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시간(時間)은 무엇일까? 과거 현재와 미래 사이의 구별은 단지 뿌리 깊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시간은 왜 늘 미래로 흐르는가?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을까? 이 영상에서 정답을 찾아보기 바란다.
지금 몇 시입니까? 아마 누구나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화살처럼 흐르고, 해와 달은 끊임없이 돌며, 낮과 밤, 빛과 그림자의 교차 등 사람은 누구나 시간을 아주 잘 안다고 느낀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서 시간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아마 많은 이들이 망연해질 것이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시간을 측정하고 계산하는 다양한 방법을 발명해 왔다. 구리 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시간을 계산하고, 해시계, 혼천의, 기계식 시계, 석영 시계에 이르기까지 시간 측정의 정확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국제도량형회의에서는 세슘 원자의 진동 주파수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한다고 정의했다. 따라서 미국 국립표준기술원의 세슘 원자시계는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간 측정 도구가 됐다. 가능오차가 1억 년에 단 1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간 측정의 정확성이 아무리 높아져도 시간의 본질은 건드리지 못한다. 설령 세상의 모든 시계가 멈춰도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공자는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이나 낮이나 그치지 않누나”라고 탄식했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끝없이 흐르고 순간이 지나간다. 아울러 시간의 흐름은 마치 늘 같은 방향, 즉 미래를 향하고 있는 것 같고, 정지되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 같다. “한 치의 짧은 시간은 한 치의 금(金)과 같으나 한 치의 금으로도 한 치의 시간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되돌릴 수 없음을 무기력하게 묘사한 것이다.
“허투루 세월 보내지 말지니, 젊은이 머리 희어진 뒤에는 헛되이 슬픔만 가득하다네[莫等閑,白了少年頭,空悲切] (악비가 쓴 《만강홍》의 일부)”
고인의 가르침은 여전히 우리 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시간표를 벽에 걸어놓거나 손에 끼고 시간에 따라 우리의 하루를 계획한다. 봄에는 생겨나고 여름에는 자라나며, 가을에는 수확하고 겨울에는 갈무리하는 이 모든 것을 시간이 지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는 어느 한 측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탄식한다.
뉴턴에게 있어 시간은 일종 우주의 불변하는 성질이었다.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르고 그 어떤 사물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는다. 뉴턴의 시간에 대한 설명은 사람들의 경험 및 직관과 일치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런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소위 우주 표준시간은 없으며 우주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람마다 자신의 시간이 있고, 사람마다 시간이 각기 다른 속도로 운행한다.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현실 세계에 대한 뉴턴의 이해를 완전히 산산조각 냈고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인 이해를 완전히 뒤집었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것은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흐름 사이에 아주 미묘하면서도 심오한 연계가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공간의 이동이 증가할수록 시간의 흐름은 감소한다. 이 발견이 의미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차이가 너무 미묘해서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에는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시스템에 사용되는 위성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작동하므로 위치 확인 시스템은 시간에 대한 고속 이동의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스템에 오차가 누적된다. 시간의 연장은 사실이며 일부 정신 나간 수학자들의 억측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단지 이동이 시간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중력 역시 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연결해 4차원 시공간 세계를 구축했는데 그는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는 시공간을 크게 왜곡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왜곡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시공간의 왜곡 때문에 30층 건물의 경우 저층과 최상층의 시간이 같지 않고 저층이 약간 더 느리다. 비록 이런 시간 차이는 아주 작긴 하지만 그래도 측정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구축한 4차원 시공간 세계에서 움직이는 개체는 각기 다른 시간, 즉 ‘지금’이 있다. 만약 우주의 매 순간마다 발생하는 모든 일을 다 사진으로 찍어 스냅샷으로 합친다면, 움직이는 개체마다 시간 또는 ‘지금’이 다르기 때문에 당신은 이 스냅샷 모음에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이미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은 일종 뿌리 깊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간의 종결》이란 책에서는 아예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은 우리 마음이 이러한 스냅샷 모음을 처리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한다.
시간의 매 순간이 모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현대 과학자들의 시공에 대한 연구 결과다. 마치 매 사람의 노력과 정책 결정에서 그것이 초래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미 다 결정된 것 같고, 또한 일찍이 137억 년 전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미 잘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정말로 이러한가? 설마 우리가 진실하게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정말 단지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시간에 대한 이런 인식은 ‘타임머신’이 더는 공상과학영화의 주제가 아니며, 물리학자들은 한창 어떻게 해야 미래나 과거의 시간 여행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할 두 가지 가능한 방법을 설명한다.
한 가지 방법은 중력의 기이한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해질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블랙홀은 거대한 별이 스스로 붕괴되면서 엄청난 중력을 받을 때 형성된다. 만약 블랙홀에서 1~2시간 짧은 여행을 한다면 지구에서는 이미 수십 년이 흘렀을 것이고, 지구로 다시 돌아오면 지구의 미래로 들어서는 셈이다.
또 다른 방법은 웜홀을 이용하는 것이다. 웜홀은 시공간에서 일종의 지름길로, 한 부분의 시공을 보다 이전의 시공간과 연결할 수 있다. 마치 시간을 초월하는 터널과 같은데 오직 웜홀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과학자들은 또 이런 시간 여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역설에 대해 논의 중인데 가령 자신과 만나거나,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 등이다. 사실 시간 여행은 여전히 공상과학에 불과하며 단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공상과학일 뿐이다.
서리와 눈비, 사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일상 경험은 시간이 오직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시간의 흐름은 왜 미래로만 흘러가는가? 거꾸로 거슬러 갈 수는 없는가? 물리 법칙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수학 방정식인데,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주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방정식은 시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 방정식은 시간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 즉,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가역(可逆)적이지만 우리 현실에서 보면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볼츠만 방정식에서 엔트로피의 미시적 통계적 의미를 이용한다.
엔트로피는 혼돈이나 무작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볼츠만 방정식은 우주의 모든 사물이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저절로 변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빅뱅 이전의 순간, 즉 빅뱅의 출발점은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질서 있는 기원이었다. 빅뱅은 고도로 질서정연한데, 아마 모든 현상 중에서 가장 질서정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은 서서히 혼란스러워졌다.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을 결정한 것은 빅뱅이고,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단지 일종의 추동력에 의해 137억 년 전보다 더 혼란해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빅뱅의 순간이 시간의 시작점이 되고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주는 여전히 가속 팽창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때가 되면 결국 은하계는 다 사라지고 흩어진 입자들만이 우주를 떠돌게 될 거란 이론이 있다. 모든 것이 쇠퇴하는 미래에는 어떤 사물이든 일정 정도 매끄럽고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변화가 없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도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시간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며, 시간이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구별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때쯤이면 시간은 그 의미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아마 시간의 종말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과학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시간의 흐름은 정말 착각에 불과한가? 과거, 현재, 미래는 이미 동시에 존재하는가? 시간에는 정말 시작과 끝이 있는가? 이러한 인식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으며, 시간 자체가 이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파룬따파(法輪大法) 창시인인 리훙쯔(李洪志) 대사는 설법에서 시간에 관해 아주 명확히 논술하셨는데, 사람들이 시간이 무엇인지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미시적인 것에서 무한히 거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입자가 있으며, 매 하나의 입자에도 모두 하나의 독립적인 시간이 있고, 매 시간은 모두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입자와 입자로 구성된 부동(不同)한 크고 작은 세계, 그 속에도 시간이 있다. 그리고 입자와 무수한 입자로 구성된 더욱 방대한 천체 속에도 역시 시간이 있으며, 동일한 층차의 입자가 전체적으로 존재하는 방대한 입자군(粒子群)인 그것도 역시 더욱 방대한 시간이 있다. 우주 중의 시간은 많기가 우주의 생명과도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게다가 우주는 총체적으로 또 하나의 총체적인 시간이 있고, 그 속에는 구체적으로 각개 공간 중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무수한 시간이 있는데, 이 일체는 모두 부동한 공간 중의 중생이 존재하는 방식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공간의 시간은 아주 빠르며 어떤 공간의 시간은 아주 느리다. 방금 내가 말한 이 공간의 빠르고 늦음에 대한 이 말을 포함하여 내가 처음부터 여기까지 말하는데, 어떤 공간의 시간은 나 여기와 동보(同步)이고, 어떤 공간은 이미 며칠 지나가 버렸으며, 어떤 공간은 이미 몇 만 년 지나가 버렸고, 어떤 공간은 이미 몇 억 년, 몇 조 년 지나가 버렸는데, 바로 이렇게 빠르다. 왜냐하면 우주는 너무나 방대하여 그 속의 입자는 무한히 미시적이고 무한히 거시적인 것으로서 그것들은 모두 자신의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4]
리훙쯔 대사의 논술에서 볼 수 있다시피 우주에는 무량한 시간이 있고, 우주 전체적으로도 총체적인 시간이 있다. 그러나 이 총체적인 시간은 우리 이 시공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류 과학으로는 건드릴 수 없다. 우리의 이 시간장(時間場)에는 또 유사점이 있다. 지구 주위에는 하나의 시간장이 있는데 이는 세상 만물의 총체적인 시간이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모든 것이 정지해 있을 때 그들의 시간은 이 총체적인 시간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들이 운동할 때면 각자의 시간이 있다. 사실 실제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매 생명마다 각기 층차가 다르고 경지가 다르기 때문에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분자는 그 크기와 구조가 다르고 모두 다른 시공간 간격을 구성하는데 다만 현대 과학이 아직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무엇인가?
“천체(天體) 중의 어떤 방대한 물질이든 모두 신이다. 인류는 그를 개념으로 인식한다.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저물고, 동이 트며, 시계가 가고, 물질이 변이하고 있다. 과일은 더운 날에 아주 빨리 부패하고, 밥은 먹지 않으면 쉬며, 농작물은 익어가고, 1년은 4계절이 있는바, 일체가 마치 모두 시간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것을 일종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바, 이 일체의 촉성은 시간 자신(本身)이 관장하고 있는데, 그는 신(神)이다.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저물고,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도는 속도마저도 모두 시간이 조성한다. ”[8]
시간은 신(神)이다! 은하계의 운행, 생명의 주기 등은 모두 시간의 신이 촉성한 것이다. 현대과학은 줄곧 신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해왔지만, 시간의 신은 만나지 못했다.
현대 과학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 일종의 환상이라고 본다. 이는 파룬따파에서 우주의 모든 것이 다 정수(定數)가 있다는 말과 아주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르다.
“우주의 일체에 모두 정수가 있음은, 우주의 정체(整體)를 가리키는데, 예를 들면 구(舊) 법리는 그 성주괴멸(成住壞滅)의 정수(定數)를 정하였고, 이것이 그 구법(舊法)의 지혜의 극한이다. 비록 우주에는 그의 이러한 정수가 있지만, 구체(具體)생명의 근본이 비록 그와 역사적 관계가 있지만, 어느 생명인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데 대해서 말하자면, 그에게 얼마만큼의 업력이 있으면, 그는 갚아야 하는데, 그가 업력이 크면 소멸해야 하는 것으로, 그것은 모두 생명 자신의 일이며, 이 생명 자신이 어느 일보까지 나아가는지 하는,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의 행위를 통하여 이 생명의 우주 중에서의 다음 일보, 다음 일보, 또 다음 일보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이 공간의 시간환경을 떠나서, 다른 시간환경 속에서 그가 이후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는데, 그것 역시 그의 오늘날의 상태에 따라 그 일보까지 연속된 것이다. 만약 그의 지금의 상태가 갑자기 변하였다면, 그다음 일보의 상태 역시 변하므로, 이것은 불안정한 것이다. 우주의 성주괴(成住壞)의 총체적인 정수는 안정된 것이다.”[9]
파룬따파는 또한 우주 중의 이런 일체 정수(定數)는 이미 우주가 탄생할 때 결정되었다고 알려준다.
“여러분 알다시피 과거의 역사 중에서 우주는 어느 경지든지 간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어 도태시키므로, 바로 큰 겁 작은 겁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모두 구 우주의 과정 중의 일이다. 이 우주를 건립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동시에 건립하기 때문에, 동시에 모두 있게 된다. 중생은 단지 그중에서의 표현일 뿐, 생명은 이미 있는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가는즉, 마치 극본이 이미 있는 것처럼 사람은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출연할 뿐이다. 다만 거대한 천체 중에는 부동한 시간, 부동한 공간이 있어, 몸이 느린 공간 중에 있으면 빠른 공간 생명의 일생, 일세를 볼 수 있는데, 일순간에 심지어 그 우주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동시에 이미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인데, 시간이 부동한 시공, 부동한 시간환경으로 갈라놓았다.”[10]
이런 정수(定數)는 마치 극본처럼 존재하며, 생명의 과정과 우주의 과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우주를 낳은 법의 지혜의 극한을 반영하는 것은 어떤 극본인가? 그러나 시간이 매우 느린 시공(時空) 속에서, 또는 시간 개념이 없는 시공 속에서, 우리는 시간이 빠른 시공 속에서 한 생명은 이미 전 과정을 완주했거나 심지어 우주마저 전 과정이 끝난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숙명통(宿命通) 공능이란 바로 모든 것에 다 정해진 수가 있음을 반영한다.
“무엇을 숙명통이라고 하는가? 바로 한 사람의 장래와 과거를 알 수 있고, 크게는 사회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더욱 크게는 온 천체(天體) 변화의 법칙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숙명통공능이다. 물질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기 때문에 특수한 공간 중에는 어떤 물체든지 모두 많고 많은 다른 공간 중에서 존재하는 형식이 있다.”[11]
“어떤 특정한 공간 중에서, 사람들이 이 일을 마치면, 즉 사람이 손을 한번 휘둘러 어떤 일을 하면 모두 물질로 존재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영상(影像)과 정보(信息)가 남을 것이다. 다른 공간에서 그것은 불멸하는 것으로서 영원히 그곳에 존재할 것이며, 공능이 있는 사람은 과거에 존재했던 광경을 보기만 하면 곧 알 수 있다.”[11]
《성경》에서 최후의 심판 때 신은 한 사람의 과거의 말과 행위를 통해 심판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다며 이해하지 못하는데,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종 물질적인 존재로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 한 사람이 죽어 이 세상을 떠날 때, 평생의 언행을 스스로 다 볼 수 있는데 아주 생생하다.
숙명통 공능을 지닌 사람은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다. 사람의 일생은 이미 잘 정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업력윤보(業力輪報)와 인과응보를 말하는데 사람의 일생은 바로 보다 고급 생명이 한 사람의 업력에 따라 배치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평생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파룬따파는 이런 쟁투는 악과(惡果)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개인분투는 인생의 작은 것을 개변할 수 있으며, 일부 작은 것은 개인분투를 통해 일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바로 당신이 개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업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업을 짓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이렇게 하면 그는 곧 다른 사람의 이익을 점유하여, 그는 나쁜 짓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련에서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라고 거듭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이치다. 왜냐하면 당신이 노력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당신의 생명 중에 이것이 없는데 사회 중에서 본래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당신이 얻는다면, 당신은 남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11]
한 사람이 업을 지으면 인생에 고통과 시련을 가져올 것이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말하는데 한 사람이 이렇게 육도에서 업력윤보하면서 업의 빚을 갚는다고 한다.
인생의 최종 귀착지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파룬따파는 두 가지 상황이 인생의 최종 귀착지를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바로 이 사람이 나쁜 일만 하고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을 모두 한다면, 그는 그의 인생을 개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직면하는 것은 철저한 훼멸이다. 우리가 고층차에서 볼 때, 사람이 죽어도 元神(왠선)은 불멸(不滅)한다. 元神(왠선)은 어찌하여 불멸하는가? 사실 우리가 사람이 죽은 후에 영안실에 놓인 그 사람을 보면, 그것은 단지 우리 이 공간 중의 인체 세포에 불과하다. 내장(內臟)ㆍ신체 속의 각 세포 조직, 온 인체는 이 공간 중의 세포가 탈락된 것일 뿐, 다른 공간의 분자ㆍ원자ㆍ양성자 등의 성분보다 더욱 작은 물질 미립자로 된 신체는 전혀 죽지 않았으며, 그것은 다른 공간 속에, 미시하의 공간 중에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을 다 한 사람이 직면하는 것은 바로 모든 세포가 전부 해체되는 것인데, 불교 중에서는 형신전멸(形神全滅)이라 한다.”[11]
“사람이 그의 일생을 개변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유일한 방법으로서, 바로 이 사람이 이후부터 한 갈래 수련(修煉)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수련의 길을 걸으면 그의 인생을 개변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을 누가 쉽게 움직일 수 있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이 수련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하는, 이 의념(意念)이 움직이기만 하면 마치 금과 같이 빛나서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하기 때문이다. 불가의 우주에 대한 개념은 시방세계 학설이다. 왜냐하면 고급 생명이 볼 때 사람의 생명은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생명은 우주공간 중에서 생겨난 것이며, 우주와 동일한 성질이고 선량한 것으로서,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도 군체적인 관계가 있어, 그는 군체 중에서 사회관계가 발생할 때, 일부가 좋지 않게 변하여 아래로 떨어졌다. 이 층차 중에서 또 그는 있을 수 없게 되고, 그는 더욱 나쁘게 변하여 그는 또 한 층차 떨어졌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져 최후에는 속인 이 층차 중까지 떨어져 내려왔다.
이 층차 중에서 이 사람은 마땅히 훼멸되고 소멸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대각자들은 大慈悲心(따츠뻬이씬)에서 특별히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데, 바로 우리 인류사회와 같은 이런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그에게 사람의 육신을 하나 더 주었고 우리 이 물질공간에서만 국한하여 물체를 볼 수 있는 이런 한 쌍의 눈을 더 주었다. 즉 미혹 중에 떨어져서 그로 하여금 우주의 진상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다른 공간 중에서는 모두 볼 수 있다. 이 미혹 중에서, 이 상태하에서 그에게 이런 기회를 남겨 주었다.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또한 가장 고달프며 이 신체가 있어 그에게 고생을 겪게 한다. 사람이 이 공간에서 되돌아 올라올 수 있음을, 도가의 연공(煉功)에서는 반본귀진(返本歸真)이라 하는데, 그에게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곧 불성(佛性)이 나온 것으로서, 이 마음을 가장 진귀하게 보아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것이다. 사람이 이처럼 고생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아직 방향을 잃지 않고, 또 되돌아가려고 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것인데, 무조건 그를 도와주며 무슨 일이든 그를 도와줄 수 있다. 왜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지만, 속인에게는 해줄 수 없는가? 바로 이런 이치다.”[11]
생명이 되돌아 올라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만이 인생의 정확한 선택이다. 파룬궁 수련생들 중에는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파룬궁을 배운 후 모든 질병이 사라졌다. 바로 그들이 생명이 되돌아 올라가는 길을 선택했고 진정한 수련의 길을 선택해 인생의 길을 새로 배치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은 시간은 단지 미래로만 흐르며, 비가역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빅뱅 이후 우주가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며 우주 중의 모든 것은 다 우주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파룬따파는 우리에게 현재 우주의 법리는 “성(成)·주(住)·괴(壞)·멸(滅)·공(空)”이라고 알려준다. 이 다섯 단계는 되돌릴 수 없고 변경할 수 없으며 잠시 멈출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다시 시작한다.
“우주의 과거 특성은 우주의 주기적인 변화를 결정하였다. 무슨 특성인가, 바로 ‘성ㆍ주ㆍ괴ㆍ멸ㆍ공(成ㆍ住ㆍ壞ㆍ滅ㆍ空)’이며 이것은 과거의 우주였다. 우주는 대단히 크다. 작은 면적 혹은 일부분에 괴멸(壞滅)이 나타났을 때 곧 폭파해 버렸는데 폭파해 버리면 곧 공(空)이다. 비워지고 난 다음의 물질, 그것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신은 이런 사망물질(死亡物質)을 이용하여 다시 새롭게 새로운 그 한 층의 우주를 만들어 낸다. 이 상태와 인체의 신진대사(新陳代謝)는 거의 흡사하다. 그렇다면 더욱 넓은 범위에서 문제가 나타나면 더욱 넓은 범위 역시 폭파해버려야 하며, 다음에 다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낸다.”[12]
우주가 ‘공(空)’ 단계에 들어갈 때 이 우주의 시간도 끝난다.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시간이 곧 시작된다. 실증과학은 늘 현상의 표면에서 현상을 인식하고 현상 배후의 실질을 알지 못한다. 실증과학은 우리 이 우주 이전에 빅뱅이 있었다는 증거를 관찰해 우리 우주는 빅뱅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빅뱅이 우리 우주 시간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현대 과학이 관측한 빅뱅은 구우주(舊宇宙)의 종결인데 바로 지난번 우주 시간의 종말이다.
우리 우주는 지금 ‘멸(滅)’의 단계에 이르렀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세상의 “종말”, 불교에서 말하는 “말법말겁(末法末劫)”시기는 바로 지금 이 시기를 가리킨다.
“현재 전체 우주는 이미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매번 이런 변화가 일어날 때, 전체 우주 중의 생명은 전부 훼멸에 처하며 완전한 훼멸상태에 처한다. 매번 이런 정황이 발생할 때 우주 중에서 이전에 존재했던 이런 특성과 그 속의 물질을 모두 깨끗이 폭파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모두 폭파되어 죽었지만, 매회 모두 깨끗이 폭파하지 못했다. 새로운 우주가 극히 높고 극히 높은 대각자들에 의해 새롭게 세워진 후, 그 안에는 아직도 일부 폭파되어 죽지 않은 것이 있다. 대각자들이 이 우주를 세울 때는 모두 그 자신의 그런 특성, 자신의 표준으로 이 우주를 만들기에, 먼젓번 한 시기의 우주특성과는 좀 다르다.”[11]
지구의 역사에서 볼 때, 늘 이전 한 시기 지구상의 생명을 모두 멸절시킨 것은 아니다. 폭발해서 죽지 않은 생명은 또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이전 시기 지구상에서 아주 좋은 생명이었기 때문에 보존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여러 차례 문명에 훼멸성 타격을 받은 후, 단지 소수 사람만이 살아남아서 원시생활을 했고, 또 점차적으로 새로운 인류가 번성하고 퍼져 새로운 문명으로 진입했다고 여겼다. 그런 후에 또 훼멸로 나아갔고, 또다시 새로운 인류가 번성하여 퍼져 나갔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부동(不同)한 하나하나의 주기적인 변화를 거쳐 왔다.”[11]
살아남은 소수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후손들에게 말했고, 이는 인류의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신화가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운동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과거 구우주의 법리가 작은 범위에서 주기를 마치고 다시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극히 높고 극히 높은 대각자들이 새로운 우주를 만들면 새로운 우주 특성과 새로운 우주의 법리를 지니게 된다. 우리 우주는 현재 폭발과 재조합을 거치고 있으며, 창세주께서는 우리 우주를 재편하고 계신다. 신우주는 더 이상 구우주 “성, 주, 괴, 멸, 공”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장래의 우주는 이 방면에서 개변될 것이다. 일단 나빠졌을 때에는 곧 그것을 원용(圓容)하고 그것을 갱신하며 그것으로 하여금 좋게 변하게 한다. 이래서 구우주와 같지 않다.”[12]
신우주는 원용(圓容)한 것으로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신우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인류는 장차 큰 복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신우주를 맞이해야 하는데 여러분은 준비가 되었는가? !
첨언:
이 시리즈 곳곳에서 리훙쯔 선생님의 설법 내용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는 순전히 작자 개인의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이해에 불과할 뿐이다. 아울러 인용 과정에 단장취의를 피하기 어렵다. 리훙쯔 선생님의 원저에는 보다 깊고 보다 박대한 함의가 담겨 있으니 가장 좋은 것은 흥미 있는 시청자분들이 선생님의 원저작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다. 리훙쯔 선생님의 모든 저작은 다음 사이트에서 무료로 보거나 다운받을 수 있다.
파룬따파 전 세계 사이트 : http://falundafa.org/
파룬따파 한글 사이트 : https://ko.falundafa.org/
참고문헌
[1] PBS-TV/NOVA: “The Fabric Of The Cosmos” (Updated: November 2011).
[2] The Fabric of the Cosmos: Space, Time, and the Texture of Reality (2004). Alfred A. Knopf division, Random House, ISBY 0-375-41288-3
[3] 自然哲學的數學原理 (2006) 牛頓 著,趙振江 譯,ISBN 7-100-04513-4
[4] 북미순회설법 리훙쯔(李洪志)
[5] 휴스턴법회설법 리훙쯔(李洪志)
[6] 스위스법회설법 리훙쯔(李洪志)
[7]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리훙쯔(李洪志)
[8] 창춘보도원법회설법 리훙쯔(李洪志)
[9] 2004년 미국서부법회설법 리훙쯔(李洪志)
[10] 2010년 뉴욕법회설법 리훙쯔(李洪志)
[11] 전법륜 리훙쯔(李洪志)
[12]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 리훙쯔(李洪志)
깐징월드 동영상: https://www.ganjingworld.com/ko-KR/video/1fettsu09do4p9nI6U1wO8eHd1sj1c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29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