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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동안 구름 밖에서 술에 취한 몸

섬섬(纖纖)

【정견망】

강가에 유유히 묻는 사람 없고,
십 년 동안 구름 밖에서 술에 취한 몸으로 지냈네.
정성껏 정향의 매듭을 풀고,
무성한 가지를 펴서 얽매임 없는 봄을 발산하리.

江上悠悠人不問
十年雲外醉中身
殷勤解卻丁香結
縱放繁枝散誕春

육구몽(陸龜蒙)은 당대의 농학자이자 문학자이며, 자는 노망(魯望), 호는 천수자(天隨子), 강호산인(江湖散人), 부리선생(甫裏先生)이고, 오현(吳縣 지금의 소주) 사람이다. 그는 과거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진 못했고, 나중에 차례로 호주(湖州)와 소주(蘇州) 자사의 막료를 지냈으며, 말년에 송강 부리에 은거했다. 저서로 《부리선생문집》 등이 있으며, 그의 소품문장은 대부분 《입택총서(笠澤叢書)》에 수록되어 있다. 육구몽은 피일휴(皮日休)와 교분이 두터웠고, 두 사람은 나란히 “피륙(皮陸)”이라 불렸다. 그의 시는 대부분 경치를 묘사하고 사물을 영탄하며, 풍경이 청신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종종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감상을 의탁했다.

《정향(丁香)》은 사물을 빌려 뜻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시인은 정향을 자신에 비유하여, 정향이 아무도 찾지 않는 것을 통해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 대한 감회를 토로함과 동시에, 알아주는 이를 만나 재능을 펼치고 싶어 하는 바람을 표현했다.

“강가에 유유히 묻는 사람 없고,
십 년 동안 구름 밖에서 술에 취한 몸으로 지냈네.”

강가의 정향은 쓸쓸히 피어나건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시인 또한 마치 구름 밖에 몸을 둔 듯 취기와 소탈함 속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 이는 정향의 고적함을 씀과 동시에 시인의 처지를 쓴 것이다. “묻는 사람 없다”라는 세 글자는 평범해 보이지만, 지음(知音)을 찾기 어렵고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정성껏 정향의 매듭을 풀고,
무성한 가지를 펴서 얽매임 없는 봄을 발산하리”

정향의 꽃봉오리는 단단히 맺혀 있어 마치 시인의 마음에 맺힌 회포와 같다. 만약 누군가 정성껏 대하며 이 “정향의 매듭”을 풀어준다면, 그것은 번성한 가지를 펴고 봄바람 속에서 마음껏 피어날 것이다. 시인은 적절한 기회만 얻는다면 자신의 재능도 만개한 정향처럼 온전히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만당 시기 비록 과거를 인재 선발의 중요한 통로로 삼았으나, 과거 외에도 문벌, 명망, 그리고 타인의 추천 역시 한 사람의 벼슬길에 영향을 미쳤다. 육구몽은 과거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그저 지방의 막료만을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에 의지해 인정받기를 바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는 또한 우리에게 또 다른 의문을 갖게 한다. 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자 한다면, 과연 백락(伯樂)이 찾아와 발견해 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먼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불우한 처지는 물론 시대의 운명과 환경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만약 모든 희망을 타인에게만 의탁한다면 쉽게 수동적인 처지에 빠지게 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충실히 채우고 묵묵히 실적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꽃향기는 바람을 따라 흩날릴 수 있지만, 사람의 재능은 반드시 행동과 성과를 거쳐야만 비로소 남에게 보일 수 있다. 거듭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기보다는, 차라리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이미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는가, 그리고 진정으로 남을 승복시킬 만한 일을 해내었는가?

제갈량은 겉보기에는 사람의 추천을 거치고 유비가 초려를 세 번 방문한 덕분에 비로소 세상에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앉아서 공명(功名)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융중에 은거하는 동안 그는 천하의 대세를 염려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용병하는 재능을 축적하며, 이미 장차 감당할 일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두었다. 그는 부귀영화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자기가 필요할 때는 큰 책임을 떠맡을 수 있었다. 그가 세상에 나와 유비를 보좌한 것은 공명을 좇았다기보다 자신을 알아준 은혜에 보답하고 마음속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 편이 낫다.

《봉신연의》 속의 강자아와 신공표 역시 음미해 볼 만한 대조를 이룬다. 강자아는 원래 산속에 남아 도를 닦기를 원했으나 사부님의 명을 받들어 산을 내려와 주나라를 일으키고 주왕(紂王)을 토벌하는 큰 임무를 맡았다. 반면 신공표는 온통 공업(功業)을 세우는 데만 마음을 쏟았으나 끝내 원시천존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물론 이는 소설 속의 줄거리에 불과하지만, 한 가지 전통적 관념을 기탁하고 있다. 즉 한 사람이 큰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비단 재능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의 심성과 품격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제갈량이든 강자아든, 바로 그들이 명리에 완전히 얽매이지 않았기에 책임을 마주했을 때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개인의 득실 때문에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인정받고 중용되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비록 기회가 진정으로 찾아온다 하더라도 득실을 염려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육구몽이 진정으로 백락을 만났는지는 오늘날 우리가 간단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그의 벼슬길이 순탄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천리마”가 아니라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환경, 만남, 그리고 개인의 선택은 대개 한 사람의 운명을 공동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 시로부터 우리는 여전히 일종의 시사를 얻을 수 있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환경의 한계를 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안으로 원인을 찾는 법도 알아야 하며, 지음을 기대할 수 있을지언정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타인에게 의탁해서는 안 된다.

속담에 이르기를 “금은 어디에 있든 빛나는 법이다”, “술이 향기로우면 골목이 깊어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말들은 비록 모든 처지에 들어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남이 발견해 주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향상하는 편이 낫다고. 진정한 재능은 마음속에 감추어 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더욱이 행동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진정한 가치는 결국 스스로 조금씩 증명해 내야 하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