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뉴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에 익숙하며, 이것이 높은 효율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다른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 (셔터스톡)
어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휴대전화를 스크롤하거나, 걸어가면서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는 등 멀티태스킹에 익숙하며, 이것이 높은 효율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것은 시간을 절약해 주지만, 그것은 또한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수도 있다.
앨리사 라투노는 작가다. 그녀는 ‘리얼 심플(Real Simple)’ 잡지에 뉴욕 대도시 생활 속에서 자신이 여러 사항을 동시에 처리하는 법을 배웠다고 공유했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저녁에는 TV를 보면서 이야기 구상을 하며, 컴퓨터에 동시에 수십 개의 탭을 열어두는 것이 이미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 그녀는 이것이 일종의 능력이며, 효율적이고 시간도 절약된다고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마음이 불안정해짐을 느꼈다. 심지어 원래는 긴장을 풀고 즐겨야 할 시간인 극장에 가서 공연을 보거나, 친구와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할 때도 생각은 다른 곳으로 표류했다. 주의력이 심각하게 분산되었고, 스트레스는 폭발 직전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무엇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효율적이라고 느끼는 것”이 “진짜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멀티태스킹이 매우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단지 느낌일 뿐이다. 사실 하루를 이렇게 바쁘게 보내고 나면, 종종 사람은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심리치료사들은 바쁜 것이 사람들에게 일이 추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지적한다. 사람이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처리하느라 바쁠 때, 뇌는 도파민 보상을 얻으며 “당신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효율적이라고 느끼는 것과 진짜 효율적인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러한 자극에는 대가가 따르며, 최종적으로는 “당신이 모든 것을 다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완수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뇌가 빈번하게 임무를 전환하면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어
인간의 뇌는 사실상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임무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전환할 때마다 당신의 뇌는 맥락을 다시 불러오고 정신을 다시 집중해야 하므로, 본질적으로 일종의 재부팅이다.
이러한 “전환 비용”은 대량의 인지 에너지를 소모한다. 시간이 길어지면, 이러한 정신적인 반복 전환은 당신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하고 주의력을 집중되지 않게 만들며, 쉽게 짜증을 내게 변하게 한다.
확실하고 실행 가능한 개선 방법
라투노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일주일 동안 더 이상 멀티태스킹을 진행하지 않기로 시도한 것이다. 목표는 매우 간단했다. 한 번에 오직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었다.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매일 방해받지 않는 25분간의 집중 업무 시간대를 설정했다. 이 시간 동안 그녀는 휴대전화를 방의 다른 한쪽에 두었고, 컴퓨터에 열려 있는 모든 불필요한 탭을 닫았으며,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스스로를 하나의 임무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업무 전화 회의를 할 때, 그녀는 한편으로는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건성으로 듣고는 했다. 그녀는 회의 화면을 전체 화면으로 표시하기 시작했고, 본능적으로 휴대전화에 손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의식적으로 손을 의자 위에 올려두었다. 이것은 다소 과장되게 들릴 수 있지만 매우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뇌는 이미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자극을 갈망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 순환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자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을 견지한 후, 끊임없이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하던 충동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주의력을 집중하는 것도 더 이상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노력을 거쳐 일주일이 지난 후, 그녀는 자신이 눈에 띄게 집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더욱 몰입하게 되었고, TV를 보거나 요리를 할 때도 뇌가 더 이상 여러 가지 잡념에 방해받지 않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즐거워졌다. 가장 큰 수확은 사유가 명석해진 것이었으며, 이는 뇌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을 얻었기 때문이다.
(NTD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6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