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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륵불상 진장집(珍藏集) (상편)

【정견뉴스】

‘성경’에 따르면 인류의 최후 시각에 이스라엘이 나라를 되찾은 후 구세주 메시아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다고 했다. 또 불경에서는 우담바라 꽃이 피면 미래불(未來佛)인 미륵이 이미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널리 제도하신다고 했다. 지금 이 모든 예언에서 언급한 일들이 이미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동서방의 구세주께서 이미 우리 옆에 와계신 것은 아닐까?

불경과 성경에서는 모두 인류가 말겁(末劫) 시기에 이르면 구세주(救世主)께서 강림(降臨)해 중생을 구도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경에서는 말법(末法)시기에 미래불인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도한다고 했고 성경에서는 말겁이 도래할 때 메시아가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도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작고한 국학대사(國學大師)이자 불학자(佛學者) 번역가였던 계선림(季羨林 지셴린)과 그의 제자 전문충(錢文忠 첸원중) 교수가 한 중대한 공헌이 바로 불가와 기독교의 연계를 발견한 것이다. 즉 “불가의 미래불과 기독교의 구세주 메시아는 사실 동일 인물이다.”

학술계에서 공인하다시피 인도의 미륵신앙은 범세계적인 구세주 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양자는 서로 영향을 끼쳤다. 즉, 인도의 미륵신앙은 바로 구세주 신앙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미륵이 미래불이 되고 미래의 구세주가 되는 것은 인도에 근원이 있지만 보다 넓은 범위의 세계 내지는 고대 세계의 근원은 당시 널리 유행하던 메시아신앙의 일부이다.

불경에서는 미륵이란 ‘만왕의 왕(萬王之王)’이 말세(末世)에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오실 때 사용한 불호(佛號)이고 법륜성왕(法輪聖王)이란 ‘만왕의 왕’이 법계(法界)에 내려오셨을 때의 법호(法號 인간세상에서는 전륜성왕이라 칭한다)이다. 때문에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법륜성왕을 또 미륵이라고 칭한다고 알려준 것이다. 자비(慈悲)・광명(光明)・희망(希望)이 바로 미래불 미륵의 정신적 내함이다.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 제275굴 서쪽 벽 교각미륵보살상(交腳彌勒菩薩像). 북량(北涼) 시기. 크기는 세로 580, 가로 340, 높이 365cm

인도의 고대 미륵보살 석조(石雕)
인도 라다크 아르치(阿爾奇) 미륵보살상. 약 1200년 경 진흙조소에 채색 높이 4.64m
불탑삼존상(佛塔三尊像) 중앙 불상의 높이는 3.3m, 좌우에 미륵보살과 관음보살 입상
불설법도(佛說法圖)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3~4세기 경 제작. 편암(片巖). 높이 59cm 폭 49cm

불교에서는 미륵이 ‘미래불’로 ‘도솔천궁(兜率天宮)’을 주재한다고 한다. 다리를 꼬고 앉은 보살과 궁궐처럼 보이는 감실(龕)은 미륵보살이 도솔천궁에 높이 앉아 있는 것을 상징한다. 또 보살이 쌍수(雙樹)가 그려진 감실에 앉아 사유(思惟)에 잠긴 것은 나무 아래에서 사유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 조상(造像)은 조형이 웅건하고 원만하며 장엄한 표정이 드러난다. 고계(高髻 높이 틀어올린 상투)에 보관(寶冠)을 쓰고 상반신을 드러냈고 어깨에는 숄을 걸치고 있다. 허리에는 주름 진 치마를 입었다. 조형이나 의상에서 중국 전통의 조소예술과 서역 불교예술이 융합된 것을 볼 수 있다.

정교한 미륵보살의 얼굴 부위를 보면 아래로 내려감은 눈과 밖으로 나온 입술은 모두 은은히 미소 짓는 표정을 더 돋보이게 한다. 겉에 두른 천의(天衣 천인의 옷)와 꽃무늬로 이뤄진 두 갈래 직선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불상의 코와 입 부위로 모이게 만들어 미소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미륵보살은 또 자씨(慈氏)보살이라고도 하는데 석가모니 당시의 이름은 아일다(阿逸多)였다. 본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아 출가해서 수행했고 석가모니로부터 나중에 성불(成佛)한다는 수기(受記)를 받았다. 경전에 따르면 미륵보살은 도솔천궁 내원(內院)에 상생해 수행하며 뭇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는 일생보처(一生補處 역주: 다음 생에 성불하는 보살의 최고경지)의 대보살이다.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면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도를 배운 후 시두성(翅頭城)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앞뒤 3차례로 나눠 설법을 한다. 옛날 석가모니부처의 교법(敎法)에 아래 도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이때에 이르러 상중하(上中下) 근기별로 모두 도(道)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도솔(兜率)’이란 만족을 알고 기뻐한다는 뜻이다. 도솔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뉘는데 외원은 복보(福報)를 얻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천계(天界)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이 성불하기 전에 수행하고 설법하는 곳이다.

도솔내원에서 설법하는 미륵보살은 온화하고 존귀하며 장엄한 상을 지녔다. 그를 믿는 신도들이 미륵의 형상을 염(念)하고 미륵의 명호(名號)를 부르면서 팔관재계(八關齋戒)를 받고 청정하게 선업(善業)을 닦으며 큰 서원(誓願)을 발하면 생명을 마친 후 도솔타천(兜率陀天)에 왕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가 수기한 후계자인 미륵보살은 성불하기 전에는 바라문의 모습을 했다. 즉 머리를 묶어 상투를 틀었고 손에는 물병을 들고 있다. 반면, 원래 크샤트리아 출신인 석가모니는 성불하기 전 보살로 있을 때 천관(天冠)을 쓰고 있고 관음보살도 머리에 천관을 쓰고 있다. 석가보살과 관음보살의 구별은 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았으면 석가보살이고 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면 관음보살이다. 관음보살의 머리 장식 중앙에 화불(化佛)이 등장하는 것은 3세기 이후의 일이다. 때문에 그 이전 초기 불상에서 석가보살과 관음보살을 구별하는 방법은 손에 든 물건 외에는 명확히 구별할 수 없다.

불설법도(佛說法圖)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불타의 좌측에 머리를 묶고 두광(頭光)과 물병을 든 것이 미륵보살상이고 우측에서 부채 모양의 관을 쓰고 왼손에 연꽃을 든 것이 관음보살상이다.
일불이보살상(一佛二菩薩像) 2~3세기 간다라 대영박물관 소장. 좌측 관음보살상 높이 108cm 우측 미륵보살상 높이 114cm
미륵보살상(좌측) 관음보살상(우측)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아우랑가바드의 나식 석굴 제23굴. 약 6~7세기 석조(石造). 높이 1.5m
일곱 부처와 한 보살(七佛一菩薩 가장 우측이 미륵보살) 5세기 후반 인도 아잔타 17석굴 문 입구 벽화

석가모니는 “먼 미래에 사람의 수명이 8만 살에 달할 때” 미륵불이 다시 인간 세상에 강림한다고 예언했다. 미륵보살의 지위가 칠불(七佛)과 나라히 자리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그가 석가세존의 수기를 받은 미래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성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살이라 칭한다. 이것이 바로 ‘일곱 부처와 한 보살’의 근거이다.

2~3세기 간다라 미륵보살상

이 불상은 2세기 간다라 최전성기의 작품이다. 미륵보살은 결가부좌를 하고 등의자 위에 앉아 있다. 미륵보살은 바라문 출신이라 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며 온몸에 화려한 장식을 했다. 머리에는 구슬 장식이 있고 귀에는 귀걸이, 가슴에는 길고 짧은 목걸이와 영락, 팔과 손에는 각각 팔찌를 했다. 두 손은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고 두 다리는 결가부좌를 한 채 가죽을 씌운 등의자 위에 앉아 있다. 등의자 앞에는 보살에게 경배하는 2사람의 공양자(供養者)를 표현했다.

2~3세기 간다라 미륵보살상

이 상은 불삼존상(佛三尊像) 부조(浮彫)의 좌측 부분이다. 보살의 왼손에는 바라문이 늘 지니는 물병을 들고 있고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카락 역시 바라문의 상징이다. 때문에 이 상은 당연히 바라문 출신인 미륵보살로 볼 수 있다.

미륵보살은 다리를 교차해 연화대 위에 앉아 있고, 연못에는 물결이 출렁이는데 좌측 연못 속에 터번을 쓴 귀족청년이 연화대 위의 미륵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연꽃이 화생(化生)한 것처럼 보인다. 미륵 옆에 선 기둥에는 두 개의 소머리가 있는데 이것은 본래 이란 폴리스 기둥양식이다. 이것을 보면 간다라 양식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는 물론이고 인접한 안식국(安息國 페르시아)의 영향도 크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사용한 붉은 안료 위에는 아직도 약간의 금박이 남아 있다. 금박은 간다라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재료다. 당시 금박 아래에 다시 붉은 안료를 칠해 마치 찬란한 금광이 비치는 듯한 효과를 냈다.

간다라 미륵보살상 남경 대보은사(大報恩寺) 박물관 소장

이 상은 부조(浮彫 돋을새김)로 만들었다. 우측 어깨를 드러낸 불타는 안에 승기지(僧祇支 불가에서 입는 속옷의 일종)를 입었다. 두 손은 비록 결손되긴 했지만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화대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좌대 양측에 각 한명씩 풍만한 몸매의 공양자들이 손으로 연꽃을 떠받치고 있다.

불상 아래 좌우측에는 각각 머리를 묶고 보병을 든 미륵보살과 천관을 쓰고 연꽃을 든 관음보살이 시립해 있다.

불상 위쪽 좌우에는 관을 쓴 제석천(帝釋天)과 머리를 땋은 범천(梵天)이 두 손을 합장하고 부처님께 설법해주시길 기원하고 있다. 제석천은 크샤트리아 형상인데 힌두교의 왕이나 정복신의 모습이고 범천은 바라문 형상으로 힌두교 성자(聖者)와 창조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중에 불교의 호법(護法)이 된다.

더 위쪽에는 허리에 연주(連珠)무늬 장식을 한 천사들이 제석천과 범천의 두광(頭光)을 딛고 부처님 머리위에 화환을 씌우고 있다. 천사 양측에는 각각 코린스 양식의 기둥을 지닌 탑 모양의 감실이 있고 불감(佛龕) 안에는 선정에 든 좌불(坐佛)이 시선을 주존(主尊)을 향해 앉아 있다.

삼존상을 통해 우리는 간다라 시기 부처와 보살에 대한 다양한 예술표현을 볼 수 있는데 불타는 둥근 얼굴에 미소를 띠며 어깨 넓이로 팔을 벌리고 있다. 또 간단한 두 개의 음선(陰線 파인 선)으로 옷 무늬를 처리했다. 3~4세기 간다라 후기에 인도 조상(造像)의 영향을 받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두 보살의 동작과 표정은 서로 호응하는데, 화려한 장식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몸짓으로 소박하지만 장엄하고 믿음직하면서 속세를 초탈한 불타(佛陀)의 숭고한 느낌을 잘 표현한다.

약 2~3세기 경 간다라 미륵보살상
미륵보살교각좌상(彌勒菩薩交腳坐像) 2~3세기 간다라 양식 편암. 높이 56.5cm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페서디나) 노턴 사이먼 박물관 소장

이 미륵불상은 두광과 곱슬머리에 머리를 위로 감아 나비 모양의 상투를 틀고 연주(連珠)장식의 머리띠를 둘렀다. 미간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뺨 부위의 선은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하다. 귀걸이와 목걸이 및 영락을 착용했고 손목과 팔에 소용돌이 문양의 팔찌를 차고 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전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고 다리를 교차해 앉았으며 두 발은 좌대를 밟고 있다.

수인과 앉은 자세로 판단할 때 미륵보살이 도솔천궁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보살 양측에 각각 한명씩 작은 크기의 사람이 있다. 우측에는 비구 좌측에는 한 여성 공양자가 모두 두 손을 합장하고 거대한 보살상을 향해 몸을 틀고 공경하게 예를 올리고 있다.

간다라 미륵보살교각상(彌勒菩薩交腳像) 편암 약 2~3세기 제작. 높이 63cm
미륵보살입상(彌勒菩薩立像) 편암 약 3세기 전반으로 추정. 높이 148.5cm 일본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

이 보살상의 모습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준수하고 빼어난 외모에 온화하고 점잖은 기개를 보여준다. 머리는 땋아 상투를 틀었고 장발에 곱슬머리다. 좌측 어깨에 숄을 걸쳐 우측 어깨를 드러내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과 팔다리의 비례가 균형을 이룬다. 상체는 벗었고 하체는 치마를 입었으며 왼손에 물병을 들고 있다. 귀걸이 목걸이 및 손목과 팔에 장식을 차고 있고 가슴 앞에는 원형의 가슴장식과 비스듬하게 어깨걸이를 하고 있다. 발에는 가죽신발(이미 결손)을 신은 귀족의 모습으로 현지 보살상 공통의 자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두발은 간소하고 장식을 하지 않았다. 좌측에 걸친 숄이 U자형의 곡선을 그리며 우측 팔에 걸쳐져 있다. 몸 옆에서 다시 날아오를 듯 펄럭이는 옷 주름이 세밀하면서도 매끄럽다.

미륵보살상(彌勒菩薩像) 2~4세기 편암. 높이 104cm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
미륵보살입상 2~4세기 편암. 높이 104cm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

바라문 출신의 미륵보살이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렸다. 머리에는 구슬 장식, 가슴 장식 및 길고 짧은 목걸이, 영락, 팔과 손목에 팔찌를 하고 왼손에는 물병을 들고 있다.

미륵보살좌상 2~4세기 편암 높이 109cm 파키스탄 페샤와르 사흐리 바롤(Sahri Bahlol) 유적 출토.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이 보살은 전신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높이 틀어 올린 상투와 귀걸이, 목걸이, 영락, 팔과 손목의 팔찌, 반지 등을 했다. 미간에는 백호상이 있고 가슴 앞에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결손 되었다. 결가부좌를 틀고 사각형 좌대 위에 앉아 있다. 좌대 정면 중앙에 물병 하나가 놓여 있고 좌우에 합장하고 예를 올리는 공양자들이 있다. 그 양옆에는 변형된 모습의 사자가 있다. 이 보살상은 전형적인 간다라양식에 속하는데 신체 비례가 극히 사실적이고 생기가 가득하다. 또 흐르는 듯한 옷 주름의 표현이 아주 선명하면서도 생생하다.

간다라 조상(造像)의 형식 및 특색에 대해 말하자면 미륵보살의 도상(圖像 그림이나 조상)이 바라문의 형상에서 전환되어 왔다. 이 보살은 왕실이나 귀족을 상징하는 머리장식을 하지 않았고 왼손에 미륵보살을 상징하는 물병도 없지만 대신 좌대 중앙에 새겨 넣었다. 관의 장식 및 지물(持物)에서도 석가모니불과 차이를 나타낸다.

미륵보살상 2~3세기 천매암(千枚岩) 높이 77cm 파키스탄 펀잡주 탁실라 박물관 소장
미륵보살상 2~3세기 편암. 높이 175.3cm 미국 노턴 사이먼(Norton Simon Museum) 박물관 소장
교각미륵보살상
미륵불의좌상(彌勒佛倚坐像)
포대미륵불상(布袋彌勒佛像) 명(明)나라 성화(成化) 2년(1486년) 도기(陶器) 높이 119.2cm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미륵불상에는 통상 3가지 종류의 형상이 있다.

1. 성불(成佛)하기 전에 온화하고 귀족적인 모습의 보살상

2. 성불했을 때는 장엄한 불타의 성상(聖像)

3. 인연에 따라 변화시켰을 때의 모습으로 여기서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의 모습이다

교각미륵보살상(交腳彌勒菩薩像) 북위(北魏) 운강(雲崗)석굴 제5굴

북위 석굴조상 중에도 보관(寶冠)과 영락(瓔珞) 등 보살의 모습으로 두 발을 교차한 미륵보살의 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머리에 높은 관을 쓴 미륵보살의 용모가 청수(淸秀)하다. 가슴에는 장식과 영락이 있다. 몸에는 긴 치마를 입었고 두 발을 교차해 앉아 있다.

북위 운강 제5굴 교각미륵보살상

용문(龍門) 고양동(古陽洞)에 남아 있는 북위(北魏) 미륵보살교각좌상

이 당시 불가 수련에서는 미륵이 도솔천(兜率天)에 상생(上生)하는 것을 관(觀)했기 때문에 미륵보살상이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극히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수만흔 조각상들이 전부 도난 당했다.

미륵보살교각상 북위 돈황 석굴 제254굴
교각보살좌상(交腳菩薩坐像)
북위 사암(砂岩) 높이 129.5cm 산서(山西) 운강석굴 미국 메토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미륵보살교각상(彌勒菩薩交腳像) 운강 제17굴 높이 15.6m
미륵보살교각좌상(彌勒菩薩交腳坐像) 북위 대리석 높이 44cm 하북(河北) 곡양현(曲陽縣) 수덕사(修德寺) 유적지 출토
미륵보살감상(彌勒菩薩龕像) 북위 효창(孝昌) 원년(525년) 응회암 높이 135cm 정주(鄭州) 형양(滎陽) 대해사(大海寺) 출토 하남박물관(河南博物院) 소장

교각보살감상(交腳菩薩龕像) 북위 사암 높이 31.5cm 일본 오사카 시립미술관 소장
미륵보살교각좌상(彌勒菩薩交腳坐像) 북위 신구(神龜) 원년(518년) 금동 총 높이 44.5cm 일본 오사카 후지타미술관(藤田美術館) 소장

미륵보살오존상(彌勒菩薩五尊像) 북위 말 황옥석(黃玉石) 높이 58cm 대만 중대(中台) 세계박물관 소장
납복릉사(拉卜楞寺 라보렁쓰) 미륵불상

감숙성 감남(甘南) 장족(藏族 티베트) 자치주 하하현(夏河縣)에 위치한 납복릉사(拉卜楞寺)에 있는 몇 존의 불상이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하는 현기(玄機)를 보여준다.

청나라 강희(康熙)연간인 1709년에 건립된 이 사찰은 티베트 불교 게룩파(황교) 6대 사찰 중 하나다. 절을 창건한 초대주지와 2대 주지는 모두 천기(天機)를 잘 아는 활불(活佛)이었기 때문에 이 사찰의 불상에는 아주 깊고 현묘한 이치가 담겨 있다.

특히 사찰에 모셔진 두 존의 미륵대불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대경당(大經堂) 근방의 서쪽 후전(後殿)에 모신 미륵대불(彌勒大佛)은 절반쯤 일어선 금불상으로 두 손이 가슴 앞에서 손동작을 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라마승은 “미륵불이 세상을 향해 법륜을 돌리시는 모습이다. 절반쯤 일어선 것은 언젠가 법륜을 지니고 인간세상에 내려와 세인을 구도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납복릉사의 원래 명칭은 아주 길지만 간단히 찰서기사(紮西奇寺 자시치쓰)라 하는데 한자로 번역하면 길상선사(吉祥旋寺)가 된다. 즉 법륜(法輪 파룬)이 돌면서 길상(吉祥)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대금와전(大金瓦殿) 중앙에 모신 미륵대불은 이 절의 2대 주지가 약 200여 년 전에 특별히 네팔의 장인을 불러 제작한 금동불상으로 높이가 약 10m에 달한다. 이 미륵불상 바로 앞에는 작은 석가모니불의 동상이 있다. 이처럼 큰 불상과 작은 불상 두 개를 앞뒤로 나란히 배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안내를 맡은 라마승에 따르면 “앞쪽의 작은 불상들은 석가모니불과 그의 제자들이며 뒤쪽의 미륵불(彌勒佛)은 손에 법륜(法輪 파룬)을 들고 계십니다. 그는 우주에서 신통이 가장 광대하고 가장 능력이 뛰어난 여래(如來)인데 장래에 법륜을 지니고 우주 중생을 구도하실 겁니다. 다시 말해 우주 중생의 유일한 구원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곳 불상의 배치는 미륵불(전륜성왕)의 높은 층차와 거대한 법력(法力)을 돋보이게 한다. 아울러 석가모니 불상과 미륵대불의 현격한 크기 차이를 통해 전 인류를 구도하는 미륵불의 거대한 자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이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당을 소금와전(小金瓦殿)이라 하고 미륵불을 모신 전당을 대금와전(大金瓦殿)이라 부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