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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실화: 독한 맹세를 하여 부자가 보응을 받다

글/ 심하(心荷)

【정견망】

독한 맹세를 발했다가 보응을 받은 실화를 말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은 우리 고향에서 일어났다.

나의 고향집은 사천성 낭중(閬中)시 강남(江南)진 백불장왕가산(百佛場王家山)에 있다. 당시 왕가는 현지에서 큰 부자였다. 산에 몇 채의 큰 사합원(四合院)이 있었고 서북쪽 마당에 한 가족이 살았다. 주인의 이름은 왕대창(王大昌)으로 부친과 동년배였다. 그는 집에서 셋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삼노자(三老子)’라 불렀다.

또 다른 집의 주인은 왕점칠(王占七)인데 왕대창보다 항렬이 하나 위였다.

1934년 막 설을 지낸 후 삼노자가 시장에 가서 작은 돼지 한 마리를 사왔다. 그런데 돼지우리를 잘 닫지 않아 도망을 쳤다. 그러다 왕점칠의 집에서 발견되고 어떤 사람이 돼지를 잡아간 것이다. 삼노자가 왕점칠에게 돼지를 찾으러 갔을 때 왕점칠은 네 말을 믿을 수 없다며 극구 부인했다. 그리고는 내가 네 앞에서 맹세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독한 맹세를 했다.

그 당시 이 지역에서는 어떤 다툼이 생겼을 때 해결하기 어려우면 백성들이 흔히 쓴 방법이 바로 사당에 가서 맹세하는 것이었다.

왕가산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노토지(老土地)라 불리는 시장이 있었다. 그곳에 토지묘(土地廟)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장이 크진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꽤 유명했다. 사당 옆에는 연극을 할 수 있는 건물이 있었고 그 앞에는 넓은 평지가 있어서 설이 되면 백성들이 이곳에서 연극을 공연했다. 원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떠들썩하게 구경하곤 했다. 어렸을 때 나도 어른들을 따라 그곳에 가서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삼노자와 왕점칠은 토지묘에 오자 토지신 앞에서 삼노자가 말했다.

“만약 제가 당신을 속였다면 제 온몸에 부스럼이 나게 해주세요!”

왕점칠이 말했다.

“제가 만약 돼지를 잡았다면 아들이 먼저 죽고 다음에 제가 죽을 겁니다!”

왕점칠의 아들은 이름이 왕해전(王海全)인데 공부를 잘해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책 한 짐을 읽은 이”라고 했다.

당시 18,9세였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해 3월 왕해전이 죽었고 5월에는 왕점칠도 죽었다. 그러나 삼노자의 몸에는 종기가 나지 않았다. 왕가산 사람들은 모두들 이것이 맹세의 보응이라고 말했다.

이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모두 보고 있으며, 신(神)의 눈은 속일 수 없고 보응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으며 독한 맹세는 영험함을 설명한다.

이 자리에서 나는 공산당의 사악한 조직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권고한다. 당신이 혈기(血旗)에 대고 독한 맹세를 한 것은 당신의 생명을 공산당에게 주었다는 뜻이다. 더는 사당(邪黨) 편에 서지 말고 빨리 사당의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해 자신의 생명에 대해 책임지기 바란다.

우주는 지금 법을 바로 잡고 있으니 우주 진선인(眞善忍) 대법(大法)에 동화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7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