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둥지완(董之萬)
【정견망 2006년 7월 21일】 많은 사람들은 언어문자를 단지 일종 교류의 수단으로만 여긴다. 서양의 알파벳 문자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치가 있다. 그러나 한자(한자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한국과 일본 문자를 포함)에 대해 말한다면 이런 설법은 옳지 않다. 그럼 한자란 도대체 어떤 문자인가?
1. 한자에는 깊은 문화도덕적 내포가 담겨 있다
선인들은 한자를 아주 존경했다. 과거에 어떤 지방에서는 글자를 적은 종이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했으며 “경자루(敬字樓)”에 모아 따로 처리해야만 했다. 만약 한자가 단순한 언어도구에 불과했다면 굳이 이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자는 황제의 사관인 창힐이 창조한 것이다. 창힐은 머리에 4개의 눈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인물로 신명(神明)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위로는 천상(天象)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과 짐승의 발자취를 관찰하여 문자를 발명했다. 한자의 출현은 인류역사상 거대한 사건으로심지어 하늘마저 진동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창힐(倉頡)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는 조(粟, 곡식의 일종)로 된 비가 내렸고 귀신들은 밤새 통곡했다.”는 전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당나라 때 장언원(張彥遠)은 이를 언급하면서 “조화는 그 비밀을 숨길 수 없게 되어 하늘에서 조가 비처럼 내린 것이요, 귀신들은 형상을 감출 수 없게 되어 밤에 운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이를 통해 보건대 한자를 학습한다는 것은 바로 천기(天機)를 깨닫고 정(正)과 사(邪)를 분명히 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중시한다. 가령 인체에는 오장(五臟)이 있어 오행(五行)에 대응하고 동서남북과 중앙이 있어 5개 방위에 대응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한자는 만사만물과 모두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다. 동한(東漢) 시기 허신(許愼)은 주역, 오행 계통으로 한자의 구조를 환원하여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는 540개의 부수로 9353개의 한자와 1163개의 이체자(異體字)를 수록해 분석하고 있는데 모두 합하면 1만 516자에 달한다.
“멸망할 멸(滅)”을 예로 들어보자. 원래 “滅”은 술(戌) 부에 있으며 이 자체가 멸망시킨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戌을 “9월은 양기가 미약해지고 만물이 이루어지는 시기인지라 양이 땅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해석했다. 즉 약화시키고 압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오행으로 말하면 수극화(水克火)인지라 戌아래에 火가 있고 왼쪽에 水가 있다. 이와 같이 滅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간체자 멸(灭)에는 이런 의미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아래 그림 참조)
한자는 만물(萬物)과 서로 대응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한자 속에는 천기가 숨어있다고 말한다. 또 초기의 한자는 점복(占卜)과 제사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중국 민간에는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점을 치는 사례들이 있는데 이 역시 초기 한자가 가지고 있던 점복 기능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한자의 구조 속에는 도덕과 문화적인 내포가 담겨있다. 한자를 배우면 사람의 수양에 아주 좋은 작용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도덕의 “덕(德)”이란 글자를 살펴보자. “德”은 “ㄔ”부수인데 이 글자는 원래 대퇴, 하퇴, 발 세부분을 그린 것으로 사람의 걸음걸이나 행위를 가리키며 유형적인 공간을 상징한다. 우측에 있는 “十目一心”은 무형의 공간을 상징하는데 많은 눈이 사람의 마음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 마음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속담에 “암실에서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도 신의 눈은 피할 수 없다(暗室虧心,神目如電).”라고 했다. 여기서 신의 눈이 가리키는 것은 곧 하늘이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를 종합하면 한 사람의 사상(心)과 행위(ㄔ)가 모두 하늘에 부끄럽지 않아야 비로소 덕(德)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 글자를 배우고 쓸 때도 무형 중에 교화되는 작용이 있다.
비록 “德”이라는 글자는 정체자(正體字)와 간체자(簡體字) 모두 동일한 모양이지만 그러나 간화된 글자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이미 한자의 문화적인 정수를 상실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문자를 간단한 부호의 대응으로만 여기며 글자 속에 있는 내포를 분석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한자 자체의 교화(敎化)작용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여기서 다시 “나아갈 진(進)”이란 글자를 살펴보자. 進의 우변은 추(隹)로 새를 가리킨다. 한 마리 새가 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즉, 進이란 새가 나는 것처럼 빨리 걸어간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진보(進步)란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또한 隹는 아름다울 가(佳)와 모양이 비슷한데 이 경우 갈수록 더 아름답고 아주 길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간체자를 보면 우변에 우물 정(井)이 있어서 한마디로 우물 속에 빠지거나 혹은 함정에 빠진다는 엉뚱한 의미가 된다. 원래 있던 낙관적인 내포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2. 간체자는 무엇을 생략하고 무엇을 더했는가?
우선 수많은 한자의 간이화로 인해 변한 것은 글자의 내포이다. 당(黨)이란 글자를 예로 들면 “尚+黑”이 되어 비밀리에 모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부정적인 내포가 들어있다. 그러나 중공이 만든 간체자는 “党”으로 여기에는 “儿(兒의 간자)”가 들어있다. 원래 전통한자에서 “兒”에는 어진 사람(仁人), 즉 좋은 사람이란 의미가 있어서 아주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간체자로 보더라도 儿에는 어린아이라는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인은 모두 중공이 한손으로 하늘을 가려도 순종하는 아이란 의미가 되는데 이것은 과거에 중공이 늘 주장해왔던 “당을 어머니에 비유한다”는 설과도 관련이 있다. 지금 중국대륙의 수많은 중국인들은 중공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그것을 위해 변호하기에 급급한데 이는 당문화에 오염된 결과이다. 여기에서 문자의 작용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사실 서양국가에서 당이라는 개념 역시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은 당을 만들 것을 주장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작은 집단의 집단이기주의를 초래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문제를 설명할 뿐이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모두 정치를 더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현대 서양의 정당은 개방되어 있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며 이 때문에 중국의 한자에서 묘사하는 당(黨)의 내포와는 그래도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영어로 당에 해당하는 단어는 Party이며 이는 오고감이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중공은 이와 달라서 사회와 인력자원을 농단하며 모두 그 당의 것으로 만들었고 누가 탈퇴하고자 하면 제거하거나 고치게 했다. 한마디로 공산당의 위대하고 정확하며 영광스러움을 표방하는데 이롭지 못한 것은 모두 없애버리는 대상이 된다.
한편 간체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고서(古書)를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문화적인 단층현상이 나타났다. 역사문헌 중에서 역사의 진상을 알 수 없고 중공이 편찬한 교재 중에서만 역사를 보는데 중공의 역사는 바로 역사를 전부 왜곡한 것이다. 중공은 중국 역사에 대한 해석권한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역사를 전부 왜곡시켰으며 자신의 통치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간체자도 일정한 추동작용을 일으켰다.
중국에서 역사란 단시 사건과 인물을 단순히 서술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며 일부 잘못이나 선과 악, 옳고 그름에 관한 교과서이기도 하다. 무엇을 군자라 하고 무엇을 소인이라 하는지, 충신이란 무엇이고 간신이란 무엇인지, 현명한 군주와 어리석은 군주 및 폭군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역사서에는 모두 기재되어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참조로 할 수 있으며 또 보통 역사를 귀감으로 삼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중공의 정치는 통제를 위한 것으로 만약 사람들이 역사를 귀감으로 삼을 수 있다면 중공 역시 악을 행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그 외에 고대에는 많은 예언이 있어서 현대인들과 현대에 발생할 일들에 대해 경고하는 작용을 해왔다. 그런데 중국 고대의 예언은 대개 한자를 해석하고 한자의 수수께끼를 푸는 방식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정체자가 아니면 분명히 해석하기 힘들다. 정체자라야만 예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예는 아주 많다.
가령 중문과 마찬가지로 정체를 사용하는 한국의 유명한 예언서인 《격암유록》에는 “八力十月二人尋”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일종 파자해에 해당하는데 이 글자들을 전부 합하면 바로 십승(十勝)이 된다. 불가에서는 우주를 시방세계로 보지만 도가에서는 주역에서 말한 구궁(九宮)에 일(一)을 더해 십승이라고 한다. 즉 이것은 수불(修佛)수도(修道)의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간체자 승(胜)으로는 이런 해석이 전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부터 모두 정체자를 사용해아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진정으로 정체자를 보급하려면 반드시 정체자 배후에 담긴 문화적인 내포를 환원시켜야 한다. 사실 대륙에서 간체자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중국전통문화만 파괴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에 대한 공산당 당문화의 통제를 강화하였다. 사실 한자를 간단하게 만든 과정은 바로 중국인의 사상을 간단하게 만든 과정이었다. 혹자는 중국인들은 지금 과거보다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수천 년 동안 누적되어 온 지혜의 정화는 도리어 간단히 없어져버렸다. 사람들의 사상이 점차적으로 전통문화에서 이탈하고 전통 가치관에서 이탈할 때 중공은 수월하게 당문화에 전통문화의 외투를 입혀 중국인들의 사상을 점유하고 중국사회의 가치관을 주도했으며 이를 통해 중공의 통치에 복무하게 만들었다.
발표시간 :2006년 7월 21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7/21/386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