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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름과 회귀의 의지

원형(源馨)

【정견망】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으며,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듯이 가을은 늘 사람에게 감탄과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가을은 쇠락의 계절인 동시에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마치원(馬致遠)의 《천정사·추사(天淨沙·秋思)》를 읽을 때마다 늘 큰 감동을 받는데, 제목은 ‘추사(가을 생각)’이지만 곡 전체에 ‘가을(秋)’이란 글자는 하나도 없다. 추사, 즉 가을 생각, 그는 가을 풍경으로 시름을 표현했고 풍경을 빌려 심경을 전한 것이다.

마른 덩굴과 늙은 고목에 해질녘 까마귀,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가 인가,
오래된 길과 서풍 속의 여윈 말.
석양은 저물어가는데,
창자 끊어지는 이는 하늘 끝에 있네.

枯藤老樹昏鴉,
小橋流水人家,
古道西風瘦馬。
夕陽西下,
斷腸人在天涯。

언어는 간단하지만 매우 생동감 있는 화면을 그려낸다. 왜 ‘창자 끊어지는 이(斷腸人)’가 있으며, 그는 왜 이토록 수심에 잠겨 괴로워하는가?

어떤 이들은 마치원이 벼슬길이 풀리지 않아 수심에 잠겼고, 말년에 곤궁하고 비참한 유랑 생활 속에서 이 곡을 지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만약 그런 심경이었다면 중화문화(中華文化)의 일부로서 천고에 전해 내려와 가가호호 널리 알려지진 않았을 것이다.

“마른 덩굴과 늙은 고목에 해질녘 까마귀”,

덩굴은 나무줄기를 감싸고 까마귀는 나뭇가지 끝에 깃들어 그것들은 서로 의지하고 있지만, 이루어진 화면은 이토록 처량하다. 일과 사물,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는 모두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칙 속에 있어서 어느 것도 무상(無常)을 피할 수 없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사람이 추구하는 명(名)·리(利)·정(情)이 바로 그 중의 사물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있어 이런 것들은 시들고 말라비틀어진 쇠퇴한 풍경과 같을 터인데, 어찌 그것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시름에 잠기겠는가?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가 인가”

마치원은 말년에 타향에서 나그네로 떠돌았기에, 어떤 이들은 그가 떠돌며 의지할 곳이 없어 괴로워했다고 말하며, 이 풍경은 그의 망향(望鄕)의 정과 떠돌며 불안해하는 시름을 묘사한 것이라 한다.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워함이 어찌 인간세상의 안식처 한곳을 그리워하는 것뿐이겠는가. “타향을 오인하여 고향으로 삼는다(返認它鄉是故鄉)”고 하였으니, 어쩌면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돌아갈 집이 애초에 이곳에 없음을 깨달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길과 서풍 속의 여윈 말”,

이 길을 걷는 사람 중에 이토록 시름겨운 심정을 가진 이가 예나 지금이나 어찌 그 한 사람뿐이겠는가. 생명이 윤회하며 전전하고 이리저리 찾아 헤매는 것은, 소동파의 말과 같다. “인생은 나그네길, 나 역시 행인이라네(人生如逆旅,我亦是行人).”

“석양은 저물어가는데, 창자 끊어지는 이는 하늘 끝에 있네”로 곡이 마무리된다. 끝까지 사색을 이어온 저자가 진정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석양은 저물어가고 날은 저물어 갈 길이 아득한데, 집은 어디에 있으며 집으로 가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마치원은 말년에 벼슬길을 멀리하고 은둔하며 ‘동리(東籬)’라 스스로 호를 지었으니, 그의 뜻이 애초에 벼슬과 명리를 구하는 데 있지 않고, 홍진(紅塵)에 생명이 내려온 근본을 깨달아 본성으로 돌아가 참됨을 찾는 ‘도(道)’를 찾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을 풍경으로 시름을 전달한 것에는 깊은 이별의 고통이 담겨 있다. 생명이 인간세상으로 떨어져 자신의 진정한 고향에서 멀어졌으니, 얼마나 돌아가고 싶어 하겠는가.

[역주: 동리(東籬)는 동쪽 울타리란 뜻으로 도연명의 시에 등장한다. 중국 문학에서 ‘동쪽 울타리’는 번잡한 세속을 떠난 은둔이나 여유로운 삶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도를 찾는 것이야말로 그의 의지이자 그의 마음속 시름이었다. 생명이 홍진 속으로 떨어지면 곧 미혹 속에 빠지게 된다. 명리(名利)와 정구(情仇 정과 원수)는 인류 사회라는 커다란 염색 가마 속의 염료와 같으니, 명예를 다투고 이익을 쫓는 통에 어찌 물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인과 업채(業債)까지 더해져, “진흙 속에서 자라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出淤泥而不染)”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하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진정한 정법대도(正法大道)와 상사(上師)의 가지(加持)를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를 이룰 수 있겠는가.

이 곡(曲) 속에는 마치원의 의지와 시름, 그리고 찾아 헤맴과 기다림이 담겨 있으며, 바로 이러한 회귀의 심경 덕분에 중화문화의 일부로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오늘날 진정으로 사람이 수련을 통해 고층차로 승화할 수 있게 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전 세계로 널리 퍼지고 있으니, 여러분은 만고에 만나기 힘들고 천만 년을 기다려온 이 신성한 인연을 잡았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