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시대의 작은 이야기
작자: 도원(桃源)
【정견망 2007년 10월 31일】
나 말고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닭 키우기이다. 할머니는 닭을 잘 기르는데 당신께서 기르시는 닭은 모두 전통적인 화북(華北)의 순종 재래종이다. 이런 종은 비록 계란을 생산하는 효율이 높진 않지만 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 심지어 심한 전염병이 돌아도 견뎌내며 전통적으로 인도적인 방식으로 사육해왔다. 닭에게 자유로운 활동공간을 주어 대낮에도 마음대로 먹이를 찾아다니게 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지금 양계장의 닭은 그렇지 않다. 고급기술로 배양해 낸 외래 잡종은 우리에 가둬놓아 인권도 없고 감옥 같은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극히 가련한 생활공간에서 그저 알을 낳는 기계에 불과한 생물이 되는데 호르몬이 포함된 첨가제를 먹이는 것을 현대화 된 양계(養鷄)라고 한다.
한번은 할머니가 가까스로 한 광주리의 계란을 모아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친정에 가져다주려고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갑자기 이모가 만들어준 신발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생각하셨다. 그래서 광주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뭇가지로 광주리 주위에 한 바퀴 금을 그어놓고는 돌아가 신발을 가져오셨다.
할머니는 전족(纏足)을 하셨기 때문에 광주리의 짐을 덜면 자연히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하신 원인은 단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순박한 농촌이나깊은 전통문화의 뿌리가 있는 중원지역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이것은 보편적인 일이었다. 일을 하러 길을 갈 때 중간에 무슨 잊어버린 것이 있으면 금을 그어놓고 돌아갔다 오곤 했다. 그 때는 도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도적도 없었다.
그러나 현대인의 눈에는 이것이 불가사의하다. 방범창이나 철사로 엄밀하게 막아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이런 일은 사실 할머니가 내게 알려주신 것인데 내가 태어날 때 이미 이런 현상이 없어졌다. 더욱이 시골 벽에 보면 “파를 한 뿌리 훔치면 자손이 끊긴다”, “목화를 훔치면 패가망신(敗家亡身) 한다”, “채소를 훔치면 남편보다 먼저 죽는다”는 등의 표어가 적혀 있어 이런 미덕은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해 문장가들의 고전이 되어버렸고 역사가들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할머니께서 키우시던 어미 닭은 한 가지 습관이 있었다. 매번 계란을 하나 낳을 때면 늘 마당에서 “꼬꼬댁 꼬꼬댁”하고 끊임없이 울어대며 마치 계란을 낳았다는 것을 모를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이 보고했다. 할머니가 나와서 옥수수를 줘야만 비로소 울음을 멈췄다.
우리 집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면 할머니는 반복적으로 내게 위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 때는 사람들의 인심이 좋았고 훔치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저녁에 문 단속을 잊어버리면 어떤 사람이 소도 끌고 갈 위험이 있다. 할아버지께서 키우시는 소가 한번 이런 상황을 만났는데 소를 훔친 사람의 방법이 아주 교묘했다. 그는 매우 가는 철사를 소 코에 끼우고 앞에서 끌고 가는데, 철사가 매우 가늘기 때문에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소가 스스로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자마자 들통나고 말았다. 소 걸음이 느렸기 때문에 소를 훔쳐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마침 길에서 우리 친척을 만났기 때문이다. 친척이 우리 집 소인 것을 알아보고 그 사람을 쫓아내고 소를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절도가 갈수록 보편화되었고 따라서 천상도 변하게 되어 하늘에서 번개가 치지 말아야 할 계절에 우레가 울리는 경우가 있다. 할머님은 내게 “2월, 8월에 번개가 치면 곳곳에 도적이 든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물건을 길에 놔두고 금을 긋는 그런 시절의 할머니도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내겐 아직도 매우 인상 깊은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매번 황혼이 되면 밖에서 모이를 먹던 닭들이 한 마리씩 천천히 날개를 펴며 1.5미터 가량의 낮은 우리 집 토담 남쪽 벽으로 펄쩍 날아올라 조용히 서 있다가 마당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를 한번 보고는 다시 뛰어내렸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한 마리씩 집으로 돌아오는 닭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이것이 바로 내가 최초로 숫자를 배운 방식이다. 한번은 할머니가 다 세신 후 한 마리가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 할머니는 정말 화가 나서 과거처럼 한 바퀴 금을 긋던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셨다. 이번에 그녀는 지붕에 올라가 그 닭 도적에게 욕을 퍼부었으며 마음속의 분노를 모두 발설한 후에야 겨우 내려오셨다. 아울러 어떤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녀는 포목을 물들이는 물감으로 닭대가리를 자색으로 물 들여 표시했다. 이후 머리가 자색인 닭은 바로 우리 집 닭이었다. 만약 제때에 집에 돌아오지 않는 닭이 있으면 집집마다 찾아다녔으며 있으면 즉시 데리고 왔다. 다른 닭을 키우는 사람들도 즉시 이 방법을 채용해 어떤 집은 붉은 색, 어떤 집은 남색, 머리에 물들인 것 날개에 물들인 것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나날이 발생하는 도적의 창궐을 막을 수 없었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할머니처럼 그렇게 공개적으로 욕을 발산하였는데 그 때는 마을에서 사흘이 멀다 하고 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게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두 집에서 갈등이 생겨 모두 거리에서 욕을 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목적은 전 마을 사람이 둘러싸고 구경하는 중에 사람들의 공개적인 판단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때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한가지 규칙을 발견했다. 싸우는 두 사람이 누가 도리가 있고 잘못했는가를 목소리 크기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누구 목소리가 크면 그에게 도리가 있었고 누구든지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지면 바로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도리에 어긋나면 떳떳하지 못해 자연히 목소리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몇 년이 지나자 나는 이 규율도 통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얼굴이 갈수록 점점 더 두꺼워져 이치에 맞지 않는 이유로 말해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많이 하면서도 얼굴색이 변하거나 가슴이 뛰거나 하지 않아 단순히 음성의 크기로 판단하는 유치한 방법으로는 그 사람이 정말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년간의 세상 변천을 분석할 때, 유행가로 가사로 바꾸어 말한다면 이런 변화를 능히 표현해 낼 수 있는데 바로 “갈수록 많이 훔친다”는 것이다. 할머니 시대를 돌이켜 보면 금을 한바퀴 그음으로써 도적을 방지하는 도덕표준이 일상적이었으니 세상풍속이 날로 추락함이 아주 두려워할만 하다! 이렇게 발전해나간다면 인류는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
……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확실히 매우 편리하게 재물을 얻는 방법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여기에 빠져든 사람은 손을 빼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다. 자전거를 훔쳐 간수소에 들어온 사람이 같은 방의 파룬궁 수련생에게 말했다. “나는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보고 훔치지 말라면 그건 안 된다. 내가 밖에서 한달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훔치는지 아는가? 만약 파룬궁이 훔치게 한다면 나도 너희들 파룬궁에 들어가겠다!” 한 사람이 일단 단맛을 맛보고 관념이 형성되면 만약 바꾸고 싶어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한 파룬궁 수련생이 간수소에서 버스에서 지갑을 훔친 소매치기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얘기한 후 그는 한편으로 계산해보더니 말했다. “이번에 3만 위안을 훔쳐 5년 형을 받았는데 나는 잘 하면 반년을 감형 받을 수 있고 그럼 연말에는 출옥할 수 있다. 그 때는 마침 연말이라 사람들이 바쁠 때 인데 기회를 보아 시장을 한 바퀴 돌면 하루에 4,5천 위안이 들어온다. 만약 감형을 받지 못해 내년에 출옥한다면 황금계절을 놓치게 된다!” 앞에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이 아직 희망이 있는 것 같지만 나중 말을 들으면 완전 실망하게 된다!
한 절도범이 있었는데 감옥에서 한편의 노래를 지었다. 가사가 통속적이고 선율이 부드러워 의외로 간수소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이는 <홍루몽>에 나오는 설반(薛蟠)의 노래 “딸의 슬픔은 바람둥이 남편 때문”이란 노래의 예술 수준보다 좀 높은데 현재 대략 기억나는 것은 다음 몇 구절이다.
큰 옷을 걸치고 기차에 올랐네
차에 올라 돈을 훔치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만지니
바로 2천 위안이라네
지폐를 훔쳐 희희낙락
고급 음식점에서 한상 차려먹고
마음이 막 즐거울 찰라
공안국에 잡혀갔네.
……
누이야 나를 떠나지 마라
철창이 나를 가두었으나
형기가 만료되면 석방될 테니
우리 함께 다시 가마솥을 부수자
촌뜨기는 정말 무섭다
이 어른에게 5년 형을 판결하더니
바로 비행기에 나를 태워
큰 사막에 보냈네
사막은 정말 적막해
나를 모시는 아가씨도 없네
모택동 사상이 나를 가르치니
나가면 다시 죄를 짓네.
특히 마지막 구절 “모택동 사상이 나를 가르치니 나가면 다시 죄를 짓네”라는 이것은 정말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묘미가 있다. 왜냐하면 맑스, 레닌, 모택동 사상이 제창한 것은 유물주의인데 물질이 제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기왕 이렇다면 사람들은 물질 이익을 위해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으며 도덕이란 단지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 여기며 두 번째나 제일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단지 치부하고 돈만 갖고 놀 수 있으면 되는데 그렇다면 절도는 아주 효율적이고 빠르며 편리하게 재물을 얻는 방법이다.
맑스레닌주의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반듯하게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니며 오히려 도적을 지도하는데 유용한 이론신조일 뿐이다. 사실 현재 중공 관원들의 탐오와 부패 역시 훔치는 것이며 민중이나 국가의 이익을 훔치는 것에 불과하다. 첩을 거느리고 정부(情婦)를 키우는 것 역시 훔치는 범주에 속하며 단지 “정(情)”을 훔치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 관원의 행동방식은 완전히 맑스, 레닌, 모택동의 유물주의 이론에 부합하며 그들의 행위 역시 이런 이론의 지도하에 자신이 장악한 권리와 결합해 완벽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현재 형사범죄 사건은 중국대륙에서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유물론의 결과이다. “모든 것은 돈만 본다”,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 “차라리 도둑을 키울지언정 효자는 키우지 않는다”는 대중들의 사상관념 역시 유물론의 파도가 인민의 머리를 충격해 나온 가지에 불과하다.
형사범 중 강도 역시 훔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단지 폭력적인 수단으로 명백히 훔칠 뿐이다. 사기 역시 훔치는 것인데 교활한 수단으로 은폐하여 훔칠 뿐이다. 보아하니 유물론의 가장 뚜렷한 공적은 모두 훔치는 것에서 나온다.
또 어떤 사람은 맑스, 레닌, 모택동 이론에 기초해 무슨 흑묘백묘(黑猫白描)론을 제기한다. 그저 물질 이익을 취할 수만 있다면 바로 좋은 고양이라는 의미이다. 이 이론은 거의 조직폭력배에게 법적인 근거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는 검은 고양이도 상관하지 않는데 조직폭력은 재물을 빼앗는데 얼마나 편리한가. 이 사회도 역시 훔치는 것인데 조직화, 계통화, 제도화 된 집단적인 방법으로 훔칠 뿐이다. 목표에서 보자면 더욱 큰 범위에서 훔치는데 사실 현재 중공악당은 중국에서 창궐하는 가장 큰 깡패집단이며 그것은 중국 인민의 물질 이익만 훔치는 것이 아니라 중화 문명의 전통미덕도 훔쳤다.
중국 사람이 총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인들은 이미 총명한 재주와 지혜를 잘못된 길에 사용하고 있는데 각종 범죄, 사기 등이다. 써먹는 수단도 거의 최고봉에 달해 중국은 이미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 현실을 바꾸려면 반드시 사람의 심령을 진감시키는 방식으로 인심과 도덕을 제고해야만 가능하다. 사실 현재 여기에 뜻이 있는 사람은 모두 파룬따파를 떠올릴 것이다. 중공이 그렇게 엄혹하게 박해하는 환경속에서도 “眞善忍”을 견지하고 있는데 아마 중국인, 중화민족의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중국인의 총명과 지혜를 바른길에 사용하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중화를 진흥할 수 있고 중국인이 방범창이 없어도 지낼 수 있게 하며 밤에 문단속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발표시간:2007년 10월 31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10/31/491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