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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돈황 연구원 한 학자의 각성

【专访】敦煌研究院研究员的觉醒历程
하버드 대학 교환교수 진해도(陳海濤 천하이타오)가 자신의 각성 과정을 이야기했다.

인터뷰 및 취재/ 당명(唐明 탕밍)

지난, 2020년 4월 하버드대학 교환교수로 있던 진해도(陳海濤) 교수가 언론 매체에 실명으로 탈당선언을 하면서 중공과 관련된 모든 조직에서 탈퇴한다는 엄중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국내외에서 자행된 중공의 각종 폭행에 대해 예술사(藝術史) 연구의 각도에서 여러 편의 문장을 발표해왔고 또 인터넷 집회에서 역사와 인문학의 각도에서 중공 폭정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발언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중공 정권의 특징을 ‘기혈(嗜⾎ 피에 굶주려 살인을 일삼는 것)과 배금(拜⾦ 황금숭상)’이란 4글자로 개괄하면서 사람들에게 중공 사악(邪惡)을 똑똑히 인식하고 서로 협력해서 중공을 와해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NTD TV 및 에포크타임스와 가진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각성하게 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다음은 인터뷰내용이다.

질문: 당신은 돈황연구원 원구원이자 현재 미국 하버드 대학에 교환교수로 와 있다. 대체 어떤 이유 또는 경험 때문에 중공의 모든 조직을 탈퇴한다는 이런 결정을 내렸는가?

나의 각성은 나의 가정 및 나의 성장과 나의 사고(思考) 내지는 미국에 와서 보고 들은 것들과 모두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나의 모친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로 20여 년 전에 대법을 얻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해 온 이렇게 어두운 역사시기에도 어머니는 다른 많은 대법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 진상을 알렸고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어머니는 두 차례나 노동교양소에서 2년 넘게 감금당했다. 어머니가 받은 박해는 우리 가정과 나의 성장에 아주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또한 나로 하여금 중국의 정치현실 및 미래에 대해 사고하고 체험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중국 국내에서는 진실하고 체계적인 많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내가 지닌 의문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보고 우리 가정에 불행을 조성한 근본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반성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후 다양한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또 대법제자들과 접촉을 통해 나는 중공의 역사와 폭정 및 그것이 중국 인민들에게 저지른 악업(惡業)에 대해 비교적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2019년 이후 세계정세와 중국정세의 일련의 극적인 변화들은 중공의 잔혹한 면모를 세인들에게 더 똑똑히 드러내주었다. 신강(新疆) 강제수용소에는 수백만의 무고한 백성들이 장기간 감금되어 강제노역을 하고 있고, 홍콩 송환반대 운동 중에 중공은 또 조폭과 같은 수단으로 비무장한 홍콩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2020년 신종폐렴 기간에는 또 의도적인 거짓말로 전 세계에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중공 통치의 잔혹하고 어두운 측면에 대해 더 절실히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그것이 단지 과거 역사 속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또한 이는 절대로 우연한 현상이 아니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중공의 ‘초심(初心)’임을 알게 되었다. 중공이 계속 존재한다면 이런 폭정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때문에 이것 역시 나로 하여금 결심을 내리도록 촉구했고 중공에 대한 분개와 역사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에서 중공에 소속된 모든 조직에서 탈퇴할 것을 결정한 것이다.

질문: 실명으로 삼퇴하면 국내에서 당신의 직업이나 기존의 모든 혜택을 잃을 수 있다. 만약 귀국한 후에 중공에게 체포되거나 혹은 다른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나는 전부터 근심이 있었다. 중공은 중국 도처에서 감시와 강권(强權)을 휘두르기에 누구나 다 위험하다. 하지만 중국문제 전문가로서 나는 중국에는 아직도 동정심과 능력을 지녔지만 여전히 중공 체제 내에서 변화할 공간의 존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 이르면 당신은 당신이 (체제 내에서) 무엇을 하든 그 어느 것도 심각한 불공정을 저지할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과거 어머니가 직접 나서서 진상을 알릴 때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만 생각했다. 심지어 어머니처럼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진상을 알리는 대법제자들이 전부 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년에 홍콩의 송환반대 운동을 통해 나는 거대한 진감(震撼)과 계발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홍콩 시민들이 자유와 존엄을 위해 과감히 몸을 떨쳐 일어나 이렇게 잔혹한 강권을 상대하는 것을 보았다. 아울러 그들의 저항은 아주 뛰어난 효과가 있었고 홍콩 지역 시민운동뿐 아니라 홍콩 민주인사들의 국제적인 소통과 호소 및 언론매체의 성원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국제 사회에서 중공의 악행을 비난하고 그것의 만행을 똑똑히 인식하게 했으며 국제정세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시각에서 내가 모친의 과거 행동과 또 그렇게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떨쳐 일어난 것을 돌아보니 그들의 희생에는 사실 아주 깊은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중국 대지 위에 사는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 있어 진상을 보았든 보지 않았든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퇴로가 없다.

우리가 만약 역사를 돌아본다면 역사적으로 아주 많은 사례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가령 기독교는 세계종교가 되기 전에 로마제국으로부터 무려 수백 년에 걸친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 기독교 신자들은 끊임없이 항쟁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민중들과 소통하며 자신들의 교의(敎義)를 알렸다. 때문에 최종적으로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고 서방의 정신세계를 개변시켰다. 이 이야기는 지금 현재도 진행형이다.

동시에 우리는 또 현실 속에서 중공이 과거의 잔혹한 극권주의(極權主義)에서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 수단과 경제력에 의지해 전보다 더 정교하고 위험한 극권주의와 독재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공은 그것 자신의 독재와 폭정이 지닌 힘에 대해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항하는 어려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 매 사람이 자신의 기존 이익이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떨쳐 일어나 서로 손을 잡아야만 중공을 와해시킬 수 있고 또 이렇게 해야만 전 인류가 좋은 질서를 쟁취할 수 있다.

만약 자유세계가 과거 나치의 히틀러를 용인했던 것처럼 오늘날 중국 공산당을 용인하고 그것의 제멋대로 팽창하고 발전하도록 용인하면서 여전히 안일하게 중공과 거래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려 한다면 그럼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중공의 통치방식이 장차 세상 모든 곳에 침투되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또 우리 자녀들이 우리가 지금 소중히 생각하는 문화와 자유와 사랑 등 모든 고귀한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중공 사악에 직면해 종교인 왕이(王怡 왕이), 지식인 허장윤(許章潤 쉬장룬), 법조인 고지성(高智晟 가오즈성), 체재 내 이론가 채하(蔡霞 차이샤), 재계의 임지강(任志強 런즈창) 등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 왜냐하면 중공의 폭정과 중공이 우리에게 가한 압박에 직면해 오직 진상을 말하고 중공을 와해시켜야만 비로소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다음 세대에게 희망이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 구차하고 안일함을 추구하면서 눈앞의 재앙만 피하려 든다면 미래 우리 자녀들이 끊임없이 노역당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나의 전업(專業)과 결합해 떨쳐 일어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시대적인 각성이란 큰 흐름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질문: 중국전통문화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이며 중공은 어떻게 전통문화를 파괴했는가?

내가 연구하는 돈황(敦煌)문화를 예로 들자면 그곳은 신적(神跡 신의 기적)이 충만한 곳으로 그야말로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천년도 넘는 이전에 우리 선배들이 신앙심에서 우러나와 무한한 미래를 향한 인류의 각종 가능성을 탐구했다. 다시 말해 실트로드 위의 문화예술과 사업을 왕래하면서 돈황에 신앙의 공간을 건설했다. 자비, 지혜 및 굳센 심령(心靈)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우주 사이의 이런 영원과 현실의 관계를 탐구했고 바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수많은 계발과 감동을 주고 있다.

아울러 내가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렇게 어지럽고 전쟁의 혼란으로 가득한 역사 속에서도 돈황석굴은 오히려 다행히 살아남았고, 우리에게 한 세대 한 세대의 후손이 이런 소중한 문화전승을 어떻게 소중히 여기고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과 신앙에 대한 열정과 충성이 있어야 한다.

중국 문화는 최근 백년간 거대한 변국(變局 비상사태)을 겪었지만 이런 변국 속에는 사실 희망이 숨어 있다. 많은 오래된 문화들이 세계문명의 참조와 보편적 가치를 융합해 종종 찬란한 빛을 발하며 되살아났다.

하지만 중국대륙에서 중공이 정권을 잡은 지난 수십 년간 중국문화는 거대한 좌절과 훼멸을 겪었다. 주지하다시피 중공 집권의 특징은 바로 4글자인데 ‘기혈(嗜⾎)과 배금(拜金)’이다. 중공은 정권을 잡기 직전과 직후 일련의 운동을 거쳤다. 예를 들면 토지개혁으로 중국 향신(鄕紳)사회의 기초를 와해시키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원자화된 사회를 만들었으며 또 폭력과 빈곤을 영예로 여겨 과거의 온화(溫)・선량(良)・공경(恭)・절검(儉)하는 전통문화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 결과 직접적으로 3년 대기근을 초래해 수천만 명이 굶어죽었다.

그 후로도 중공은 권력투쟁을 일으켜 계속해서 문화대혁명을 발동했고 또 수백만 명의 중국인들이 정처 없이 떠돌다 비명횡사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었고 전체 중국문화의 기초였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이런 사람의 윤리와 도덕 등이 전부 파괴되고 위배되었다. 중국 전통의 신앙・문화・예술은 체계적으로 훼멸되었다. 중공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문화혁명에 대한 토론을 금지하고 있고 문화혁명에 대한 반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때문에 중국은 실제상 아직도 여전히 문화혁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중국문화의 재건 역시 아득해서 기약조차 할 수 없다.

문화혁명 후기에 중공의 포악하고 저능적인 집권은 중국이 거의 붕괴될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때문에 중공은 또 일련의 약진을 통해 집권 합법성을 이어가려 했다. 예를 들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그것의 배금(拜金) 특징을 더욱 전개시켜 중국문화의 기초에 대해 거대한 파괴작용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 모두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두드러진 환경악화 외에도 중공이란 보호우산 아래 조직적으로 자행된 문물(文物)절도, 고적(古跡)에 대한 파괴는 문혁기간을 훨씬 초과한다. 또한 사회적 부가 증가함에 따라 민주는 나아지지 못한 반면 전제(專制)와 극권만이 더욱 강화되었다. 근본적으로 말해 전목(錢穆 첸무) 선생이 말했던 중국문화 속의 그런 염담(恬淡)고원(高遠)한 상태, 즉 아주 오랜 시간과 정력을 투입해 한 가지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천추에 길이 남을 일에 참여하는 그런 신념과 굳센 의지는 모두 중공이 조성한 ‘닥치고 돈벌기’란 현실에 의해 와해되어버렸다.

교육, 과학연구, 의료 등 정성을 다하거나 자비로운 마음이 있어야 하는 업종들은 전면적으로 몰락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나 소중한 문화는 일단 파괴된 후에 그것을 재건하자면 극히 어렵고 아주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중국 전통문화와 가치에 대한 중공의 파괴는 국부적이거라 우연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것이다. 이는 중화문명의 심각한 비극이다. 오직 중공이 와해되고 퇴장해야만 중화문명은 비로소 다시 소생할 수 있다.

(에포크타임스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cn.epochtimes.com/gb/20/10/23/n1249695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