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쓰
【정견뉴스】

2026년 8월,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파룬궁 수련자 위유가 타이라이 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났다. (명혜망)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파룬궁 수련자 위유(于有)가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타이라이감옥에 갇혀 있다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26년 8월 21일, 가족들이 그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그는 이미 의식이 불분명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가족들은 그를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하려 했으나,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했다. 결국 위유는 출옥한 지 단 7일 만인 8월 28일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출옥 한 달 전만 해도 그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으나, 출옥 당시 갑자기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사이 그의 건강이 왜 이토록 악화되었는지에 대해 가족들은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건강 회복에서 불법 6년형 선고까지
위유는 본래 치타이허시 베이싱 농장 직원이었다. 젊은 시절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통받던 그는 1996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건강을 회복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현지 정부는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그해 5월 30일 오후, 위유는 집에 들이닥친 경찰 5명에게 납치되어 구치소에 갇혔다. 그는 35일 동안 뒷수갑이 채워지고 무게 약 30kg에 달하는 족쇄를 차야 했다.
하루는 교도관 자오잉광과 정치위원 장춘화가 위유를 심문하러 찾아왔다. 자오잉광은 갑자기 권총을 꺼내 위유의 왼쪽 관자놀이에 겨누며 “내가 총으로 너를 쏘아 죽인 뒤, 네가 내 총을 빼앗으려 했다고 조작하면 그만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며 위협했다.
위유가 이곳에 들어온 이상 살아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자오잉광은 그의 머리에 플라스틱 통을 씌운 뒤 철봉으로 밤새도록 그 통을 내리쳤다. 이후 위유는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2009년 1월 자무쓰 감옥에 수감되었다.
2009년 6월 어느 날 오후, 감옥 제1감구 중대장 쑤자펑 등이 위유에게 파룬궁을 비방할 것을 강요했으나 위유가 이를 거부하자, 린진펑 등 여러 수감자에게 지시해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위유는 척추를 다치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린진펑은 가죽띠로 그의 얼굴을 후려쳐 2cm가 넘는 상처를 입혔고, 피가 솟구쳤다.
다시 납치되어 가정에 충격
위유는 6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2015년 9월 29일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가전제품 수리업을 다시 시작했다. 2016년 어머니의 자금 지원으로 자그마한 가게를 열었으나, 같은 해 5월 또 다시 납치되었다. 그의 수리점은 봉쇄되었고 모든 가전제품과 부품에는 압류 딱지가 붙은 채 차로 실려 갔다. 그의 자택과 부모님 집 역시 수색을 당했다.
당시 위유의 아버지는 뇌경색을 앓고 있어 거동과 언어에 불편을 겪고 있었다. 위유가 또 다시 납치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자 심한 충격을 받았다.
구치소에 40여 일간 갇혀 있던 위유는 어지럼증, 호흡곤란, 양다리 무력감 등의 증상을 보이며 혈압이 220~230까지 치솟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책임을 질까 두려워진 구치소 측은 그를 집으로 보냈다.
그의 아내는 이혼을 선택하고 고향을 떠났다. 건강이 다소 회복되자 위유는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현지 공안에 의해 불법 지명수배가 내려지면서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경찰은 수시로 부모 집을 찾아와 그의 행방을 추궁했다. 가족들은 집 근처에 낯선 사람들과 수상한 차량들이 자주 기웃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지속적인 정신적 압박 속에서 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결국 2017년 7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출옥 전후 현격히 달랐던 건강 상태
오랜 도피 생활 끝에 위유는 지시시에 정착했다. 그러나 2023년 8월 23일, 지시의 거처에서 경찰에 다시 납치되어 치타이허시 구치소에 갇혔다. 이후 그는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타이라이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번 형석 선고의 구체적인 경위와 감옥에서의 3년간 행적에 대해서는 현재 외부에 알려진 바가 제한적이다.
2026년 7월 21일, 그의 남동생이 타이라이감옥을 찾아가 그를 면회했다. 남동생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위유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고 정신도 또렷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8월 21일, 감옥 측은 갑자기 주민센터에 연락해 그를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가족들이 감옥으로 달려가자 감옥 측은 위유가 뇌출혈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주민센터 측은 가족들에게 보증서에 서명하게 한 후에야 그를 집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했다.
가족들은 위유를 병원으로 옮겨 치료하려 했으나, 병원 측은 그에게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했다. 결국 위유는 향년 64세를 일기로 8월 28일 숨을 거두었다.
이후 가족들은 위유의 완전한 의무기록이나 진단서, 사망 원인 관련 증명서 등을 받지 못했다.
행방불명된 영치금 4,000위안… 풀리지 않은 의혹들
2026년 7월 21일, 위유의 남동생이 면회를 갔을 때 영치금을 좀 넣어주겠다고 제안하자 위유는 “필요 없다, 한 달 뒤면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남동생은 그를 위해 4,000위안(한화 약 77만 원)을 입금했다.
위유가 사망한 후 가족들은 감옥을 찾아가 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감옥 측은 그런 돈을 본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후 가족들이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끝내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위유처럼 출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사례는 이전에도 명혜망(明慧網)을 통해 수없이 보도된 바 있다. 랴오닝성 진저우시의 74세 파룬궁 수련자 먼위린(門玉林)은 7년형을 선고받고 선양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정신 상태가 심하게 악화되어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2025년 10월 17일 출옥해 집으로 돌아온 지 단 4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산둥성 치샤시의 63세 파룬궁 수련자 린젠핑(林建平)은 2024년 10월 중순 산둥성 여자감옥에 수감되었다. 2025년 1월 30일 가족들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 직후 옌타이 위황딩병원으로 응급 이송했으나, 집에 돌아온 지 14일 만인 2월 13일 새벽 사망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녀 역시 옥중에서 의식 불명 상태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위유, 먼위린, 린젠핑은 각각 출옥 7일, 4일, 1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세 사람의 비극적인 사망은 또 하나의 의문을 던진다. 이들이 복역 기간 중 과연 어떤 가혹한 일을 겪었기에, 형기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지 불과 며칠 만에 잇따라 숨을 거둔 것인가?
(사례 출처: 명혜망)
에포크타임스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