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대륙 부일신(復一新)
【정견망】
수련을 20여 년간 했음에도 적막(寂寞)에 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대해 이해가 얕았다. 최근 적막에 대한 법리에 대해 좀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어 써내어 동수들과 함께하고자 한다.
나는 1998년 대법수련으로 들어왔다. 지난 20여 년간 비바람 속에 간난(艱難)의 세월을 걸어왔다. 대법수련 중에 법리를 알고 기뻐하기도 했고 심성관을 넘지 못해 번뇌하기도 했다. 사람을 구하는 중에 중생이 구도되어 스스로 자부하는 희열도 있었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중에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해 박해로 눈물을 흘리며 상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연기처럼 지나갔지만 다년간 곤혹스럽고 이해하지 못하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길고 긴 세월 중에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련 중에서 이 길이 도대체 아직 얼마나 길지 알 수 없었고 이 박해가 대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 알 수 없었다.
금년에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공부하다가 나의 모든 미혹이 해결되었다. 자비하신 사존께서는 제자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줄곧 이야기하는데, 나는 수련에서 사실 가장 고달픈 것은 (사부님 웃으심) 바로 기나긴 세월이라고 말하는데, 마련(魔煉) 중의 그 기나긴 세월이다. 끝을 볼 수 없고, 최후의 그 날을 볼 수 없는바, (사부님 웃으심) 사실 이것이 가장 고달프다.”(2018년 워싱턴 DC 설법)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수련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자신에게 해이해지지 않도록 설법 중에서 이미 여러 차례 일깨워 주셨다. 만약 정진하는 동수라면 절대 수련의 세월이 그리 길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며, 자비하신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으로 바꿔 오신 사람을 구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져 시간을 다그쳐 사람을 구하고 또 사람을 구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고생을 좀 하는 것은 아주 빨리 지나갈 수 있고, 잘하지 못하면 지난 후에 바로 명백해진다. 가장 어려운 것은 가망이 없는 가운데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오히려 줄곧 정진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해내기가 가장 어렵다.”(각 지역 설법 9-씬탕런방송토론회설법)
사부님께서는 희망이 없는 중에 수련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보셨다. 그러나 정진하는 동수는 줄곧 정진할 것이며 그런 정진하는 동수를 보기란 어렵지 않고, 희망이 없는 중에서 수련의 희망을 볼 것이다.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충분히 잘 이용해 보다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사람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적막이다. 적막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고, 적막은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의 일체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으며, 적막은 심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언어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는데 가장 두려운 고통 중 하나이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그렇다. 사람의 수련은 고생을 겪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수련하지 않고 보통 속인과 같다면 하루 종일 놀고 마시며 생활할 것이다. 아마 속인과 같이 마작을 하고 도박장에 들락날락 할 것이다. 또는 속인과 마찬가지로 홍등가에서 황음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저질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인이다. 대법 중에서 수련하니 이 얼마나 신성한 일인며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무엇 때문에 적막한 사람마음이 생겨나는가? 이는 바로 적막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적막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적막은 더욱 자신을 통제한다.
2018년부터 시작해서 나는 적막이 온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리 강렬하지 않았고 그저 과거의 친구들이 점점 나를 멀리하는 것을 느꼈다. 과거에 늘 나를 찾던 친구들이 나중에 내가 친구들을 찾지 않자 친구들도 거의 자발적으로 나를 찾지 않게 되었다. 일부 친척들 역시 알게 모르게 나와 소원해진 것 같았다.
이 때문에 나는 좀 당황스럽고 불안해졌다. 수련을 하는데 어찌 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한해가 다가도록 왕래하는 친구가 거의 없는데 이것이 어디 과거의 나와 같은가?(수련 전에 나는 친구들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나는 늘 자신에게 반문하곤 했다. 내가 어디에서 잘못했기에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는가? 최근 2년간 여러 차례 심성관을 넘기는 문제가 나타났다. 어떤 때는 또 수련인이 적막을 수련할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저 생각에 불과했을 뿐 그것을 이성적인 인식까지 제고하진 못했다.
올해 역병이 나타난 후 이런 의식이 더 심해졌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진지하게 법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다음 법을 공부할 때 알게 되었다.
“고생이라,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지난 후에 바로 명백해진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적막 속에서 묵묵히 수련하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수련도 모두 이런 고험을 겪게 되며 모두 이러한 길을 걷게 마련이다.”(씬탕런방송토론회설법)
나는 정말로 알았다. 수련인은 수련의 길에서 모두 이 한 난(難)을 겪을 것이며 모두 이런 길을 걸어갈 것이다.
명백히 알고 나자 나는 많이 가벼워졌다. 이번 세(世)에 친구들과 어떻게 왕래하는가는 모두 전세(前世)의 인연에 따른 것으로 오직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구도하기만 하면 된다. 나와 왕래하지 않는다 해도 더 이상 억지로 왕래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어떤 일을 해야 하면 그것을 하면서, 사부님 말씀에 따라 일체를 사람 구하는 데 두고 적막 중에서 적막을 닦아버리는 한 단락 시간을 거쳤다. 그 후 적막이란 이 사람마음을 아주 많이 닦아 없앴다. 그것은 이미 더 이상 나를 좌우할 수 없게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에 감사드린다.
적막을 두려워하는 이런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나는 더 좋아졌고 교란도 많이 줄어들었으며, 보다 많은 시간을 법공부와 사람을 구하는데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고려하셨다. 우리가 오직 법공부를 잘하고 법에서 수련하고 법에서 깨닫기만 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란 없고 또한 넘어가지 못할 함정(坎)도 없다.
마지막으로 사부님 법의 한 단락으로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희망이 없을 때일수록 희망은 바로 눈앞에 있을 것이다. 무료하게 느껴질수록 바로 당신의 위덕을 세우는 중일 것이다.”(각 지역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3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