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사오(史悟)
【정견망 2007년 1월 17일】
“큰 바람이 일자 구름이 날아오른다” 진(秦)나라의 폭정에 항거하던 각지 영웅 중 유방(劉邦)이 통솔한 대군은 항우(項羽)와 더불어 나란히 이름을 날린 중요한 세력이었다. 진나라가 망한 후 “초한(楚漢)의 전쟁”중 유방이 결국 강력한 항우의 군대를 이기고 한나라를 건립했다. 이리하여 “바다 안팎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위엄을 떨쳤다.”
승리를 거둔 후 가진 궁전 연회에서 유방은 일찍이 여러 장수들과 대신들에게 항우가 실패하여 천하를 잃고 자신이 성공하여 천하를 얻은 원인을 말해보라고 했다. 물론 대신들은 모두 유방에게 고명하다고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유방은 겸손하게 자신은 세 사람의 인걸에 의지했다고 말했다. 꾀를 내고 장막 안에서 작전 계획을 세워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하는 것에서는 장량(張良)만 못하고, 후방에서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을 위로하고 끊임없이 군량을 공급하는 데는 소하(蕭何)만 못하고, 대군을 이끌고 전투에서 승리하지 않은 적이 없는 방면에서는 한신만 못하다고 했다.
유방이 말한 것처럼 유방을 도와 한나라 왕조를 건립한 공신 중 한신은 확실히 큰 공을 세웠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은 “한조(漢朝)에 대한 한신의 공훈은 주(周)나라 때의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太公)과 비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신의 일생은 기이하고 굴곡이 많았다. 본문에서 한신의 일생을 간단히 소개해본다.
1. 젊어서 대인(大忍)하니 큰 뜻을 품다
한신은 한나라 때 회음(淮陰), 지금의 강소(江蘇 장쑤)성 청강(淸江 칭장)시 사람이다. 출신이 빈곤하여 모친이 세상을 떠났지만 장례 치를 땅이 없었고 가정은 빈곤하여 걸식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성 아래에서 낚시질을 하는데 강에서 빨래를 하던 한 아주머니가 한신이 굶주린 것을 보고 십여 일 동안 자기의 점심밥을 한신에게 나눠주었다. 한신은 감동하여 “내 반드시 크게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한신이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온 후 자신에게 음식을 나눠준 아주머니를 불러 천금을 내렸다.
한번은 푸줏간 집 청년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모욕하며 말했다. “네가 비록 키도 크고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심은 겁쟁이다.”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를 죽이고, 죽이는 것이 두렵다면 곧 내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가라.” 한신은 그를 자세히 살펴본 다음 곧 땅에서 포복하여 정말로 그의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갔다. 거리에서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한신더러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나중에 한신이 유방에의해 대장군(大將軍)으로 봉해진 후 군사들을 통솔하여 용감하게 생사를 돌보지 않고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절대로 겁쟁이가 아니며 단지 대인지심(大忍之心)으로 큰 중책을 맡고 국가의 동량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가 높은 직책에 봉해진 후 자신에게 “사타구니를 기어나가는 치욕” 안겨준 그 젊은이를 중위(中尉)로 승진시켰다. 중위란 성루를 순찰하면서 도적들을 잡는 소임이다. 동시에 수하 장수들에게 “이 사람은 장사(壯士)다. 그가 나를 모욕할 때 내가 그를 죽일 수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를 죽였다면 의미 없는 죽음이기에 이렇게 참았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곧 큰 포부를 품은 사람의 대인지심(大忍之心)이다. 반대로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곧” 칼을 뽑아 싸운다.”
2. 우여곡절을 거쳐 대장이 되다
진나라 말기 폭정에 반대하는 분위기 속에 한신은 처음에 항량(項梁)의 군대에 참가했고 나중에 항우를 따랐다. 하지만 여러 차례 계책과 건의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중용되지 못했다.
유방이 한왕(漢王)에 봉해져 촉(蜀)으로 돌아간 후 한신도 초나라를 버리고 한나라로 갔지만 역시 소외당했다. 빈객을 접대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다른 사람이 법을 위반한 죄에 연루되어 목을 잘리게 되었다. 이미 앞에 있던 13명의 목이 잘렸고 한신 차례가 왔다. 그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등공(滕公) 하후영(夏侯嬰)이 지나가다가 한신이 하는 말을 들었다. “한왕(漢王)은 천하의 패권을 잡으려 하지 않는가? 왜 장사(壯士)를 목 베는가!” 하후영이 그 말에 놀라 포승을 풀어주고 죽이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그를 유방에게 추천하여 양식을 관리하는 고급군관인 치속도위(治粟都尉)로 임명되었지만 여전히 중시 받지 못했다.
한신은 일찍이 여러 차례 승상인 소하(溯河)와 담화를 나눈 적이 있고 소하는 그를 몹시 중시하여 여러 차례 유방에게 추천했다. 촉 지방은 외진 곳이란 여러 장수들이 고향 생각이 나 수십 명이 도망쳤다. 한신은 소하가 몇 번이나 자기를 추천했지만 여전히 중용되지 못하자 역시 도망쳤다. 소하가 이 말을 듣고는 유방에게 보고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한신을 쫓아갔다. 어떤 사람이 유방에게 승상인 소하가 달아났다고 보고하자 유방이 크게 노했다. 마치 좌우 팔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며칠 후 소하가 유방을 알현하자 유방은 기쁘기도 하고 또 노엽기도 하여 “그대는 왜 나를 버리고 도망갔는가?”라고 말했다. 소하가 “신이 어찌 도망갈 리가 있겠습니까? 신은 단지 한 사람을 쫓아간 것입니다.” 유방은 “도대체 누구를 따라갔다는 말이오?” 소하는 “한신입니다.” 유방은 또 욕을 하면서 “도망간 장수가 수십 명인데 그들은 붙잡지 않고 왜 유독 한신만 쫓아갔단 말이오, 설마 거짓말로 나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오?”소하가 답하기를 “많은 장수들은 얻기 쉽지만 한신과 같은 인재는 이 나라에 둘도 없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한중왕(漢中王)이 되실 생각이라면 한신이 쓸모가 없겠지만 천하를 평정하시려면 한신 외에는 이 중임을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유방이 “나 역시 동쪽으로 원정에 나서 천하를 제패할 뜻이 있으니, 어찌 이런 궁벽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겠는가?” 소하는 “대왕께서 한신을 중용하시면 그가 남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도주할 것입니다.”
소하가 한신을 대장의 직위에 추천했다. 아울러 유방에게 길일을 택해 재계(齋戒)하고 광장에 단을 설치한 후 웅장하게 대장을 모시도록 건의했다. 유방이 허락하자 많은 장수들이 모두 자신이 대장으로 임명받는다고 생각하고는 기뻐했다. 결국 한신을 대장으로 삼자 모두들 아주 놀랐다.
이렇게 우역곡절을 거친 후 결국 한신은 대장이 되었다. 결국 그는 유방의 두터운 희망과 중요한 부탁을 저버리지 않았다.
발표시간:2007년 1월 17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1/17/418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