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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도협전 | 제2회 기근이 들판에 가득하니 붉은 옷 무리 넘쳐나고, 큰 역병이 사람을 죽이니 그 수가 헤아릴 수 없구나 (2)

북국촌로(北国野叟)

【정견망 2021년 1월 16일】

앞서 대금국 선종이 구공(九公)을 선무사로 봉하여, 20여 년간 비적들의 환란과 몽골의 침략을 강압적으로 막아내려 했으나, 연경과 요양을 먼저 잃고 뒤이어 대명과 동평까지 빼앗겼다. 물러나고 또 물러나다 보니, 나라의 꼴은 위태롭기 짝이 없어 조정을 기약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애종이 즉위하여 본래 전쟁을 멈추고 간신과 아첨꾼을 제거하며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으나, 삼봉산 전투에서 정예병과 훌륭한 장수들을 거의 잃고 말았다. 몽골은 그 승세를 몰아 추격해 오더니, 곧장 변경(汴京, 개봉)을 향해 들이닥쳤다.

천흥 원년(1232년) 정월 어느 날, 변량 성 밖은 행상들과 길가는 사람들, 노인과 어린아이, 부녀자들, 농사꾼과 상인들로 가득 찼고 성문 아래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몽골 간첩을 막는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성 밖 백성의 절반 이상은 연경 등지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었는데,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간절히 살길을 찾고 있었다. 다급해진 몇몇 젊은 농부들이 성문 앞으로 달려가 장애물을 치우려 하자, 성을 지키던 관병들이 그들을 바닥에 짓누르고 가죽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순식간에 비명 소리, 고함 소리, 분노 섞인 욕설,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했다. 밀치고 당기는 아수라장 속에 소란이 일어날 판이었다.

성루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중년의 선비가 서둘러 내려와 여진족 백부장(百夫長)에게 꾸짖듯 물었다. “저들은 모두 대금국의 백성이오. 그대들이 천자의 발밑에서 백성을 이토록 대한다면, 대금 황제에게 오명을 씌우려는 것이오, 아니면 대금이 민심을 잃고 당장 망하게 하려는 것이오?”

백부장은 그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여진어로 휘하 관병들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관화(官话)로 되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길래 상관할 바 아닌 일에 끼어드는 거요?”

“본관은 상서성 좌사도사(左司都事) 원호문(元好問)이오. 대금국의 관리로서 어찌 대금국의 일을 참견하지 않을 수 있겠소?” 원호문이 당당하게 말했다.

“하하하, 어이쿠, 누구신가 했더니 남양 현령 원 대인이셨군요! 대인이 경성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안 되었는데, 상서성에서 공무나 볼 것이지 왜 우리 형제들 군무에 끼어드시는 거요?!” 당시 한인들도 과거를 통해 벼슬에 오를 수 있었으나, 금나라 내에서 맹안모극(猛安謀克)의 조제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무장이나 관병들이 경성에 있는 5, 6품 문관보다 계급이 높고 누리는 혜택도 많았으며, 여진족은 스스로 한인들보다 위에 있다고 여겼다. 남경 성문을 오랫동안 지켜온 백부장으로서는 누가 입경하고 누가 떠나는지 모를 리 없었으나, 한인 관리나 외관은 눈에도 두지 않았다.

원호문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비록 일개 선비일 뿐이나, 임금의 녹을 먹는 자로서 임금의 근심을 나누고, 불공평한 일을 보면 진심 어린 간언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도리요. 그대들이 우리 대금의 백성을 이토록 학대한다면, 만약 내가 성상께 이 일을 고한다면 어떤 처벌을 받겠소?”

“흥! 대금국이라니! 지금 전선 상황이 급박하오. 만약 사사로이 유민들을 성안으로 들여보냈다가 몽골 간첩이 섞여 들어와 난동이라도 부리면, 원 대인, 그 군사 기밀에 관한 막중한 책임을 당신 같은 한인 문관 따위가 감당할 수 있겠소?”

백부장은 비록 무관이지만 변경 성문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고 상황의 위급함과 이해관계를 잘 알고 있는 자라 결코 어리석지는 않았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라 했소. 그대들이 전선에 병력과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군량이 우리 대금 백성들이 땀 흘려 일군 곡식이며 군비가 백성들이 바친 세금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우리 대금 백성이 없는데 어찌 그대들을 먹일 군량과 군비가 나오겠소? 성 아래 백성들이야말로 그대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부모인데, 그 부모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다면 군량과 군비는 어디서 나오겠소? 식량도 군비도 없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경성 방위가 무슨 소용이며, 누가 그대들의 강산 사직을 지킬 수 있겠소?!”

원호문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쩌렁쩌렁 울렸으며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 백부장은 말문이 막혀 어찌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곁에서 맞장구치며 원 대인이 참으로 좋은 관리라며 칭송했다.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군중 속에서 갑자기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소요건(逍遥巾)을 쓰고 나무 약상자를 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손에 약초를 태우는 향로를 들고 등 뒤에는 무명천으로 된 깃발을 걸었으며, 깃발 아래에는 호리병이 달려 있었다. 그 사람이 두어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허리를 굽혀 읍을 하며 말했다. “저는 이명지(李明之)라 합니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매우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가 산동과 하남을 돌아다녀 보니 굶어 죽은 시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엄동설한에 추위와 병으로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이제 이 변량에만 먹을 것과 잘 곳이 있는데, 이곳이 아니면 우리 같은 백성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원호문은 그 말을 듣고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혹시 그대, 역주(易州)의 명의이신 결고노인(洁古老人)의 높은 제자(高徒)이신 이동원(李東垣) 선생이 아니시오?”

“과찬이십니다. 결고노인께서는 제 스승님이십니다. 저는 그저 산골의 촌부이자 강호를 떠도는 의원일 뿐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높은 조정에 계시면서도 사해 백성을 걱정하시고 천하 창생을 생각하시니, 진정한 고인이십니다. 정오가 지났는데 날은 춥고 물과 음식은 부족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해 병이 창궐합니다. 최근 서쪽에서 오는 유민도 많은데, 선생께 좋은 방책이 있으십니까?” 이명지가 되물었다.

“이것 참…….” 원호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유민을 수용하는 일은 관계가 중대하여 그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망설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나귀 수레 위로 뛰어올라 큰소리로 외쳤다.

“고향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이 말이 나오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그 사람은 현지 백성들과는 다르게 체격이 건장했고, 삼베 옷을 입었지만 그 몸에 걸치니 위엄이 느껴졌으며, 말투는 간절하면서도 기백이 넘쳤다.

그는 발밑의 마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여러분은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이곳에 왔고, 노인과 아이를 부축하며 가족들을 이끌고 왔소. 여기서 소란을 피워 관가에 노여움을 사면 우리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또 추위에 떨지 않겠소? 나는 이곳에 장사하러 왔는데, 지금 흉년이라 장사가 잘 안 돼서 쌀과 밀가루가 좀 남았소. 차라리 여기서 불을 피우고 솥을 걸어 죽을 쑤어 다 같이 나누어 먹고, 기운을 차린 뒤에 관가와 논의합시다. 아까 원 대인께서 말씀하신 것이 지당하오. 이 변경 개봉부는 천자의 발밑이니 누가 우리를 대신해 주지 않겠소? 고향 사람들,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소?”

“좋소, 좋소, 좋소! 식량 나누는 게 왜 안 좋겠소? 배가 고파 죽겠는데 말이오.” 사람들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누군가는 깨진 솥을 찾았고, 누군가는 낡은 사발을 꺼내어 죽을 나누어 받기를 기다렸다. 어떤 이들은 아예 천막을 치고 앉아 쉬면서 사태를 관망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수레에서 뛰어내려 단검으로 곡식 자루를 찢어 보였다. 과연 하얀 쌀과 밀가루가 가득했다. 그는 곧바로 불을 피우고 화로를 걸어 사람들에게 국을 끓이고 죽을 쑤게 했다.

성을 지키던 백부장은 소란이 거의 잦아든 것을 보고 여진어로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앞서 자신과 다투었던 농부를 한쪽으로 끌고 가게 했다. 하지만 장애물은 그대로였고 성문은 굳게 닫힌 채, 관병들은 저마다 칼자루에 손을 얹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관병들에게 읍하며 웃으며 말했다.

“관원 나리들, 소인과 형님은 상당공(上党公) 완안개(完颜开) 대인의 초청을 받고 이곳에 왔으니, 상관께 보고하여 편의를 좀 봐주시고 성 안으로 들여보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을 마치고는 표범 무늬가 새겨진 구리 패를 꺼내 보였다.

백부장은 그 사람을 힐끗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패는 진짜군. 하지만 방금도 들었지 않소. 조정의 명령이라 성 안으로 사람을 들일 수 없단 말이오. 형제들도 이 노릇 하기가 참 어렵소.”

그 사람은 즉시 뜻을 알아차리고 품에서 은자 한 덩이를 꺼내 몰래 백부장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백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은자를 받아 챙겼다.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진 그가 말했다. “물론, 모든 일은 상의하기 나름이지. 이렇게 하시오. 오늘 이 소동이 적지 않으니, 일단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가 상관에게 보고하고 답을 찾아오겠소.”

그 사람은 웃으며 다시 소매 속에서 은표 몇 장을 꺼내 구리 패와 함께 백부장에게 건네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슨 뜻인지 압니다만, 사정이 급하니 나리께서 속히 통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진족 백부장은 무척 흡족해하며 즉시 부하를 불러 성 안으로 통보하러 보냈다.

원호문은 본래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소란이 일어 관병과 이론을 벌였던 참이었다. 지금 이 뇌물을 주고받는 꼴을 보니 역겨운 마음이 들어 돌아서려는데, 그 남자가 그를 불렀다.

“원 대인, 걸음을 멈추십시오.”

원호문이 물었다. “무슨 일인지, 가르침을 주시겠소?”

그 사람은 발 움직임이 놀라워 어느새 원호문 곁에 다가와 있었다. 그는 싱글벙글하며 다시 읍을 하고 말했다.

“원 대인, 소인은 대인의 속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대인께선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시겠지만, 성 밖의 백성들을 살리려면 소인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호문은 멈칫하며 물었다. “선생은 누구시기에 내 속마음을 안다는 것이오?”

“허허, 말씀드리지요. 성은 백(柏)이고 자는 양산(亮山)이라 하오. 천한 이름이라 별로 내세울 건 없소. 원 대인께선 소인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가서 사람을 살릴 방책을 함께 상의합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서 통보하러 들어갔던 관병이 달려 나와 여진어로 백부장에게 다급히 몇 마디를 지껄였다.

백부장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거만했던 태도를 싹 바꾸어 백 선생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며 말했다.

“하관이 일개 무식한 놈이라 이토록 중요한 기밀을 몰라보았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바로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구리 패와 신표, 은표와 은자들을 모두 그대로 돌려주었다. 백 선생은 더 말하지 않고 웃어넘겼는데, 다만 은자는 받지 않고 백부장에게 도로 쥐여 주었다. 그러고는 성을 지키는 관병들에게 말했다.

“이 원 대인은 내 친구인데, 이번에 곡식을 함께 운반해 들어가는 길이오. 그저 속마음을 좀 터놓고 말했을 뿐이니 원망하지 마시오.”

성을 지키던 관병들은 모두 허리를 굽신거리며 거듭 예라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물론이고말고요. 안심하고 가십시오.”

이명지와 원호문은 백 선생과 함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곡식 두 수레를 남겨둔 채, 말을 끌고 관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먼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