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뉴스】

자저우 감옥은 ‘초읽기 식사(吃秒飯)’를 시행해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20초 이내에 식사를 끝내도록 강요하여 겨우 몇 모금만 삼킬 수 있게 했다.(명혜망)
중국 공산당(중공)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하기 위해 수많은 고문 도구를 사용하는 것 외에도, 신체적 한계에 부딪히게 하는 체벌을 통해 수련 포기(전향)를 강요하고 있다. 그중 가장 흔하게 쓰이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기아(饑餓)’를 이용한 신체적 학대다.
파룬궁 수련생들을 강제로 전향시키기 위해 중공의 감금 시설에서는 인성을 상실한 수단들을 동원하고 있다. 일례로 쓰촨성 자저우(嘉州) 감옥의 전향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사흘이면 초췌해지고, 일주일이면 무너지며, 보름이면 병상에 눕고, 한 달이면 저승에서 만난다.“
“육체적으로 학대해 무너뜨리고, 정신적으로 고문하며, 생활 속에서 굶겨 죽인다.”
굶기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며, 수련생들에게 가장 극심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이 동원된다. 자저우 감옥에서 실시하는 ‘초읽기 식사(吃秒飯)’는 수련생들에게 20초 이내에 밥을 먹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몇 모금 삼키지도 못한 채 식사가 끝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체중이 급격히 줄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허약해져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한다.
교도관과 바오자(包夹, 수련생을 감시하는 형사범)들은 기아를 이용해 수련생들을 모욕하고 학대하기도 한다. 동물처럼 밥을 먹게 강요하거나, 밥을 쓰레기통이나 심지어 변기에 쏟아버린 뒤 조롱함으로써 신체와 정신에 극심한 상처를 남긴다. 다음은 이 잔인한 체벌의 실상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이다.
극도의 굶주림 속에 변기에서 밥을 건져 먹다
올해 70여 세인 판원팡(范文芳)ㅇㄴ 안후이성 푸양(阜陽)시 출신으로, 프양시 잉저우(穎州)구 원펑(文峰) 커뮤니티 병원의 산부인과 의사였다. 중공이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 노동교화 및 징역형을 선고받아 총 수감 기간이 20년에 달한다.
2022년 7월, 판원팡은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납치되어 세 번째로 징역 5년의 부당한 선고를 받고 안후이성 허페이 여자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녀가 전향을 거부하자 잔혹한 박해가 뒤따랐다. 제11감구에서 그녀가 “파룬따파하오(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치자, 방장은 홍가(红歌, 공산당 찬양가)를 부르며 방해했고 수시로 밥을 주지 않았다.
감구장 황링(黃玲)은 한술 더 떠서 그녀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명령하거나, 때로는 그녀의 밥을 대변 변기에 쏟아버렸다. 극도의 굶주림에 처한 판원팡은 변기에서 밥을 건져 먹어야 했고, 이를 본 교도관과 수감자들은 그녀를 비웃고 조롱했다.
‘초읽기 식사’ 석 달 만에 사망한 청두의 청화이건
‘초읽기 식사’는 쓰촨성 러산(樂山) 자저우 감옥에서 수련생들의 전향을 압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잔인한 만성 고문 수단이다. 교도관들은 식사 시간을 단 20초 정도만 부여한다. 이 식사를 경험한 이들에 따르면, 식사 속도가 빠른 사람도 씹지 않고 바로 삼켜야 겨우 네 모금을 먹을 수 있고, 느린 사람은 두세 모금밖에 삼키지 못한다고 한다. 며칠만 지나도 살이 빠지고 장기간 지속되면 피골이 상접하게 된다.
자저우 감옥의 전신인 우마핑(五馬坪) 감옥에서는 밥그릇을 바닥에 두게 하고 손으로 들지 못하게 했다. 수련생들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동물처럼 존엄성 없이 밥을 먹어야 했다. 감시자가 1부터 20까지 세는 약 20초의 시간이 끝나면 즉시 식사를 멈춰야 했다. 손이 느린 사람은 밥 한 숟가락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짠지 한 조각조각조차 맛보기 어려웠다.
2016년 6월, 청두 톈푸신구(天府新區) 수련생 청화이건(程懷根)은 납치된 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자저우 감옥 제9감구의 ‘정훈조(整訓組)’에 격리되어 초읽기 식사를 강요받았다. 일반 수감자는 이곳에 3일, 7일, 길어야 15일 동안 격리되지만, 청화이건 씨는 무려 석 달 이상을 갇혀 있었다.
그곳에서는 하루 세끼를 통틀어 밥 50g도 먹지 못했고, 다른 음식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도 열흘이면 눈에 띄게 마르는 환경이었다. 청화이건은 이 고문으로 뼈만 남은 상태가 되었음에도 이후 작업장에 투입되어 노동을 강요당하다가, 사흘 뒤인 2017년 5월 29일 결국 사망했다.
죄수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겨우 한두 모금만 지급
광둥성 베이장(北江) 감옥은 야만성과 폭력성, 교활함을 두루 갖춘 곳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수련생들의 육체를 고갈시키고 정신을 파괴하는 곳이다. 폭력적인 세뇌 방식 중 하나인 기아법은 자신을 죄수로 인정하지 않는 수련생들에게 극소량의 음식만 제공하여 신체를 망가뜨리는 수법이다.
2021년 가을, 수련생 리차오쑹(李峭松)은 하이주(海珠)구 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베이장 감옥에 수감되어 굶주림의 고통을 겪었다.
리차오쑹을 전담하던 교도관 예(葉)씨는 그에게 밥을 배불리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하루는 감시자 차오(曹)모가 예 씨에게 “리차오쑹이 요 며칠 배불리 먹더니 말에 힘이 들어가고 생기가 돕니다”라고 보고했다. 밥을 먹으니 기운이 나 중공의 전향 논리에 반박할 힘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이에 예는 “그럼 배불리 주지 마라”고 했고, 차오 씨는 “알겠다”라고 답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 리차오송 씨가 식사 시작 명령을 기다리며 식판을 들고 있자, 차오 씨는 그의 식판을 다른 감시자에게 넘겨 밥과 반찬의 대부분을 덜어내게 한 뒤 겨우 두세 모금 분량만 남겨 돌려주었다. 어떤 날은 아침 식사를 아예 주지 않거나 국수 한 가닥 정도만 주기도 했다.
리차오쑹이 이 상황을 교도관에게 항의하자, 교도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밥은 죄수들에게 주는 것이다. 네가 죄수임을 인정하면 주겠다.”
리차오쑹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고, 이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극심한 기아 속에 만두를 삼키다 질식사
산시성 퉁촨(銅川)시 수련생 뉴쉐둥(牛學東)은 2020년 무렵 웨이난(渭南)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한겨울에 눈밭으로 끌려가 장기수 왕카이(王凱)에게 곤봉으로 100여 대를 맞는 폭행을 당했다. 당시 얇은 속옷 한 장만 입고 있던 그는 이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감방의 방장은 뉴쉐둥 씨에게 밥을 주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음식을 나눠주는 것도 금지하여, 그는 장기간 굶주림에 시달렸다. 2022년 2월 26일 점심, 누군가 그에게 따뜻한 만두 두 개를 건넸다. 이미 가혹행위로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뉴쉐둥 씨는 극심한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만두를 통째로 삼켰고, 그만 목이 막혀 숨을 쉬지 못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아무런 응급조치도 받지 못한 채, 뉴쉐둥 씨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질식사했다.
허기에 지쳤을 때 준 식사에 담긴 독극물
여성 의사인 양차오췬(楊超群, 72세)은 구이저우성 퉁런(銅仁) 시 중의원 소속으로, 10여 년 전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이후 수차례 가택수색과 구류를 당했다.
2021년 12월 25일 오후, 양차오췬이 장을 보고 귀가했을 때 집안은 이미 7~8명의 인원에 의해 수색당하고 있었다. 수색을 주도한 인물은 가택 연금과 괴롭힘을 반복해 온 비장(碧江)구 국보대대 부대장 룽치전(龍啟珍)이었으며, 현장에는 ‘610 사무실(파룬궁 박해 전담 기구)’ 직원, 파출소 경찰, 커뮤니티 직원 등이 동행했다. 이들은 그녀의 파룬궁 서적, 컴퓨터, 휴대전화 심카드 등 개인 소지품을 강탈했다.
다음 날인 26일, 롱치전은 양차오췬의 눈을 가린 채 알 수 없는 장소로 강제 연행했다. 박해자들은 제때 식사를 주지 않다가 그녀가 극도로 허기질 때에야 비로소 음식을 주었는데, 그 밥에는 독극물이 들어있었다. 음식을 먹은 양 씨는 온몸에 통증을 느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두통과 현기증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12월 30일, 상태가 악화되자 의료진을 불러 혈압을 측정하니 최고혈압 200, 최저혈압 100에 달했다. 수감 중 사망할 것을 우려한 박해자들은 이튿날 가족들에게 그녀를 인계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겨우 세 숟가락의 밥, 밤새 잠 못 드는 굶주림
지린성 제1여자감옥 제8감구 1층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수감되는 곳이다. 1층의 10개 감방 중 전향을 거부하는 수련생들은 모두 ’07 감방’에 격리된다. 이 방에는 침대나 침구류가 전혀 없으며, 텅 빈 공간에 작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만 둔 채 온종일 앉아 있게 하는 벌을 가한다.
제8감구의 수감자 총두목인 다이위(代玉)는 12년 형을 선고받은 사기범이다. 그녀는 자신의 형기를 감면받기 위해 수련생들을 상대로 악랄한 행위를 일삼았다. 엄동설한에 자신은 세탁할 때 따뜻한 물을 쓰면서도, 수련생들에게는 찬물로 머리를 감고 발을 씻으며 옷을 빨도록 강요해 수련생들의 손은 동상으로 변형되었다.
2026년 1월 2일부터 12일까지, 그녀는 수련생들에게 매일 아주 적은 양의 식사만 허용했다. 겨우 세 작은 숟가락 정도의 미미한 양이었기에 수련생들은 짠지로 배를 채워야 했다. 과도한 짠지 섭취로 위장 장애가 발생했고, 밤마다 밀려오는 공복감에 하반신이 떨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수련생이 교도관에게 식사량 문제를 제기하자, 다이위는 사흘째 되던 날 오히려 감방마다 엄청난 양의 밥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디 배터지게 먹어봐라. 다 못 먹고 남겨서 버리기만 해 봐, 다음 달 물품 구매는 일절 없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만 밥을 가득 준 뒤, 다시 이전처럼 굶주리게 만들었다. 이는 수련생들을 길들이기 위한 의도적인 가혹행위였다. 장기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감옥에서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톈진 역사 교사 장위란에게 허용된 식사 시간은 ‘3분’
톈진시 난카이(南開)구 제63중학교의 역사 교사였던 장위란(張玉蘭)은 2002년 징역 8년을 선고받고 톈진 여자감옥에 수감되었다. 모진 고문을 견디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나 하반신 마비와 실명에 이르렀다.
감옥에서 그녀에게 제공된 식사는 아침저녁으로 작은 만두 한 개가 전부였고 짠지조차 없었다. 다른 수련생들이 교도관에게 지속적으로 항의한 끝에 겨우 밥을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으나, 교도관들은 또 다른 박해 수단을 썼다. 식사 시간을 단 3분으로 제한하고, 시간이 지나면 남은 음식을 뺏어버리는 방식이었다.
그녀가 밥을 먹을 때면 감시자 한 명은 알람시계를 들고 시간을 쟀고, 다른 한 명은 그녀의 식판과 만두를 빼앗을 준비를 하며 노려보았다. 알람이 울리면 즉시 음식을 빼앗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어느 날, 파룬궁 박해를 담당하던 제4감구 교도관 우춘환(吳春環)이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 찾아왔다. 장위란 씨가 식사 시간이 3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우춘환은 냉소하며 말했다.
“3분도 너무 길다. 앞으로 네 식사 시간은 2분이다.”
장위란은 박해자들의 의도대로 굶어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서 출옥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만두를 손에 꼭 쥐고 감시자들이 빼앗아가려 하면 다시 빼앗아 입에 넣었다. 나중에는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키는 법을 터득했다. 음식을 물에 말아 잘게 부순 뒤 한 번에 들이켰고, 나중에는 부수지 않고도 통째로 삼킬 수 있게 되었다.
극심한 허기 속에서 그녀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과일 껍질을 주워 먹고, 목욕탕 바닥에 흐르는 물을 마시며 버텼다. (사례 출처: 명혜망)
(에포크타임스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