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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싱두이 유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신화’는 바로 신의 말씀

글/ 이정관(李正寬)

【정견뉴스】

2021년 싼싱두이에서 새로 발굴된 황금가면 일부(TV캡쳐화면)
 2021년 3월 하순 쓰촨성 싼싱두이(三星堆) 유적지에서 청동 신수(神樹)와 청동인상(青銅人像), 황금가면 일부, 상아 등 500여 가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지난 1986년 두 제사갱(祭祀坑)에서 천 건이 넘는 유물을 발굴한 후 35년의 시차를 두고 또 한 차례 세상을 진동시킨 발견이다. CCTV는 며칠 연속으로 이번 발굴 작업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면서 대대적인 선전에 나서 싼싱두이 사건을 주요기사로 올렸고 관련 뉴스가 검색순위에 오르게 했다.

산해경 기록과 일치하는 싼싱두이 문물

산해경(山海經)을 말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온 기이한 책으로 불과 3만여 자로 동물, 식물은 물론이고 광물에서 종교와 민속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삼라만상을 포괄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이 너무 기이하고 괴상해서 마치 민간 전설에 나오는 요괴(妖怪)나 괴수(怪獸) 등처럼 기존에 우리가 알던 중화문화와 차이가 너무 커서 흔히들 선진(先秦)시기 신화서적이라고 이해할 뿐이다. 심지어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조차 이 책을 읽은 후 “산해경에 나오는 모든 괴물은 내가 함부로 믿을 수 없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하지만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많은 문물들은 뜻밖에 산해경의 관련 기록과 거의 완전히 맞아떨어진다. 이는 사람들이 진실한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우선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가장 큰 청동신수(青銅神樹 1호 청도수青銅樹)와 산해경의 신수(神樹)인 부상(扶桑)에 관한 기록이 거의 일치한다! 1호 청동수는 높이가 3.96m이고 상중하 3층으로 나뉘는데 매 층마다 3개의 가지가 있어 총 9개의 가지가 있다. 아래로 굽은 가지 위에는 가지마다 한송이 꽃이 있고 그 위에는 모두 한 마리 새가 서 있다(그림 1).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1호 청동신수

산해경에 따르면 신수인 부상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9마리 금오(金烏 금 까마귀)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로 탕곡(湯穀)이 있는데 탕곡에 부상(扶桑)이 있다. 10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으로 흑치(黑齒)의 북쪽에 있다. 물속에 잠겨 있는데 9개의 태양은 아래가지에 있고 하나의 태양은 윗가지에 있다.”

그렇다면 1호 청동신수 위에 9마리 새가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부상 나무에 산다는 금오가 “9개의 태양이 아래가지에 있다”는 것과 정확히 대응된다.

그렇다면 산해경에서 “하나의 태양이 윗가지에 있다”고 했으니 마땅히 태양을 대표하는 새 한마리가 신수의 정상에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대답은 바로 그렇다. 고고학자들과 관광객들이 일찍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청동신수’ 정상부에 절단되어 불완전한 형상이 있는데 아마 오랜 역사를 거치는 사이에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청동신수’ 위의 용 문양 및 새로 발견된 동기(銅器) 위의 용(龍)과 기(夔) 등은 모두 산해경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싼싱두이에서 가장 최근에 공개된 3호 청동수는 나무 정상부에 3명의 인수조신(人首鳥身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새) 상이 있다. 이는 ‘산해경·해외동경(海外東經)’에 기록된 구망(勾芒)과 일치한다. 즉 “동방에 구망이 있는데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했다.” 산해경에 따르면 부상이란 신수를 관리하는 이가 바로 구망이 된다.

아울러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여러 개의 인수사신(人首蛇身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 청동상이 있는데 이 역시 산해경의 기록과 일치한다. 또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복희(伏羲)와 여와(女媧) 등의 상고시대의 신선은 모두 이렇게 인수사신의 형상이다.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청동인상(青銅人像). 왼쪽 첫 번째 사진은 인수조신(人首鳥身) 청동상이고 오른쪽에 있는 나머지 4장은 인수사신(人首蛇身)의 청동인상이다.

이외에도 산해경의 산경(山經) 파트는 또 ‘오장산경(五藏山經)’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장(藏)은 오장(五臟)의 장(臟)과 통한다. 그렇다면 지구의 ‘오장(五臟)’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여러분이 만약 인체 오장의 형상을 여러 대륙의 형상과 비교해보면 호주는 심장이고 아프리카와 남미는 폐장이며 북미는 비장, 그린란드는 신장, 유라시아 대륙은 간장임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남극은 사람의 뇌와 대응하는데 그중에서도 남서부는 대뇌, 남동부는 소뇌가 된다. 또 남동부에서 남미대륙을 향해 뻗어 있는 반도는 사람의 뇌간(腦幹)에 해당한다.

또 미국 과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산해경에 오대호와 미시시피 강 등 미국 동부지역의 상황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산해경 9경과 10경에서는 미주 대륙의 많은 지역들이 아주 정확히 기술되어 있다.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산해경은 신화나 전설이 아닌 진실한 역사 기록임을 인식하고 있다. 지금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문물이 또 다시 산해경의 기록을 입증한 셈이다. 이에 많은 누리꾼들이 “신화이야기란 본래 신의 이야기로 모두 진짜였구나.” “진실한 역사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신화전설로 변한 거구나!” “신화전설은 모두 진실한 역사구나!”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만약 산해경이 근엄하면서도 정확한 역사 기록이라면 그럼 책에 기록된 사전(史前)의 대홍수라든가 우임금이 물을 다스렸다(大禹治水)는 등 과거에는 신화나 전설로 치부되었던 것들이 모두 진짜가 아닐까?

현대과학으로 대홍수와 우임금 치수 등의 ‘신화’를 입증할 수 있을까?

산해경에 기록된 우임금이 다스렸다는 그 대홍수는 요(堯)임금 재위기간에 발생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4400~4300년 전으로 추산된다. 또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일으킨 대홍수 역시 마찬가지로 대략 4400~4300년 전에 발생했다. 동양과 서양의 두 기록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시간이 완전히 일치하는 셈이다. 기록에 따르면 전 지구적 규모의 이 대홍수는 오늘날 인류와 가장 가까운 한 차례 대재난으로 당시 존재했던 인류문명이 거의 완전히 훼멸될 뻔했다.

우임금이 물을 다스렸다는 이야기는 남녀노소 누구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구천(九川)을 소통하고 구주(九州)를 개척했다는 등의 공정은 너무 거대하고 어려운 일이나 실증과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낙후’된 고대에 과연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못한다. 게다가 오랫동안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신화나 전설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16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약 4천 년 전 중국에서 확실히 대홍수가 발생했음을 입증했다. 이 논문의 주요 저자는 난징사범대학 지질학자인 우칭룽(吳慶龍) 박사다.

그는 이미 2007년에 황하연안에서 일부 침적물의 두께가 무려 20미터에 달하고 그것도 마치 “홍수 후의 침적물”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이 홍수 침적물에 포함된 유기물질에 대한 탄소동위원소 분석 결과 대홍수는 약 4천 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역사서에 요순우(堯舜禹) 시기에 대홍수가 있었다는 기록과 서로 일치한다.

이와 동시에 고고학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증거로 그당시 대홍수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입증했다. 중국사회과학원 문물연구소는 1999년부터 칭하이성 동남부 민허(民和)현 라자(喇家)촌에 위치한 라자(喇家)유적지에 대한 연구와 고고학적 발굴을 진행해 이곳이 4300년에서 3900년 전에 존재했던 한 마을의 유적임을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동결된 상태의 수많은 사람 사체(그림 3)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라자 유적은 흔히 ‘동방의 폼페이’로도 불린다.

‘동방의 폼페이’로 불리는 라자 유적지에서 출토된 ‘순간동결’상태의 인류 사체.

연구원들은 발굴된 사체와 문물을 통해 황하 북쪽 연안에 자리한 라자촌이 4천 년 전 한차례 대홍수로 발생한 거대한 흙탕물에 빠르게 매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우칭룽 박사의 연구 및 산해경에 기록된 대홍수와 맞아떨어진다.

이외에도 라자 유적지에서는 또 대형 석경(石磬)과 옥도(玉刀 옥으로 만든 칼) 및 옥벽(玉璧) 이 발굴되어 이곳의 문명이 이미 상당히 높은 정도에 도달해 있었고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원시적인 부락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칭룽 박사의 연구에 대해 사이언스 부편집장은 “이 연구는 중국 고대문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켰고 문명의 기원 및 고대에 문명사회 환경이 출현한 것을 실증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대학 지질학 전문가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Montgomery)는 우칭룽 연구팀이 제공한 대홍수가 확실히 발생했다는 증거가 설득력이 있다면서 “지금 우리는 중국의 대홍수가 진짜로 발생했음을 아는데 그렇다면 다른 오래 전 대재난 이야기들도 진짜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몽고메리의 이 논평은 자연스럽게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성경 창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중략…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

성경에서 언급한 아라랏 산(아라라트 산)은 오늘날 터키 동부에 위치한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1960년 미국의 라이프 잡지에 한 장의 위성사진이 발표되었다. 이 사진은 터키 정찰기가 1만 피트 상공에서 촬영한 것으로 아라랏산 부근에 확실히 배 모양의 유적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이 발표된 후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나섰다.

1977년 미국의 탐험가 로널드 엘든 와이어트(Ronald Eldon Wyatt)가 탐사팀을 이끌고 아라라트산을 찾아가 배 모양의 유적을 발견했는데 뱃머리에서 고물까지의 거리가 약 515피트(그림 4)임을 발견했다. 이는 성경에서 묘사한 노아의 방주 크기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터키 아라랏 산의 배 모양 유적은 성경에서 묘사한 노아의 방주와 일치한다.(에포크타임스 제작)

연대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노아의 방주가 이미 석화(石化)된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석화된 나무에서 또 인위적인 가공 흔적을 발견했다. 즉 천연고무로 접착된 3층의 목판(木板)이 있고 가장 바깥층 목판에는 또 역청(瀝靑)이 칠해져 있었다.

2019년 고고학자 앤드류 존스와 지구물리학자 존 라슨는 최신 3D 합성기술과 케이블로 지하에 전기신호를 보내 땅 속에 분명히 한 척의 배가 매몰되어 있은 것을 발견했다. (그림 4 우측 아래)

2008년 홍콩 및 터키인들로 구성된 탐험대가 거대한 목조 방주 유적 내부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또한 방주 안에서 도기(陶器), 밧줄 및 종자와 유사한 것들을 발견했다. 탐험대원들은 목판에 대한 탄소동위원소 측정을 했고 그 결과 약 4천여 년 전까지 연대가 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가 존재했던 시간과 일치한다.

이 탐험대 멤버이자 홍콩 다큐멘터리 제작자 양융쑹(楊永松)은 직접 방주 유적을 일일이 목격했고 “노아의 방주라고 100% 단정하진 못해도 99.9%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놀라운 점은 노아의 방주 석화된 목재 속에서 큰 원반모양이 새겨진 리벳이 발견되었는데 강도가 높고 부식을 막기 위해 철, 알루미늄, 티타늄으로 합금된 것임을 발견했다. 이는 4천여 년 전에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제련기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싼싱두이 출토 문물 중 황금가면에서도 선진적인 제련기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가공온도가 섭씨 천도를 넘어야 한다. 또 청동신수에는 다양하면서도 극히 정교한 공예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또한 많은 청동기에서 아연과 납이 분리되어 추출되었다. 그런데 진화론에 따르면 이 시기는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이 문물들은 당시 공예수준에 대한 지금 인류의 인식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끊임없이 드러나는 사전문명과 파산에 직면한 진화론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인 유인원은 대략 3~4백만 년 전 출현했고 끊임없는 진화과정을 통해 약 10만 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현대인의 해부학적 특징을 지닌 인류가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진정한 인류 문명의 출현은 불과 몇 천 년 전의 일로 지금으로부터 1만 년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백여 년간 세계 각지의 고고학자들은 오히려 일부 사전의 문물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냈고 발굴된 문물은 뛰어난 공예수준과 오랜 연대 모두 인류역사에 대한 현대과학의 인식을 훨씬 초과한다.

예를 들면, 남아프리카 클럭스도르프 지층에서는 몇 백 개에 달하는 홈이 패인 금속구들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금속구가 속한 지층은 약 28억년(그림 5 A) 전의 것이다.

또 1972년 프랑스 원자력위원회와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가봉 공화국의 우라늄 광산 부근에서 6개의 대형 핵반응로를 발견했고 조사결과 약 20억 년 전에 만들어졌고 적어도 50만 년(그림 5 B)을 가동했다고 한다.

1968년 미국에서 삼엽충 화석 하나가 출토되었는데 그 위에 사람이 신발을 신고 찍은 발자국(그림 5 C)이 있었다. 길이 26cm 폭이 9cm로 흔히 볼 수 있는 성년남자의 발 치수였다.

1851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출토된 아연과 은이 합금된 금속 꽃병(그림 5 D)은 연구 결과 지금부터 적어도 10만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페루의 어느 박물관에 소장된 한 돌(그림 5 E) 위에는 망원경을 들고 천체를 관찰하는 인물이 새겨져있다. 독일 본 대학의 광물 및 석유연구소에서 돌에 새겨진 홈의 산화층에 대한 연대를 측정한 결과 적어도 1만 2천년 이전의 것임을 발견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다시피 망원경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이가 발명한 것으로 지금부터 불과 4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다윈의 진화론에 충격을 주는 사전 인류문명의 유적들(에포크타임스 제작)

사전문화에 관한 유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고고학자 마이클 크레모와 리차드 톰슨이 함께 쓴 ‘금지된 고고학’(Forbidden Archeology)이란 책에는 확실한 근거를 지닌 500개의 인류문명유적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중에는 수만 년에서 심지어 수십 억 년 전까지 연대가 올라간다. 이런 고고학 증거들은 모두 진화론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기 때문에 진화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회피하거나 금지된 구역이 되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창조론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론이다. 지금 흠집투성이 진화론은 사전문명의 도전 아래 바야흐로 파산에 직면해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들은 분명히 생명의 진정한 내원에 대해 찾아낼 것이다.

사실 과거 다윈이 진화론이란 가설을 생각해내고 또 이를 발표할 때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진화의 중간과정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종이 너무 많아서 다윈 자신도 합리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 도리어 현대사회에서는 표준으로 떠받들리면서 고상한 지위에 올라갔다.

현실을 직시한 일부 과학자들은 사전문명 학설을 제기해, 인류의 발전은 진화론의 설명과 달리, 주기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매 주기마다 지구에 대재난이 발생하면 당시 존재하던 문명은 훼멸하게 되고, 이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원시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서 발전하면 다음 문명시기로 진입한다. 또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다시 재난을 겪고 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금 인류가 가장 최근에 겪은 사전의 대홍수는 세계 250여개 주요 민족과 80여종의 언어에서 모두 관련 기록을 찾아낼 수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몇 천 년 전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런 기록을 남겼으니 이는 날조된 신화일 수 없다. 오늘날 지질학과 고고학 연구에서도 사전의 대홍수가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역사적으로 주기적인 여러 차례 훼멸적인 재난을 겪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성경에 따르면 대홍수의 재난은 인류의 도덕이 변질되어 사람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하면서 죄악이 갈수록 커졌기 때문에 결국에는 여호와의 징벌을 초래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마찬가지로 당시의 인심이 험악하고 약육강식 현상이 노골화되자 결국 주신(主神) 제우수의 징벌을 초래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사전 대홍수 중에 여와가 하늘을 수리해 창생(蒼生)을 구원했으며 최후에 겁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선량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또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나라를 되찾은 그 세대에 구세주 메시아가 나타나며 신(神)이 세상에 돌아와 최후의 대심판이 있을 거라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도 인류도덕의 상실과 역병(疫病)의 출현이 동반된다. 불경에서는 3천년에 한번 우담바라꽃(그림 6)이 필 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도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른 많은 민족들도 모두 최후에 신이 돌아올 것이며 말겁시기 인류에게 재난이 있을 거라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좌측은 1997년 7월 한국 경기도 광주의 한 사찰에서 발견된 금동여래상 위에서 활짝 핀 우담바라. 이후 20여 년간 우담바라는 세계 각지에서 잇따라 피어나고 있다. 우측은 전자현미경으로 400배 확대한 우담바라로 줄기가 투명한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신화(神話)’들이 모두 진실로 ‘신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오늘날의 인류가 처한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또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이전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론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류는 아주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아주 오래된 문명과 신적(神跡)들은 역사의 두터운 먼지 속에 봉폐되었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희석되었다. 때문에 후인들은 이를 신화나 전설로 간주한다. 게다가 진화론 등의 가설은 마치 무거운 족쇄처럼 더해져 사람이 진실한 역사와 생명의 진상을 똑똑히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다행이라면 역사의 족쇄를 열어줄 일부 열쇠가 사전문명의 유적 속에 감춰져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싼싱두이 유적도 포함된다. 싼싱두이 고고학 연구소장에 따르면 유적지 전체 면적은 1200만 제곱미터에 달하지만 지금까지 발굴된 면적은 다 합해도 2만 제곱미터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싼싱두이 유적만으로도 오늘날 사람들의 굳어진 역사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싼싱두이 발굴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보다 새로운 열쇠가 발견되어 인류를 위해 보다 많은 봉폐된 역사의 자물쇠를 열어주고 사람들이 다시금 역사와 신앙 및 생명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새로 돌아보도록 도와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7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