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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회 탐구 시리즈 : 왕야, 낙백서생, 스님, 수련자

생명윤회 탐구 시리즈 : 왕야, 낙백서생, 스님, 수련자

항명의 경력(과거, 현재와 미래)

작가:항명

【정견망 2005년 5월 23일】

임안(臨安)은 남송의 옛 고을인데 당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고 상업, 수운이 매우 발달하고 번영하여 문인, 묵객이 많이 모여들었다. 근 수백년간 악비, 문천상, 육류, 이청조 등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장수, 시인 등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라가 분쇄되고 집이 망하자 일생동안 국가의 통일을 바라며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황제는 안일만 탐하고 의지도 없어 그들의 광대한 지향에 기대를 저버렸고 위대한 애국지사는 단지 후세를 깨우쳐주는 천고의 노래만 남겨 놓았다. 예를 들면 악비의 “만강홍(满江红)”이나 문천상의 “정기가(正气歌)” 같은 것으로 육백여년 후 항전시기에 국민정부에서 국군 병사의 좌우명으로 삼아 추앙하였다.

하지만 역사에는 바른 것이 있으면 부면적인 것이 있게 마련이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는데, 충천보국의 의지가 있으면 황음안일을 탐하는 것도 있었다. 여기서 최면과 유사한 경험 중에 삼세에 들어가 회고한 것을 소개한다. 이번의 경험 중 그가 먼저 본 것은 서호(西湖)가의 월천사에 잠시 머문 초라한 서생인데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는 당시 병이 들어 위급한 중에도 나라를 위해 충성할 뜻이 있어 과거를 통하여 공명을 얻어 나라에 힘이 되려고 누차 경성에 가서 시험을 보았으나 매번 낙제하였다. 이번에 그는 논밭을 팔아 마지막으로 또 한번 서울로 들어가 과거를 보았으나, 누가 알았으랴, 또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상심이 극에 달해 우울하게 되어 병이 들고 말았고 나중에 월천사에 주지에 의탁해 요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전도가 아득하고 다재다난한 국가와 인생에 대해 절망하였으며 부모와 고향사람들의 희망을 저버린 부끄러움과 심리적 부담 때문에 병마를 이기기 매우 어려웠다. 긴긴 밤에 창 밖의 별을 우러러 보며 자기의 인생 여정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인생이 무상함을 탄식하며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극도로 비탄하고 절망한 나머지 그의 혼백은 교외의 버려진 어느 왕야부로 왔다. 왕야부는 부서진 담장에 잡초가 무성하고 이리가 출몰하며 처량한 모습이었다. 비록 처량하였지만 그는 생명의 잠재의식이 이곳에 대해 매우 익숙한 것을 느꼈다. 그가 폐허 중의 부서진 기둥, 초석, 마른 우물 등을 둘러보니 홀연 눈앞에 신기루 같은 한 폭의 생활이 떠올랐는데 그가 삼세 이전에 왕야부에서 생활했던 것이 눈앞에 역력했다. 당시 이곳은 가무태평하고 금과 옥으로 휘황찬란하고, 누각과 정원, 계곡과 작은 다리, 긴 복도가 굽이굽이 돌아서 있고 그의 첩은 무리를 이루었으며 백 명이 시중을 들었다. 매일 향연을 벌였으며 밤마다 환락에 빠져 황음하고 썩어 문드러져 백성의 고통이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안락만을 추구하였다. 그는 욕망만 따르고 무도하여 원기가 쇠잔하게 되어 장년이 되자 혼이 저승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왕부는 얼마 안가 영문 모를 불이 나 소실되어 잿더미로 변했고 처첩과 하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 가야할 길을 찾아 나섰다.

한참 후 처량하고 처참한 광경이 또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인생의 참뜻을 깨달았고, 더 이상 인간의 부귀공명에 미혹되지 않기로 하여 절연히 출가하여 수행하기로 하였다. 마치 홍루몽에 나오는 “가보옥” 처럼 “호료가”의 내포를 철저히 깨달아 유명한 행각승이 되었다.

또 몇 세를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이 스님은 이번 생에서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말했던 “속세를 벗어나지 않고 수련원만하는 고덕 대법”인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찾았고 견정한 수련자가 되어 장쩌민 집단의 미친듯한 진압 시기에 그는 법륜공이 박해받는 진상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육년이 지나도록 세인들에게 알리고 생사를 꿰뚫어 득도하였다.

발표시간 : 2005년 5월 23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5/5/23/324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