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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의 실체》 들어가는 말

【정견망】

5천 년 역사는 큰 연극 무대

한 민족의 탄생과 전승, 흥성성쇠에는 언제나 그 민족의 도덕적 고상함이나 또는 타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천의(天意)와 천명(天命)은 줄곧 하늘의 신령(神靈)이 민족의 도덕 수준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최종적으로 결정하신 것이다.

신은 하계(下界)의 생명을 가련히 여기어 수천 년 전 자신의 형상을 본떠 사람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이 되는 합법성이다. 중화민족은 하늘이 보우하신 민족이다. 민족의 조상 복희(伏羲)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신명(神明)의 덕(德)과 통할 것’을 지도했다. 중국 전통 사회에서는 말을 할 때면 반드시 ‘천도(天道)’를 일컬었다. 중국인이 흔히 말하는 ‘대도(大道)’란 바로 ‘하늘의 도’를 일컫는다. 상고(上古)의 ‘지덕지세(至德之世)’란, 곧 하늘이 신(神)의 규범을 인간 세상에 내려주어 나라를 다스리고, 사직(社稷)을 바로 세우며, 백성의 질서를 잡고, 후손들 이롭게 한 시대를 이른다.

중국 5천 년 찬란한 전통 역사 문화의 정점이었던 정관성세(貞觀盛世) 당시, 당태종은 지극한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니 문화가 번영하고 나라가 평안하며 경제가 발달하여 만국(萬國)이 조공을 바치러 왔으며, ‘감옥이 비고 관리가 필요 없을 정도’의 기적이 나타났다. 정관 6년, 당태종은 옥에 갇힌 390명의 사형수들에게 고향 방문 휴가를 허락하며 이듬해 돌아와 처형받으게 했다. 기한이 되자 390명의 죄수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돌아와 보고했다. 그들이 신의를 지켰기 때문에 당태종은 사형을 면제해 주었다. 이 얼마나 현명한 군주의 성덕(聖德)이며 도덕으로 감화시킨 큰 지혜인가! 이것이 바로 군주와 백성이 함께 이룩한 도덕 수준이다.

마지막 전통 왕조인 청조(淸朝)의 강희대제가 친정(親政)을 시작한 후, 즉시 토지 점유를 중단시키고 관료 사회를 정돈했으며 황무지 개간 면세 기간을 연장해주었다. 강희 원년부터 매년 세금을 감면하고 이재민을 구제하는 정책을 폈다. 강희 50년부터는 세 차례에 걸쳐 전국 각 성(省)의 부세(賦稅)를 1년간 면제해 주었으며, 각 성이 수년간 체납한 세금까지 일괄 면제했다. 강희 51년에는 ‘영불가부(永不加賦, 영원히 세금을 늘리지 않음)’ 정책을 시행했다. 강희대제 재위 60년 동안 천하의 전량(錢糧 세금으로 받는 돈과 곡식)을 탕감해 준 것이 총 545회에 달했는데, 이를 은으로 환산하면 무려 1억 5천만 냥에 달한다. 이는 당시 국가의 연간 재정 수입인 2천만~3천만 냥의 5~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얼마나 백성을 이롭게 한 성주(聖主)이며, 국가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케 한 사직의 복인가! 이것이 바로 국가 정부가 집정(執政)하는 도덕인 것이다!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을 겸비하고 웅재대략(雄才大略)을 지녔던 한무제 유철은 서한 왕조의 최전성기를 창립했으며, 이는 또한 중국 전통 왕조의 한 정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무제는 윤대죄기조(輪台罪己詔)에서 “지나온 과거의 후회를 깊이 진술”하며, 천하를 번거롭게 하고 수고롭게 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겠다며 “가혹하고 포악한 것을 금하고 함부로 세금을 걷는 것을 멈추며 농업에 힘쓰게 하여” 백성을 쉬게 하고 풍요롭게 기르고자 했다.

또한 군신들 앞에서 자책하며 이르기를 “짐이 즉위한 이래로 한 행동들이 미치고 거칠어(狂悖) 천하를 근심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니, 다시 돌이킬 수 없노라. 앞으로 백성에게 상처를 주고 천하의 재물을 낭비하는 일은 모두 그만둘 것이다!”라고 했다. 죄기조(罪己詔)는 하늘의 뜻을 자각하고 받드는 군왕의 덕행(德行)이며, 전통 왕조가 집권의 합법성을 인간 세상에서 진정으로 실시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역사상 황제들은 흔히 ‘죄기조’를 통해 하늘에 고백하고 땅에 책임을 지며, 천재인화(天災人禍)를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았다.

선철(先哲)인 성인 노자는 2,500여 년 전에 이미 인류 사회가 아래로 미끄러지는 궤적을 보았으며, 세인에게 명백히 알려주었다. “도(道)를 잃은 후에 덕(德)이 나타나고, 덕을 잃은 후에 인(仁)이 나타나며, 인을 잃은 후에 의(義)가 나타나고, 의를 잃은 후에 예(禮)가 나타난다.”

도(道)-덕(德)-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이것은 인류 사회의 서로 다른 단계다.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던 고상한 도덕(道德)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차 신(神)의 뜻을 따르고 상계(上界)의 정신을 고수하던 것에서 미끄러져 내려가 예전만 못하게 된 사회 상황이 바로 인, 의, 예, 지, 신의 단계다.

신(神)이 인간 세상에 모범을 보이셨고 선세(先世)에 중화의 도덕을 지극히 세워놓으셨거늘, 지금 일찍이 신의 보살핌을 지극히 받았던 신주(神州) 대지를 바라보면 슬픔의 눈물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마지막 사회 형태이자 ‘신(信)’으로 세상의 근간을 삼아야 할 시대에, 최소한의 사회적 신용과 처세 및 사람이 되는 도리의 기본적 신의조차 공산 정권의 집행과 관상(官商 정경유착)들의 부국 추구라는 보편적 실천 속에서 이미 인위적으로 철저히 파괴되어 깡그리 사라지고 없다. 이미 인류의 최저선을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고 있으니 어디로 가겠는가. 이것이 정말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관리가 되고 싶어요.”

“어떤 관리가 되고 싶은데?”

“탐관오리요. 탐관오리는 가진 게 많으니까요.”

이는 기자가 광저우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장래 희망을 인터뷰했을 때, 6살 난 여학생이 대답한 내용이다.

2011년 10월 13일 저녁, 중국 광둥성 포산시에서 2살 여아 샤오웨웨(小悦悦)가 승합차에 치였다. 앞바퀴가 아이를 밟고 지나간 후, 운전자는 2초간 머뭇거리더니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 위를 한 번 더 밟고 지나갔다. 뒷바퀴가 아이를 넘을 때 아이의 하반신이 눈에 띄게 들렸다가 떨어졌으나 가해자는 주저 없이 속도를 내어 달아났다. 나중에 가해 운전자는 왜 다시 밟고 지나갔느냐는 질문에 “죽으면 1~2만 위안만 배상하면 되지만, 살려두면 수십만 위안으로도 부족하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의로 밟은 것이다! 이어지는 녹화 영상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는 아이 곁을 완전히 못 본 척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지나가는 행인 18명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들 중 누구 하나 구조할 의사를 보인 사람이 없었다.

한 민족이 도덕을 상실하면 후대(後代)를 잃고 앞날과 미래를 잃으며, 사람이 사람이어야 할 이유를 잃게 된다. 나아가 하늘이 그들을 계속 사람이 되도록 보호해 줄 합법성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도덕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누구도 공기의 금전적 가치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소가 심각하게 부족하여 질식할 것 같은 환경에서 공기는 곧 생명이며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가 된다.

오늘날의 세계는 이미 중국을 떠나 살 수 없다. 세계를 파악하려면 중국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서구 전통의 자본주의는 도덕과 신의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나, 20여 년간 이어진 중공 특색의 ‘개혁 발전’은 오히려 도덕과 신의를 부패시키는 과정이었다. 경제로 도덕을 부식시키고, 다시 무신론으로 신앙을 타격해 5천 년간 이어진 진·선·인(眞·善·忍)의 도덕 표준을 전복했으며, 경제 발전을 구실로 인권 박해를 은폐하고 도덕의 타락을 가속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글로벌 경제 이익을 통해 보편적 가치를 온포권(溫飽權, 먹고 사는 권리)으로 대체함으로써 도덕의 부패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경제에서 경제만 이야기하고 정치에서 정치만 이야기할 뿐 사람들은 도덕을 논하려 하지 않는다. 왜인가? 모든 사회 활동에는 사회적 초석으로서 기본 도덕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도덕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어야만 사회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공기와 같아서 굳이 논할 필요는 없으나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서 경제를 논하는 이면의 도덕적 기초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은 희귀한 공기가 되어버렸다.

중국의 경제는 피와 자본을 아끼지 않는 역사의 ‘발전’을 겪었으며 동시에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사람들, 심지어 중공조차 이러한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국내외 학자들은 앞다투어 중국의 맥을 짚으며 길을 제시하고, 민생 문제부터 정치 개혁에 이르기까지 온갖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중공이 이러한 방안을 채택할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설령 시행한다 해도 실질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방안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도덕 근기와 사회의 정상적인 구조가 부패한 도덕에 의해 좀먹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행 과정에서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며 뒤로는 어기게 되며, 본질이 왜곡되고 변형되어 귤이 탱자로 변하고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는 격이 된다. 이른바 해독제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곤경을 만들고, 결국 손을 쓸 수 없는 종국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중국을 제대로 읽으려면 중국의 도덕 현황을 이해해야 한다.

장장 5천 년 역사가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역사라는 큰 연극이 정말로 막을 내릴 때가 된 것인가? “의리가 이익을 이기는 자가 다스리는 세상이 치세(治世)요, 이익이 의리를 이기는 자가 다스리는 세상이 난세(亂世)이다.” 시공의 무대 위에 난세의 추물(丑角) 하나가 뛰어올라 그의 비열한 성품으로 저지른 나쁜 짓과 어리석은 짓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는 방식으로 중공이 결국 스스로를 매장하게 하고 있으며, 사회에 현대의 외투를 입은 노예 제도를 세워 공범 의식으로 관료들을 도덕이 상실된 부패 속에 단단히 묶어놓았다. 또한 사람들 마음속에서 전통문화의 뿌리를 끊어버려, 전체 민족이 조상 대대로 이어온 중화 전통문화를 멋대로 욕하게 만들었다. 최후의 긴박한 순간에 전 인류를 속여 심연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인류가 도덕적으로 부활할 희망마저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

지금 시기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열전(熱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냉전(冷戰)으로, 이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추물에 의해 ‘탐전(貪戰 탐욕전쟁)’으로 끌려 들어갔다. 즉, 경제의 세계화 속에서 도덕 없는 약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좋은 삶을 지향하고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것 자체는 나무랄 수 없으나, 왜 사탄과 짝이 되어 무도(無道)하게 취하려 하는가. 총칼과 유혈이 없는 가운데 공멸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최저선을 돌파하며 자기 도덕의 붕괴 속으로 가라앉으려 있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총명함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단지 마법의 병을 열어 갇혀 있던 악마를 풀어주었을 뿐이다. 인성의 가장 낮은 곳인 ‘탐욕’을 향해 현실적이고 매혹적인 유혹을 공공연히 내던졌으며, 마치 맹독을 지닌 독사처럼 인성의 가장 나쁜 부분인 극단적 이기심 속을 거침없이 헤집고 다니며 음행을 저지르고 있을 뿐이다.

신(神)이 직접 손을 쓰실 필요가 있겠는가? 사람은 이미 스스로 훼멸하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12/5/13/n358775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