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청(劉清)
【정견뉴스】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하 ‘9평’)》이 출간된 지 이미 20년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수많은 삼퇴 자원 봉사자들은 각종 난관을 극복해 《9평》을 널리 전하고 삼퇴를 권해 왔다. 전 세계 탈당센터에서 이들 자원 봉사자들에게 어떤 경험과 이야기가 있는지 일련의 보도를 했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반숙진(潘淑珍) 여사다.
반숙진은 1990년 스위스로 이주한 자원봉사자다. 자원봉사를 같이 하는 남편과 함께 예전에 북경 중국과학원에서 일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온 가족이 중국 공산당의 탄압과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늘 공산당을 경계해 왔다. 그러다 《9평》이 출판된 후, 그녀는 이 책이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을 폭로한 것에 깊이 동의했다. 반숙진은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에 너무나 비참하게 속아서 계속 그것을 따르면 중공과 함께 순장될 뿐임을 믿었고, 즉시 《9평》을 전하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왔다. 반숙진의 대략적인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0년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녀가 삼퇴를 권한 사람의 총 수는 16만 명 이상이다.
1. 가족이 공산당의 박해를 받아 중공의 행동을 인정하기 어려워
반숙진은 대대로 도(道)를 닦아온 가정에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또는 기타 친척과 친구는 모두 같은 도가(道家) 공법을 수행하며 대대로 전해왔다. 그녀 역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세심한 지도 아래 이 법문에서 경건하게 수행해 왔다. 그녀는 또 남을 배려해 좋은 사람이 되며,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념에 따라 살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선량한 가족이 공산당의 징벌 대상이 되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학교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탁자가 쾅 하는 큰 소리가 들리고 불이 꺼지는 것을 보았고, 심문을 받던 한 남자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즉시 온몸이 젖었다.
그녀가 다시 보니, 비를 맞는 남자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반숙진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시내에서 온 공산당 간부들이 아버지가 현지 도교 지도자라는 이유로 체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물에 빠진 생쥐가 된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결국 4년 동안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으며 인신의 자유를 잃어야 했다.
불행은 결코 단독으로 찾아오지 않았고, “토호(土豪)를 때려잡고 경작지를 분할하자”고 주장하던 공산당이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그녀의 가족과 외가를 다시 고험에 빠뜨렸다.
반숙진은 북경에서 온 간부들이 그녀의 가족을 부농으로 결정했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사람이 아주 좋아서 농민들의 반대를 받았다. 모두 중공 간부를 찾아와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수레와 말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땅을 갈도록 도왔으며, 농번기에 그가 어떻게 돈과 노력을 기부했는지에 이야기했다. 결국 간부들이 그의 가족을 ‘중하농(中下農)’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지주였던 외가는 과도한 토지와 부동산이 많다는 이유로 큰 영향을 받았고, 특히 외삼촌 가족이 더 심했다. 당시 그녀의 삼촌은 비판 당해 급히 시골로 쫓겨났다. 농부들이 간부들에게 이 집 사람들은 우리가 음식을 훔치는 것을 발견해도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없으면 와서 음식을 가져다주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간부들이 화를 내며 이곳 농민들의 의식이 너무 낮고 공산당과 한마음이 아니라 지주와 한마음이라고 말했다!
농부들이 몰래 도움을 주어 외삼촌 부부는 농촌에서 큰 고생을 겪진 않았지만, 그 자녀들은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어떤 이는 심지어 부모도 몰라보았고 이런 집에서 태어나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고 느껴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산당이 어떻게 가족을 해체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반숙진은 이를 절실히 이해했고 늘 입당하지 말라고 주장해 왔다.
2. 중국과학원에서 스위스로, 중공을 멀리 벗어나 투쟁
반숙진은 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과학원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녀의 남편은 중국과학원 비서실에서 일했다. 나중에 호요방(胡耀邦)이 중국과학원 최고 지도자가 되었을 때 호요방의 비서가 되었다.
호요방이 중공 중앙에서 직책을 맡아 돌아가려 할 때 남편을 데려가고 싶어했지만 반숙진은 그에게 가지 말라고 충고했고 중공의 투쟁철학과 사람을 다스리는 수단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남편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해 스스로 직책을 그만두었고 중국과학원 학자들의 지원을 받아 1987년 스위스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합작으로 설립한 스위스 전자 회사에서 일했다. 이렇게 해서 반숙진 가족은 1990년 모두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이주해서 살았다.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이자 총서기였던 호요방이 등소평 등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압력으로 사임했고 결국 분노해 사망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 조자양도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것은 중공의 치열한 권력 투쟁을 진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반숙진은 자신이 어렸을 때 겪은 가족의 경험이 가장 좋은 경계라고 말했다. 따라서 가족 모두 스위스로 이주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여겼다.
3. 대사관 직원들의 조롱에도 《9평》을 널리 전해
에포크타임스 사설 시리즈 《9평》이 나온 후 곧 반숙진의 손에 들어왔다. 그녀는 다 읽고 나서 이 책이야말로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을 가장 철저하게 드러냈고 자신의 마음속 말을 표현했다고 여겼다. 그때부터 그녀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9평》을 즉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중국 대사관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반숙진은 남편이 좋은 학벌에 학식이 풍부해서 일찍이 호요방의 비서였기 때문에 스위스 화교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현지 박사과정 학생들이 매주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남편이 수련하는 파룬궁(法輪功)을 중국 공산당이 탄압하기 전까지 그들은 종종 현지 중국 대사관의 귀빈이었다.
반숙진 부부는 1998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대사관 직원들은 왜 공산당에 반대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무례한 말을 많이 했다. 그녀의 남편은 예전에 대사관이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때 반숙진이 지팡이를 들고 갔다고 말했다. 지금은 파룬궁 수련을 하기 때문에 지팡이나 의자, 약이 필요하지 않고 가볍게 걷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공법을 우리는 반드시 연마할 겁니다!”라고 했다.
반숙진은 대사관에 있는 중국인들도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에 중독된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9평》을 받은 후 더 많은 중국인에게 중국 공산당의 진면목을 알리고자 다시 대사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은 일부 대사관 직원들의 풍자와 비꼬는 말과 함께 대사관에서 그녀 부부의 여권을 갱신해 주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결국 그들은 스위스 국적을 얻어야 했다.
4. 관광명소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
대사관의 냉대에도 반숙진은 좌절하지 않았다. 《9평》이 출간된 지 2년 만에 그녀는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기 위해 매일 3시간씩 기차를 타고 스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인 루체른까지 왕복하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그녀의 끈질긴 노력으로 십여 명이 넘는 중국인 관광객이 중국 공산당을 떠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에는 어려웠다. 그녀가 처음 루체른에 도착해 중국 관광객들에게 삼퇴를 권했을 때 그녀는 조롱과 모욕을 당했고 밀려나거나 배척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진ᄉᆞᆼ을 모르는 이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심태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참을성 있게 진상을 말했다. 점차 경험이 쌓이며 많은 중국인들이 삼퇴했고 보통 하루 100명 이상에게 삼퇴를 권할 수 있었다.
한번은 반숙진이 어느 모녀에게 《9평》이 얼마나 좋은지 알리고 공산당은 무신론을 조장하며 계속 운동을 벌여 두 차례 세계대전 사망자 수에 해당하는 8천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알렸다. 반숙진은 또 ‘중국공산당망’이란 문구가 적힌 장자석에 대해 말하며 신이 장차 그것을 멸망시키니 삼퇴하라고 권했다. 또 애당과 애국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모녀는 듣자마자 상의한 후 중국 공산당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후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우리는 평안해졌고 생명을 지킬 수 있지만 아버지와 남동생은 아직 집에 있어요. 그들은 어떻게 하죠?” 그러면서 급히 집에 장거리 전화를 걸어 부친과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둘 다 가명으로 삼퇴하는데 동의했다.
어머니는 안도감을 느끼며 또 딸에게 전화 요금이 얼마나 나왔냐고 물었다. 그러자 딸이 말했다.
“엄마, 무슨 돈을 말씀하세요? 이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있나요? 우리가 아무리 돈을 써도 생명을 살 수는 없잖아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평안해질 수 있나요? 일단 목숨이 있어야 돈도 버는 거잖아요?”
어머니는 이 말을 듣더니 연신 고개를 뜨덕였고, 옆에 있던 반숙진도 큰 격려를 받았다. 마침내 모녀의 손을 꼭 잡고 작별 인사를 했다.
반숙진은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5. 관광객에게 절도를 의심받았으나 평소 선행으로 해소
한번은 반숙진이 관광지에서 진상 자료 배포를 모두 마치고 집에 가려 했을 때 한 50대 남성이 “너희는 못 가. 내 물건을 훔쳤어!”라며 가로막았다.
반숙진이 말했다.
“이상하네요. 보세요. 보다시피 저는 두 손이 비어 있습니다. 무엇을 훔쳤겠습니까?“
그 남자는 반숙진이 훔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반숙진의 설득으로 삼퇴한 또 다른 여성 관광객이 와서 좋은 사람들이니 모함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남자는 가이드에게 자신의 물건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후 30대 관광 가이드가 찾아와 반숙진에게 정말 관광객들에게서 물건을 훔쳤냐고 물었다. 반숙진은 잘 아는 가이드에게 “나는 파룬궁을 믿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행동하는데 어떻게 물건을 훔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가이드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을 본 반숙진이 그에게 물었다.
“가이드님, 제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고급 카메라를 들고 당신에게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 카메라를 말하자 당신이 팀에서 분실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서 경찰에 넘기라고 했잖아요.”
이 말을 들은 가이드는 문득 깨닫고 즉시 얼굴이 편해졌고, 반숙진이 물건을 훔쳤다고 주장한 관광객을 데려갔다.
6. 프랑스에서 중공 고관 일행에게 삼퇴 권해
반숙진은 스위스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7월에는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데 참여했다. 그녀는 보통 한 달 이상 그곳에 머무르며 교사, 학생, 성인, 어린이, 고위 관료, 민간인 등 매일 100명 이상 삼퇴시켰다.
한번은 한 관광객이 마치 공산당 고위 간부처럼 행동하며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의 행동이 비범한 것을 보고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현직 관리인지 묻자 최근에 퇴직한 성장(省長)임을 알았다.
이 말을 들은 반숙진은 성장이 붙임성이 좋다고 칭찬하고, 그의 직위는 공산당이 준 것이 아니라 운명에 본래 있는 것으로 신(神)이 주신 것임을 상기시켰다. 만약 금생에서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으면 다음 생에 큰 관료가 될 수 있지만, 공산당의 무신론을 따른다면 중화의 자녀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의 추종자가 될 거라고 했다.
성장은 반숙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고, 가명으로 중국 공산당을 탈퇴하는 데 동의하며 한마디 했다.
“그럼 당신의 덕담을 믿어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반숙진은 몇 마디 말로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삼퇴를 설득했다.
동행한 한 비서관이 처음에 머뭇거렸다. 반숙진은 이것을 보고 말했다.
“당신이 이런 고관의 비서가 될 수 있는 것도 당신의 명에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존중해야 합니다.”
반숙진이 그에게 중국 공산당을 탈퇴하기 위해 가명을 제안하자 비서가 생각해 보더니 “당신 말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반숙진은 프랑스의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협력해 상당수의 중국인이 중국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하게 했다고 말했다. 때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탈퇴했고, 때로는 가족들이 탈퇴했으며, 때로는 버스에 탄 사람들이 무더기로 탈퇴했다.
7. 팬데믹 기간에 전화로 수천 명에게 삼퇴를 권하다
몇 년 전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반숙진은 2020년 3월부터 전화를 걸어 중국인들에게 중국 공산당에서 탈퇴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이 진상 전화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반숙진은 2020년 3월부터 매일 30개의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전화 진상은 대면 진상과 매우 다르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고 또 전화를 받자마자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반숙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반숙진은 서두가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녀는 전화를 걸 때 “안녕하세요 선생님(또는 여사님), 중요한 정보를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시작해 상대방이 목소리를 듣고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임을 알려 그들에게 다가간다.
다음으로 중국의 각종 자연재해와 선진 과학기술을 언급하면서 상대방에게 묻는다.
“공산당은 총도 있고, 대포도 있고, 원자 폭탄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진과 싸울 수 있습니까? 홍수와 싸울 수 있습니까? 역병과 싸울 수 있습니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백신을 맞아도 여전히 감염될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신(神)이 사람을 거두려 내려보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거두실까요? 바로 부도덕하고 나쁜 사람들입니다. 신과 부처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때쯤이면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대개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한다. 반숙진은 북경 천안문 광장에 검은 백조가 나타났고, 북경 담자사(潭柘寺)에 큰 여우가 나타나고 장자석의 계시 등 중국에서 발생한 각종 이상한 일들을 상대방에게 계속 말하며 이런 불길한 징조는 신(神)이 중국 공산당을 멸망시킬 징조라고 말한다.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종종 흥미진진해하면서 그녀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때 반숙진은 상대방에게 “아직 감사하지 마세요. 당신 생명을 영원히 지켜야 합니다. 보세요, 이런 상서롭지 못한 큰일들이 일어나면 누가 재수가 없습니까? 우리 중국 백성들이 재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상기시킨 후 그녀는 가명으로 삼퇴하라고 조언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삼퇴한다.
반숙진은 이렇게 휴대폰 두 대를 사용해 하루 4시간씩 통화했다. 매일 할당된 30개의 숫자 중 평균 18명이 삼퇴했다. 때로는 한 번호로 여러 사람이 삼퇴하는데 이렇게 1년에 수천 명의 사람을 삼퇴시켰다.
8. 삼퇴 권고는 사명이니 모든 기회를 이용해 진상 알려
반숙진은 수년간 전력을 다해 《9평》을 전하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시켰고 모든 기회를 이용해 중국인들에게 삼퇴를 권했다. 그녀는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삼퇴 자원봉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 사는 딸을 방문했을 때는 싱가포르에서 삼퇴를 권했고 역병 기간에는 전화를 삼퇴를 권했으며 주말에는 또 단체 활동에 참가하 삼퇴를 권했다.
반숙진에 따르면 어떤 관광객은 진상을 알고 있거나 공산당의 박해를 직접 경험한 후 자발적으로 찾아와 삼퇴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가명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실명을 사용한다. 또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삼퇴를 한 후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간식 등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그녀를 매우 감동 시켰다.
2008년부터 반숙진은 자신이 설득한 사람들의 수를 통계 내기 시작했는데, 매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삼퇴시켰다. 2005년부터 2020년 역병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녀가 삼퇴를 권한 사람의 총수는 16만 명에 달한다.
80세가 넘은 반숙진은 오늘도 매일 전화를 걸어 더 많은 중국인들에게 삼퇴를 권하고 있다.
“《9평》을 널리 전하고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하는 것은 제 사명입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일을 하려 합니다. 심지어 꿈을 꿀 때도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하는 꿈을 꿉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일종의 사명입니다. 저는 공산당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줄곧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 사명입니다.”
【전 세계 탈당센터 제공】
탈당 사이트 주소:https://www.tuidang.org/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