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깨달음 – 고독을 유지
작가 – 매우(梅雨)
만약 당신이 세속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고독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상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일부 고독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아래 두 가지 원인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오면 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즉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 한 갈래 길은 종이에 그린 한 장의 지도가 아닌 것으로 당신이 보아낼 수도 찾아낼 수도 없다. 이 한 갈래 길은 당신이 혼자서 고독할 때 사고하여야 비로소 보아내는 것이고 비로소 똑똑히 볼 수 있으며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알아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기어코 다른 한 사람을 찾아 한 가지 일을 함께 하려고 한다면, 미안하지만 나의 충고는 이러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다. 이는 고독이 필요한 한 가지 원인이다.
그외 사람과 만날 때 당신은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한 말을 상대방은 항상 이해하지 못하는데 곡해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그러나 당신은 상대방처럼 그렇게 그가 관심하는 사람과 일들에 흥분하지 않는다. 비록 똑같은 문제일지라도 당신과 완전히 똑같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세간에서 절친한 친구를 찾지 못함에 한탄하는데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진정으로 절친한 친구는 오히려 당신 자신이다.
이것 역시 왜 수련 중의 사람은 늘 무위(無爲)를 말하는가이다. 가능한 남의 생활을 교란하지 않고 가능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당신은 남의 길이 어떠한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서 상관했다면 보기에는 남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사람에 대해 교란을 조성할 수 있다. 물론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은 제외한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상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모든 힘을 다하여 가서 행해야 한다.
한 사람이 시시각각 청성하게 자신의 길을 잘 걸으려고 한다면 교란을 배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No”라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신과 별 상관이 없는 일을 마주하고는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나는 누가 끌어당겼다고 하여 누구를 따라가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 적이 없는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주견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또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부 일들은 상관하면 상관할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의 사유에 따라 행하는 것이 남에게 반드시 유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독의 시간은 소중한 것이다. 주위가 고즈넉한 상태에서 오직 자신의 영혼만이 조용히 조물주의 지령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이고 마땅히 어떻게 가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이 이렇게 똑똑히 살아 갈 수 있다면, 정말로 얻기 힘든 청복(淸福)이다.
발표시간 : 2007년 8월 5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7/8/5/451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