 이상은의 《만청(晚晴)》 해독

청풍(清風)

【정견망】

깊은 곳에 거처하며 성벽을 굽어보니,
봄은 가고 여름인데도 여전히 맑고 서늘하구나.
하늘의 뜻은 그늘진 풀을 가련히 여기고,
인간 세상은 늦게 갠 날씨를 귀하게 여기네.
높은 누각은 더더욱 멀리 뻗어 보이고,
은은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작은 창이 밝아온다.
남쪽 새는 둥지가 마른 후,
돌아가 날아오르니 몸이 더욱 가볍구나.

深居俯夾城,春去夏猶清。
天意憐幽草,人間重晚晴。
並添高閣迥,微注小窗明。
越鳥巢幹後,歸飛體更輕。

이상은의 이 시는 847년에 지어졌다. 당시 그는 우이당쟁(牛李黨爭)에서 벗어나 계림(桂林)의 깊은 곳에 거처하고 있었다. 이상은의 시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왔는데, 이 시는 그나마 쉬운 편이며 글자도 비교적 직설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안개 속에서 꽃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실 이상은의 신세를 결부시키고 일반 속인의 차원을 뛰어넘는다면, 이 시가 진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작가가 세속적 명리라는 새장을 탈출한 후 고요한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기쁨과 다행임을 알아챌 수 있다.

“깊은 곳에 거처하며 성벽을 굽어보니,
봄은 가고 여름인데도 여전히 맑고 서늘하구나”

여기서 ‘깊을 심(深)’ 자는 시인이 두문불출하는 상태임을 설명해 주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작가는 우이당쟁에서 탈출했는데, 즉 명리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자연히 일반 속인들과 많이 왕래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는 도연명의 “사람 사는 곳에 오두막 지었으나, 마차 소란스러운 소리 없네(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와 매우 유사하다. “봄은 가고 여름인데도 여전히 맑고 서늘하구나”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자 또한 심경(心境)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맑을 청(清)’은 기후의 청량함 뿐만 아니라 내면의 청정함이기도 하다. 세속의 명리에 열중하는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깨닫고 느낄 겨를이 없다.

다음은 천고의 명구이다.

“하늘의 뜻은 그늘진 풀을 가련히 여기고,
인간 세상은 늦게 갠 날씨를 귀하게 여기네.”

이 구절은 시인 본인의 상황과 결부시켜야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은 어릴 때부터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고, 나중에는 도가의 영향도 받았다. 사실 불교든 도교든 모두 수행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명리를 내려놓게 한다. 시인은 이전에 우이당쟁에 처해 있어 수행할 겨를이 없었으나, 지금은 이것들에서 벗어나 고요한 마음으로 수행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작가는 천부적인 근기가 좋아서 사람의 진정한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真)임을 알고 있었기에, 수행할 시간이 생긴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여기에서 ‘그늘진 풀(幽草)’은 작가 본인을 가리킨다. 그는 하늘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수행할 타이밍을 주었다고 느꼈다. 작은 것을 잃고 큰 것을 얻었으니 참으로 큰 행운인 것이다. ‘늦게 갠 날씨(晚晴)’ 역시 심경을 묘사한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어쨌든 갠 날이므로, 생명 속에서 본래의 참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연(機緣)을 가리킨다.

이 두 구절은 극히 정채롭다. 천고에 유전된 까닭은 사실 하나의 이치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자비하시니, 오직 도를 구하려는 마음이 있고 사람 몸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부처님은 언제나 당신에게 기연을 주신다.

“높은 누각은 더더욱 멀리 뻗어 보이고,
은은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작은 창이 밝아온다”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경험이 있다. 높은 곳에 서면 시야가 트여서, 생활 속에서 명리와 정(情)을 위해 생겨난 많은 번뇌가 적잖이 경감된다. 작가는 여기에서 풍경을 빌려 명리를 내려놓은 후의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깨달음인가?

“남쪽 새는 둥지가 마른 후,
돌아가 날아오르니 몸이 더욱 가볍구나”

여기서 ‘돌아갈 귀(歸)’ 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전체 시의 시안(詩眼 시의 핵심)이며, 본래의 참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반본귀진(返本歸真)을 가리킨다. 마음이 가벼운 자가 천당에 올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아주 이치가 있다. 시인은 여기에서 겉으로는 풍경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집착을 내려놓은 후 홀가분한 심태 말하고 있다. 더 많이 내려놓을수록 심성(心性)이 더 높아지고, 수련의 층차 역시 더 높아진다.

이 시를 돌아보면, 풍경을 묘사한 것이 또한 감정을 묘사한 것이고, 본 것을 묘사한 것이 또한 깨달은 것을 묘사한 것이다. 깊은 내용을 얕게 풀어냈으며, 풍경에서 이치로 들어서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과연 대가의 솜씨라 할 만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