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부덕(婦德)에 대한 약간의 토론
톈단단(田丹丹)
[정견망]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유가의 경전과 유가를 연구한 많은 문장을 읽었으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역주:제일 완전한 중국의 기전체 역사서)에서도 한번 찾아 보았다. 결과 나는 현대인들은 송조(宋朝) 이전의 중국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며 역사의 진실한 일면은 정말 오래전의 꿈처럼 매우 낯설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의 한 문제는 바로 무엇이 부녀자의 덕행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송대는 중국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과 같다. 송대 이전에 역사에 남겨진 열녀들은 대부분 수절(守節)했기 때문이 아니었고 모두 국가와 백성에게 공로가 있고 학문과 식견이 있으며 대의를 알고 부모와 남편에게 감정이 깊은 등 이유 때문이었다. 남편이 죽은 뒤 수절한 부녀자는 대부분 나라 혹은 가족의 원한 관계 때문이거나 욕망이 담담하거나 성격이 고집스러워서였다. 그러나 송대 이후의 열녀들은 대부분 주희(朱熹)가 극단적으로 “금욕”을 제창하면서 생긴 비극적인 산물이었다. 다시 말해서 송대 이전의 부녀자들은 무엇을 하든 모두 다른 사람의 선전과 호소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했으며 그녀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사관(史官 역주:역사책을 쓰는 사람)들이 일부 부녀자들의 특이한 행위을 기록에 남긴 것도 표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적으로 남편 때문에 수절한 부녀자에 대하여 사관들은 일반적으로 “이상하다”거나 “아쉽다”거나 “불쌍하다”는 표현을 썼다. 왜냐하면 개인의 협소한 정과 사랑 혹은 그 무슨 서약 때문에 적지 않은 부녀자들이 자해(自害)하는 극단적인 행위를 하면서 매우 이지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여성들은 이지적이지 못하고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표창할 가치가 없으며 그러한 행위는 부덕(婦德)과 어긋난다.
부녀자의 덕행은 “부드러움과 인(仁)이 본(本)이 되고, 정렬(貞烈)함과 의(義)가 자(資)가 된다”(<<北史.列傳 제79회 열녀>>) 다시 말해서 부녀자의 덕행은 사실 인(仁)과 의(義)에 있는 것이다. 협소한 개인의 정과 사랑은 인(仁)을 논할 수 없고 자해하는 것도 의(義)가 아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과격하고 극단적인 행위이며 유가의 중용과 거리가 멀다.
그러면 인(仁)과 의(義)에 부합되면 진정한 부덕(婦德)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지도 않다. 정렬은 도덕을 모르는 시기에 무더기로 나왔으며 인의(仁義)가 두드러지게 된 것은 도덕이 타락해서였다. 과거의 상생상극의 이치에 의하면 인의가 강조된 것은 불인(不仁)과 불의(不義)가 유행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의와 불인의는 동일한 층차의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모두 도덕을 중시하여 심령과 심념(心念)이 모두 더 높은 수준으로 제고된다면 더욱 높은 표준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방면의 것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과정의 큰 장애가 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고대를 말하기만 하면 모두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에 대한 대한 비뚤어지고 잘못된 인식으로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동수들은 대부분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고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데다가 우리도 그런 속인과 같았던 적이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이 있게 된 원인이다.
문장발표:2003년 7월 16일
문장분류:중국고대문화>도덕예의
원문위치: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7/16/22480.html
영문위치:http://www.pureinsight.org/pi/articles/2003/8/18/17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