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紫穹)
【정견망】
【원문】
벽곡(辟榖)은 곡식을 끊는 것으로 선가(仙家)에서는 기를 먹어 형체를 단련했고
멸함도 태어남도 없다고 보는 석씨(石氏)는 오직 마음을 밝혀 본성을 보았다.
양나라 고승이 불경을 논하다 묘한 상태에 들어가자 바위가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 꽃이 떨어져 내려왔으며
장허정이 단을 연마해 완성하자 용과 범을 항복시켰고 닭과 개도 함께 승천할 수 있었다.
辟穀絕粒,仙家能服氣煉形;
不滅不生,釋氏惟明心見性。
梁高僧談經入妙,可使岩石點頭,天花飛墜;
張虛靖煉丹既成,能令龍虎降伏,雞犬俱升。
【주석】
(1) 벽곡(辟穀):단곡(斷穀) 또는 절곡(絕穀)이라고도 하는데 글자 끝대로 오곡을 먹지 않는 것이다. 중국 고대에 깊은 산 속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채용한 일종의 수련방법이다. 사실상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상태다. 함부로 속인 중에 보급할 수 없다.
(2) 불멸불생(不滅不生): 또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인간세상의 일체가 다 환상이라고 한다. 기왕에 진실한 존재가 아니니 소위 말하는 생(生)과 멸(滅)이 없다. 다시 말해 불가에서 삼계(三界) 층차를 수련해 돌파한 후 더는 육도윤회에 들어가지 않으며 더는 환생의 고생을 겪지 않고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
(3) 완석점두(頑石點頭): 전설에 따르면 남조 양(梁)나라의 고승 도생(道生)이 소주(蘇州)에서 불법을 강론할 때 《열반경》에서 만물은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자 돌이 고개를 끄떡였다고 한다.
(4) 천화추지(天花墜地):전설에 따르면 양무제 때 운광(雲光)법사가 천룡사(天龍寺)에서 경전을 강연할 때 하늘이 감동해서 보화(寶花)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5) 장허정(張虛靖): 동한 장천사(張天師)로 불리던 장도릉(張道陵)의 7세손(世孫)으로 《열선전》에 기재되어 있다. 명산을 두루 다니며 불로의 술을 배웠다. 용과 범을 항복시키고 단을 연마해 하늘로 올라간 후 닭과 개가 남은 단약을 먹고 역시 승천했다고 한다.
(6) 용호항복(龍虎降伏):도가에서는 용과 호랑이로 심화(心火)와 신수(腎水)를 비유한다. 분노와 정욕을 억제해 심화가 내려가면 신수가 자윤(滋潤)한다.
【평가】
“덕불배위(德不配位)”에 담긴 수련의 천기(天機)
도가수련이 역대로 사람들에게 남겨준 인상은 바로 장생술(長生術)을 중시하고 연단(煉丹)이나 벽곡 등의 신비한 비술(秘術)로 신체를 개변시켜 장생불로할 수 있으며 수명(修命 명을 닦는 것)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즉 외재적인 형태를 연마하는 방법을 중시한다고 보았다. 동시에 또 마음을 닦고 덕을 중시하는 것을 강조했다.
도가의 가장 저명한 수도경서(修道經書)는 바로 노자의 《도덕경》이다. 도(道)를 얻으려면 반드시 덕(德)을 중시해야 한다고 한마디 말로 명확히 밝혔다. 각 문파에서 외형을 중시하는 각종 다양한 도술을 강조하고 또 그것이 아주 허황되게 보일지라도 그 실질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닦는 법과 떼어놓을 수 없다. 다만 도가에서는 널리 중생을 구도할 것을 주장하지 않고 진짜 전수는 하나뿐이라 심성과 덕행이 아주 좋은 도제를 골라 명을 닦는 법을 전할 뿐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 해서 많은 번거로운 일들을 줄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도가에서는 스승을 모시기가 아주 어렵다. 일반적인 근기(根基)나 도행(道行)이 높지 않은 사람은 도제로 거두지 않는다. 도술과 신통을 일반적인 덕행의 사람에게 함부로 전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도가에서 덕을 중시한 체현이다. 덕을 중시함이 수도(修道)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아주 많은 득도한 도사들이 모두 온역(瘟疫)이 크게 유행하던 기간에 도술로 사람을 구하며 사람들에게 선을 따르라고 권했다.
사실 이 속에 한 가지 천기가 체현되는데 속인은 흔히 ‘덕불배위(德不配位)’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속인의 경지에서 인품이 좋지 않으면 고관이 될 수 없다거나 또는 국왕이나 황제가 될 수 없다는 함의만은 아니다. 중국문화는 한자(漢字)를 포함해, 모두 신(神)이 전한 것이라 내함이 아주 깊다. 보다 높은 층차에서 이해하자면 덕(德)의 경계가 신체(身體)의 층차와 위치를 결정한다.
당신의 덕성(德性)이 신(神)의 경계에 접근하거나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질 때면 당신은 자연히 적당한 신(神)의 신체를 배치 받는다. 다시 말해 신(神)의 세계로 배치된다. 그러면 사부가 비로소 당신에게 당신 신체를 신(神)으로 전변시킬 법술(法術)과 도술(道術)을 전할 것이다. 끊임없이 마음을 닦고 끊임없이 심성경계를 승화하면 신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법술(法術)이 작용을 일으켜 신체(神體 신의 몸)를 연마해내, 자신이 소재한 층차와 위치로 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멋대로 일반인에게 준다면 사부 역시 하늘의 징벌을 받아 떨어져 내려갈 것이다. 그 누구도 천법(天法)을 함부로 어지럽힐 수 없다. 다시 말해 초상적인 신체와 능력을 지니려면 그럼 초상적인 덕행을 지녀야 하는데 덕행이 높을수록 능력도 따라서 더욱 커진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관음보살은 집집마다 다 아는데 역조역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법상(法相)과 고난에 처한 이들을 구도한 신적을 직접 목격했는가? 이는 또한 불가에서 일종 신(神)의 표현인데 보살은 곧 이렇게 큰 법력(法力)을 지닌다. 천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부동한 층차 경계의 불도신(佛道神)이 있겠는가. 한 신(神)이면 지구를 훼멸하기에 족하다.
고급생명이 만약 도덕과 심성경계가 높지 못해 상응하는 층차 우주법칙의 단속이 없다면, 어찌 천상에서 일찌감치 초상적인 능력을 훼멸당하지 않았겠는가. 우주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종교에서 말하는 삼계에는 또 층차가 있는데 하물며 삼계 밖의 신의 세계는 어떻겠는가?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선하지 않고 덕이 높지 않기에 그에게 신체(神體)를 줄 수 없으며 갈 수 없다. 단지 부동한 천국, 부동한 신계(神界)는 구성요소가 다르고 사람을 제도하는 방법이 다르고 요구가 달라서 신체를 얻는 방법과 얻는 형상 역시 다를 뿐이다.
그런데 불가(佛家)는 사람들에게 도가와 정반대되는 느낌을 준다. 수행(修行)을 대단히 중시하고 신통술류(神通術類)의 것은 중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 반대로 수선(修善)을 강조하고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행하라고 하면서 출가인은 자비심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선을 닦는 과정 중에 경계가 제고됨에 따라 신체에도 변화가 발생해 특이공능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득도한 고승의 육신이 썩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거나 달마가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너는 신적(神跡)이 나타날 수 있었다. 즉, 불도 양가(兩家)가 겉으로 보기에는 중점이 다르고 방법도 달라 보이지만 사실상 덕을 중시하고 마음을 닦는 것은 그 어떤 정법(正法)수련에 대해 말할지라도 모두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단지 구체적인 요구가 다르고 치중하는 점이 다르고 닦아낸 것이 다를 뿐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한 것은 단지 파룬따파 주요 저작인 《전법륜》을 읽은 후 개인의 층차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에 불과하다.
벽곡은 신비하지 않다
벽곡의 비밀을 풀어 여러분들에게 벽곡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전법륜》 제8강에서 두 단락을 인용해본다.
“어떤 사람은 벽곡(辟穀) 문제를 말한다. 벽곡, 이런 현상은 존재하는 것이며, 수련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온 인류사회에서 적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정황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이나 십몇 년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지만 오히려 생활하는 것이 아주 좋다. 어떤 사람은 벽곡을 어느 한 층차 중의 체현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벽곡을 신체를 정화(淨化)하는 행위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고층차 중의 수련과정이라고 한다.”
“사실 모두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찌된 일인가? 벽곡은 실제상 바로 우리가 특정한 환경에서 채용하는 특수한 수련방법이다. 어떤 특정한 환경에서 그것을 채용하는가? 중국 고대, 특히 종교가 아직 건립되기 전에 수련하는 많은 사람이 모두 일종의 비밀수련(密修)ㆍ단독수련(獨修), 이런 방식을 채용하여 심산 속에 들어가거나 동굴에 들어가 수련하면서 사람들을 멀리했다. 일단 이렇게 하면, 그럼 곧 음식물 공급 문제와 연관된다. 만약 그가 벽곡이라는 방법을 채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수련할 수 없으며, 바로 그 안에서 굶어 죽거나 목말라 죽게 된다. 내가 충칭(重慶)에서 우한(武漢)으로 설법하러 갈 때, 배를 타고 양쯔강(長江)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서, 산샤(三峽) 양쪽 산중턱에 동굴들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많은 명산에는 다 이런 것이 있다. 과거에 수련하는 사람은 밧줄을 타고 들어간 후, 밧줄을 끊어버리고 동굴 속에서 수련했는데, 수련해 내지 못하면 그 안에서 죽어야 했다. 물도 없고 음식도 없는, 바로 이처럼 극히 특수한 환경하에서 그가 채용한 특수한 수련방법이었다.”
책에서는 벽곡의 진기(真機)를 철저하게 말했는데 이 문제에 흥미가 있는 독자는 직접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책에서 내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벽곡은 속인사회에 보급할 수 없는 것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면 속인이 아니며 생명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간의 상태와 인간이란 이 층의 법리를 파괴할 수 있기에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어찌 벽곡뿐이겠는가, 자고로 수련의 진기는 모두 이 책속에 들어 있다.
【일화: 도를 닦지 않고도 신선이 된 이각】
이각(李玨)은 광릉군(廣陵郡) 강양(江陽) 사람이다. 대대로 성내에 거주하며 쌀장사를 했다. 이각은 성품이 단아하고 신중해서 일반 사람과 달랐다.
15살 때 부친이 먼 곳에 갈 일이 생겨 이각에게 쌀장사를 맡겼다. 이각은 쌀을 사거나 팔려는 손님이 되를 주어 스스로 양을 재도록 했다. 또 쌀값이 비싸든 싸든 관계없이 한 되에 단돈 2문의 이윤만 남겨 부모를 공양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오래 지났는데 가족들의 의식(衣食)이 풍족해졌다. 부친이 이상하게 생각해 이유를 묻자 그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부친이 말했다.
“내가 장사할 때는 다른 동업자들은 모두 살 때는 큰 되로 달고 팔 때는 작은 되로 주어 많은 이익을 취했다. 비록 관아에서 매년 봄가을 검사를 나와 되나 말이 정확한지 조사해도 병폐를 없애지 못하였다. 나는 단지 같은 되나 말로 양곡을 출납시켜 오랫동안 무슨 편취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너는 지금 손님이 스스로 재게 하니 내가 너에게 미치지 못하겠구나. 그런데 손님이 스스로 재어도 살림이 풍족해졌으니 이는 신명(神明)이 도와주신 게 아니겠느냐?”
나중에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이각은 80대가 되도록 이렇게 했으며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
마침 조정에서 재상 이각(李玨)이 경성을 나와 회남(淮南) 절도사로 부임했다. 이각은 새로 부임한 절도사의 이름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서 스스로 이관(李寬)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각은 부임 후 몇 개월 지나 도를 닦고 돈을 희사하는 등 적지 않은 선행을 했다. 어느 날 밤 꿈에 어느 동부(洞府)에 들어갔는데 경치가 마침 봄날처럼 꽃이 만발하고 난새와 학이 군무를 추며 오색구름이 상서로웠고 누각이 연이어 있었다.
이각은 혼자 누각 아래를 거닐다 어느 바위가 옥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 황금 글씨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보았는데 그중 이각(李玨)이란 이름이 있었다. 글자 크기가 두 척이 넘었다.
이각은 매우 기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태평성대에 태어나 오랫동안 높은 관직을 지내면서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어찌 세상이 공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제 동부에 내 이름이 있으니 나는 반드시 신선이 될 것이다.’
그가 한창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두 선동(仙童)이 석벽 좌우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이각이 물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선동이 대답했다.
“화양동천(華陽洞天)입니다. 하지만 저 이름은 상공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이각이 놀라서 물었다.
“제가 아니라면 누구입니까?”
선동이 대답했다.
“여기에 적힌 분은 강양 사람입니다.”
이각은 날이 밝자 꿈속의 일이 눈에 역력하여 경탄해 마지않았다. 이에 도사들에게 “이각”이란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그들도 알지 못했다. 또 강양현 관리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역시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성내에 자신과 같은 이름의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게 했다.
여러 날 군영과 거리를 찾다가 비로소 ‘이관’이 전에 ‘이각’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내 이각에게 보고했다. 이각이 사람을 보내 이관을 맞이했는데 정갈한 방에 모시고 목욕재재하고 그를 만났다. 또 그를 ‘도형(道兄)’이라 불렀다. 이각의 온 가족아 그를 공경하였으며 아침 저녁으로 예를 다했다.
이관은 성품이 담백하고 도인의 풍모가 출중했다. 수염은 한자가 넘었고 하얀 것이 보기 좋았다. 그가 육십 세가 되었을 때 한 도사가 그에게 태식술(胎息術 역주: 도가의 일종 호흡법)을 가르쳐 주어 오랫동안 양식을 먹지 않았다. 이각은 더욱 그를 존경했다.
한 달 정도 지난 후 이각이 물었다.
“도형께선 어떤 도술을 얻었습니까? 무슨 약을 먹습니까? 제가 일찍이 꿈을 꾸었는데 동부에 들어가 바위 위에 새겨진 도형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선동이 말해주어 제가 청해 스승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게 도술을 전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관은 자기는 무슨 도술이나 연단하고 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사양했다. 이각은 더욱 경건히 참배했다. 이어서 또 무슨 도술을 익혔느냐고 물었고 이관은 자기는 우매한 사람이며 무엇도 수련한 적이 없다고 하며 자기가 쌀을 팔았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각이 거듭 자세히 묻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이는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것이니 제 음덕(陰德)이 미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이제야 인간 세상의 행동거지와 모든 일에 보응이 있음을 알겠구나! 진실로 덕만 쌓는다면 비록 가난하고 천한 신분일지라도 신명(神明)이 그를 보우해 선적(仙籍)에 이름이 올라 속세에 경종을 울리는구나.”
그는 또 이관에게 태식을 하며 밥을 먹지 않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이관이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각도 이관에게 태식을 배워 역시 밥을 먹지 않았다.
이관은 백 살이 넘었는데도 몸이 아주 가볍고 건강했다. 문득 자손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 오래 살아 비록 진기(真機)를 수양했지만 너희들에게는 좋은 점이 전혀 없구나.”
그리고는 어느 날 저녁에 죽었다. 사흘 후 그의 관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가보니 그의 옷고름은 풀리지 않았지만 매미가 허물을 벗은 듯이 이미 육체를 이탈해 보이지 않았다.
“세인들은 신선이 좋다고 부러워하지만 다만 공명(功名)을 잊지 못할 뿐”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 신(神 신선)이 되고 싶다면 과감히 공명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하지 못한다. 누가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의 심성경계(心性境界)가 이미 신(神)의 층차에 있는 것으로 그럼 곧 신이 될 수 있다.
쌀을 팔면서 사람을 속이지 않은 이각은 이미 사람의 심성을 뛰어넘었다. 정말로 공명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도를 닦지 않아도 이미 도(道)속에 있고 도술을 연마하지 않아도 오히려 신이 책임지는데, 그의 덕행에 근거해 암암리에 신체를 연화시켜 사후에 자연히 신(神)의 몸을 얻어 선계(仙界)로 날아오를 것이다. 이 이야기는 덕을 중시하고 마음을 닦는 것만이 수련의 근본임을 증명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