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국촌로
【정견망】
석양빛이 비스듬히 비칠 때 대상국사(大相国寺)의 승려들이 종루에 올라 신시(申时, 오후 3~5시) 끝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변하(汴河) 양안의 각 시장과 좌판들이 하나둘 거두어지자 행인들도 추워지는 밤을 피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상당공(上黨公) 장개(張開)의 저택은 길가 골목에 자리 잡은 다소 넓은 민가였다. 이 저택은 동쪽으로는 교시항(橋市巷), 서쪽으로는 수의(守義) 곡물가게, 북쪽으로는 상국사, 남쪽으로는 변하대가에 접해 있었고, 좌우로는 번화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뒷마당에는 여섯 쌍의 말뚝이 박혀 있었는데, 방금 도착한 여덟 대의 수레가 쌀과 밀가루로 가득 차 빈틈없이 주차되어 있었다. 정문 앞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하마석(下馬石) 두 쌍이 있었는데, 한쪽에는 ‘조자룡 장판파에서 단기로 주군을 호위하다’가, 다른 한쪽에는 ‘황한승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베다’라는 그림이 살아있는듯이 세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정문 위에는 단향목으로 만든 현판에 공작석과 석영 가루를 송진과 섞어 만든 페인트로 ‘장부(張府)’라는 두 글자가 칠해져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앞마당 기둥에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 있었다.
이름은 재야에 알려졌으나 시세에 어둡지 않으니, 활을 당기고 말을 먹여 적을 평정하리.
시정 속에 몸을 숨겨 뽐내지 마라, 문을 닫고 은거하며 차를 달여 종소리로 마음을 살피네.
당시 장개는 혼자 몸으로 향민을 이끌고 토지를 지키며 도적을 막고 난을 평정하여 십여 년간 공을 쌓은 끝에 조정으로부터 ‘은청영록대부(銀青榮祿大夫)’에 봉해졌다. 소의군 절도사(昭義軍節度使)를 겸하며 산서와 하북을 경략하여 주와 현을 되찾았으니, 위세가 등등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곳에서 숨어 지내는 것인가? ‘현신은 늘 주군을 충성으로 섬기나, 명군 중에 의심하지 않는 자는 드물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 흥정(興定) 연간, 금 선종(金宣宗)은 구공(九公)을 봉했다. 도적을 평정하고 몽골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그중 항산공 무선(恒山公武仙)과 상당공 장개의 전공이 가장 뛰어났다. 장개는 민간 출신으로 민심을 잘 알고 백성을 돌보며 사방의 강호江湖 인사들과 교류가 깊었다.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산적들을 토벌하고 유민들을 안심시켜, 한때 대금국(大金國)의 발등의 불을 끄고 위기를 구제하였다. 하지만 이름이 나면 질투를 받는 법.
장개는 한인이었기에 조정의 의심을 샀고, 결국 노주(潞州)가 함락되자 장개와 부하들은 흩어지고 정적들은 기회를 틈타 그의 병권을 해제하고 남경으로 불렀다. 황제는 구신을 예우한다는 명목으로 이 저택을 하사했으나, 사실상 공작의 작위만 유지할 뿐 평민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었다.
때마침 장 대인은 관부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하인과 노복들은 손님들이 가져온 물건과 선물을 정리하느라 분주했고, 채소를 씻고 쌀을 일어 밥을 짓는 등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앞뜰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열댓 개 혹은 스무 개의 상을 차려도 충분히 앉을 수 있었다. 승려와 속인, 유생과 도사 등 각계각층의 손님들이 모여들었는데, 심지어 조정의 현직 관리들까지 평복을 입고 몰래 찾아오기도 했다. 묘시(오전 5~7시)부터 정오까지 손님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어떤 이는 구면이라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며 묵어가기도 했고, 어떤 이는 초면이라 일을 마친 뒤 가볍게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
안채의 객실과 곁방들도 먼 길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모두 비워두었다. 그들은 대부분 상당공(上党公) 장개(張開)의 초청을 받아 구호 물자로 쓸 곡식을 가지고 온 이들이었다. 장부의 집사는 술과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했다. 쌀과 밀가루로 만든 음식, 훈제 닭과 간장 고기, 과일과 채소, 간식까지 맛깔스럽게 차려져 있었고, 술과 차도 종류별로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장 대인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선배 영웅들과 후배 인재들, 그리고 강호의 친구들과 조정의 동료 여러분. 저는 어릴 적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난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험난한지 잘 압니다. 지난날 선황의 명을 받아 반란을 진압할 때, 사실 오주(五州) 이십삼 현의 백성들은 모두 우리 이웃이자 노인이요 아이들이었습니다. 귀순한 이든 산적이 된 이든, 그들이 바란 것은 오직 끼니를 잇는 것뿐이었지요.
나는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으나, 하늘이 만물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好生之德)을 알고 있기에 다툼을 멈추고 화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자리에 계신 호걸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위태롭고 백성들이 고난을 겪고 있으니 우리 어찌 앉아서 지켜만 보겠습니까? 다들 지난 정을 생각하여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급하게 차린 연회라 부족함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멀리서 오시느라 바쁘신 분들은 연회가 끝난 후 바로 가지 마시고 내실에서 차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작은 답례품도 준비했으니, 나중에 서신을 보내 다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장개는 잔에 든 고량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참석자들도 함께 잔을 들며
“장 공께서 겸손하십니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하며 화답했다. 이어 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병부상서 이계(李蹊)와 좌승상 완안새불(完顏賽不)은 상당공 장개와 같은 상에 앉아 있었다. 연회 중 이계가 일어나 장개에게 술을 권하고 공손히 절을 올린 뒤 말했다.
“장 공,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학생이 병부 동료들을 대신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공의 깊은 뜻은 반드시 성상께 아뢰겠습니다.”
장개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무슨 말씀을. 노부는 정대(正大) 연간부터 이곳에 한가히 머물렀고, 지금은 이 늙은 팔다리로 어디 갈 힘도 없네. 그저 붓 몇 번 휘두르고 하인들을 시켜 편지나 몇 통 보냈을 뿐, 무슨 고생이 있겠나? 성상의 황은이 망극하여 그리된 것인지, 아니면 노부에게 아직 이 정도의 체면이라도 남아 있어서인지, 강호의 친구들이 이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쌀과 밀가루를 보내주니 그저 하늘이 개봉(開封) 백성들을 돌보시는 게지. 자네 병부의 군량이야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먹어야 할 귀한 것인데, 내 이제 이도 다 빠지고 눈도 침침해서 한 끼에 떡 반 조각에 무장아찌 몇 점이면 족하네. 앞으로 우리 동네 이웃들, 소금이나 쌀이 모자라면 노인네 나한테 와서 가져가라고 하게.”
이계가 답했다.
“대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예전에 대인께서 밖에서 적을 막아내실 때, 병부에서도 군량을 부족하게 드린 적은 없지 않았습니까.”
장개는 기분이 좀 상한 듯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씹고 또 씹으며 이계의 말을 듣다가, 술 한 모금으로 입안의 것을 넘긴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말 창자(馬板腸) 요리가 질기기가 그지없구만. 노인네 이가 시원찮아서 이제 못 먹겠네. 오늘 아들 세준(世俊)이 놈이 특별히 부탁해서 변하(汴河) 옆 왕가주루의 요리사를 불러다 만든 것이라지. 온 남경 성 안에서 이 집만이 이 요리를 제대로 하고, 잡내도 없다고 하더군. 이 대인, 말 고기는 평소엔 먹기 힘든 것이니, 자네는 젊으니 많이 들게.”
“……” 이계가 뭔가 더 말하려 했으나, 좌승상 완안새불이 술잔을 든 채 눈치를 주며 헛기침을 두어 번 하여 말을 끊었다.
장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수건을 건네받아 입을 닦은 뒤 말을 이었다.
“예전 마무산(馬武山) 전투 때, 노부가 8부 14영의 형제들을 이끌고 고립된 채 원군도 없이 싸웠지. 적을 막아내는 동시에 백성과 가솔들도 지켜야 했네. 싸움이 길어지니 식량이 다 떨어졌더군. 인원수를 세어보니 꼬박 2만 석이 모자랐네. 나와 형제들은 꼬박 열흘을 굶주렸지. 조정에 거듭해서 일곱 번이나 장계를 올렸고, 굶주림 열흘째 되는 날엔 결국 내가 타던 대완마(大宛馬)를 직접 잡아야 했네…… 조정에서 답장은 없었지만, 결국 2천 석의 식량을 보내주더군. 나는 사람을 시켜 그중 절반 이상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것으로 형제들에게 잔치를 열어 배불리 먹였네. 하늘이 나를 버리진 않았는지,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사흘 밤낮을 돌파해 나갔지. 살아남은 형제들이 자기 말을 내게 양보해 준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겨 탈출할 수 있었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장개는 말을 잇다 잠시 목이 메어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선황께서도 내게 은혜를 베푸셨지. 일이 끝난 뒤에 들으니 항산공(恒山公) 무선(武仙)도 조정에 군량을 요청했으나 한 톨도 받지 못했다더군…… 이 대인, 내가 이 ‘공야(公爺)’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사실 허울뿐이오. 친구들이 높여준 것이고, 선황께서 은사를 베푸신 덕분이지. 늙은이가 평소에 찻집에 가서 차나 마시고 책이나 읽지, 이 늙은 몸으로 무얼 더 하겠나? 그런데 많은 이들이 쥔 권력과 뒤에 업은 세력은 실로 ‘하늘을 가릴 만큼’ 대단하지 않소. 지금 남경성에 황친국척들의 저택에 개인 창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하지만 내 이 저택은…… 우리가 앉아 있는 이 탁자와 의자까지 전부 현 임금님의 홍복이요. 황제께서 노부와 우리 집 식구 열여섯 명에게 잠시 빌려주신 것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 언젠가 다 가져가신다 해도 그것은 물건이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니, 노부가 어찌 ‘아니오’라고 할 수 있겠소? 이 대금국(大金國)의 강산은 결국 완안가의 것 아니겠소. 백성들이 배불리 먹으면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질 것이오. 만약 몽골군이 남경으로 쳐들어온다면 그들도 힘을 보탤 수 있겠지. 하지만 군량이 부족하다면, 지금 전선의 그 병사들을…… 당신들이 감당할 수 있겠소?”
장개는 말을 하면서 이따금 완안새불을 곁눈질했다. 완안새불은 아무 말 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헛웃음을 지으며 술을 들이켰다.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완안새불과 이계는 연회에 오기 전 한인의 직철(直裰) 차림에 무명 솜옷을 껴입고 있었기에, 그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장개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발언에 연회장은 한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들 상당공이 그 옛날 병권을 빼앗겼던 일에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황제 완안수서(完顔守緒)는 금 선종(宣宗)만큼 장개를 신임하지 않았다. 비록 상서성에서 한인 문관들을 대담하게 등용하고는 있었으나, 장개 같은 무장이 지방에 오래 머무는 것을 껄끄러워했다. 정대(正大) 연간에 장개가 노주(潞州)를 지켜내지 못하자 황제는 그 기회를 틈타 병권을 회수했고, 장개를 남경에 잡아둔 것 역시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외적이 압박해 올수록 조정은 유능한 외관들을 더더욱 믿지 못했다. 다행히 장개는 이제 늙었고, 교유하는 인맥은 넓어도 세력을 규합할 형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정은 매일 첩자를 보내 동태를 살폈으니, 장부의 담장 밖에는 숨어 있는 그림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가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신경 쓰지 않았고, 연회에 온 손님들도 다들 못 본 척 술과 음식을 즐길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장 공께서 중생을 가슴에 품고 베푸시는 의로우심은 반드시 자손대대로 큰 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노승이 개봉 백성을 대신해 정성 어린 채식 술 한 잔을 올리겠습니다.”
인자한 얼굴에 회색 장삼을 입은 이가 한 손으로 합장을 하며 상당공에게 예의를 갖췄다. 그는 바로 상국사(相國寺)의 율원 장로, 법명 ‘허원(虛圓)’으로 장부의 단골손님이었다. 최근 몽골 대군이 쳐들어와 경성이 위험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허원 장로는 직접 서신을 쓰고 제자들을 보내 각 주(州)의 사찰에서 군량을 빌리도록 했다. 인근의 백마사나 소림사는 물론, 이미 몽골군에 점령된 오대산 화엄사, 멀리 남쪽 송나라 땅의 보타산 관음사, 구강 능인사, 심지어 임안부의 정자사까지 허원 법사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법사의 간절한 호소와 종파를 초월한 구세제민의 뜻에 불교계는 크게 움직였고, 각지의 신도들 또한 앞다투어 주머니를 열어 정성을 보탰다.
장개는 소주잔을 들어 허원 법사에게 답례했다.
“법사께서 지나친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제 저택이 좁아 운반해 온 물건들을 다 둘 곳이 없습니다. 앞으로 보내주시는 물자는 귀 사(寺)의 창고를 좀 빌려 보관해도 되겠습니까? 나중에 재회(齋會)를 열 때, 저도 잊지 말고 불러주십시오. 함께 죽을 나누고 쌀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하하, 장 공께서는 베푸는 공덕을 쌓으면서도 이 늙은이를 놀리시는군요. 장 공 같은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제가 모아온 이 귀한 구호 물자들이 아마 도중에 다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허원 법사는 같은 상에 앉아 있던 키가 훤칠한 사내를 가리키며 장개에게 웃으며 말했다.
“대사님, 과찬이십니다. 장 공은 제 큰형님의 오랜 지기이시니, 웅모(雄某)가 당연히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호송과 운량은 본래 우리 같은 자들의 본분인 것을요. 거래 하나 줄어들더라도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니,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말을 하는 사내는 깃이 교차하는 검은 옷에 붉은 용무늬가 수놓아진 옷을 입고 있었고, 겉에는 회색 모피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수달피 모자를 쓰고 발에는 소가죽 장화를 신은 그는 술을 마셔 몸에 열이 오르자 모자를 벗었다. 목덜미에 드러난 반쯤 보이는 용 비늘 문신이 인상적이었다. 호랑이처럼 부릅뜬 눈과 굵은 목소리, 턱을 덮은 푸르스름한 수염에서 호방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이름은 ‘웅불이(雄不二)’, 강호에서는 ‘과강교룡(過江蛟龍)’이라 불렸다. 최근 전란으로 금나라의 조운(漕運, 뱃길을 통한 물자 수송) 통제력이 약해지자, 민간의 조운업이 다시 활기를 띠었고, 그중에서도 ‘오룡방(五龍幫)’이 단연 두각을 나타내었다. 웅불이의 명성은 그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 오룡방이 강남의 조운 체계에 정통하고 마침 상당공 장개와도 친분이 있었기에, 허원 법사가 이들을 찾아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이번에 웅불이는 형제와 함께 각기 한 무리의 식량을 호송해 입성하기로 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른 한 명은 아직 연회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때, 이계가 주탁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줏빛이 감도는 검은 도포를 입고 순양도관(純陽道冠)을 쓴 도사였다. 굵은 눈썹에 둥근 얼굴, 검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진 그의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발에는 짚신과 넝쿨 신을 신고, 허리에는 호리병을 찼으며, 빈손으로 앉아 있는 그의 표정은 늘 해맑고 순박해 보였다. 이계가 웃으며 물었다.
“……실례지만, 이 도장님은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 둥근 얼굴의 도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쾅! 당! 당!’ 하는 세 번의 굉음과 함께 장부의 정문이 거칠게 열렸다. 상당공은 집사 장발(張發)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 일렀는데, 문으로 달려갔던 장발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뱉으며 허둥지둥 돌아왔다.
“아이구, 이게 무슨 일입니까?! 큰일 났습니다, 어서들 오십시오!”
장발의 뒤를 이어 안뜰로 들어선 이들은 남자 둘, 여자 하나, 그리고 도사 한 명이었다. 새로 들어온 도사는 예의고 뭐고 차릴 겨를도 없이 당황한 기색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연회석에 앉아 있던 둥근 얼굴의 도사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그쪽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사형! 사형! 얼른 와요! 얼른, 이 사람 좀 살려줘요!”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들것에 싣고 온 것은 피범벅이 되어 반쯤 숨이 넘어간 사내였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들것에 실려 온 이를 확인한 웅불이(雄不二)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벌떡 일어선 그가 고함쳤다.
“아?! 대체 누가 내 양산(亮山) 형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냐!”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