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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우아한 생각: 성심성의

속세의 우아한 생각 : 성심성의

【정견망 2008년 1월 28일】우리 매 사람은 이 시끌벅적한 세상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접촉하며 갖가지 일을 다 만난다. 이런 일은 속되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하며 당당하기도 하고 번잡하기도 하다. 신선하기도 하며 진부하기도 하다.

이 사회는 성의와 믿음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거짓과 악함이 늘 우리를 따라다니며 부주의하면 상해를 입는다. 사람은 흔히 작은 이익과 좋은 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왕왕 비자각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의식과 다른 사람을 견제하는 심리를 형성한다. 이치대로라면 이런 심리는 정상이지만 만일 과하다면, 아마 당신에게 진정 잘해주며 오히려 구하는 바가 없는 사람을 상해할 것이다.

착한 일을 하는 많은 친구들은 때때로 좋은 사람 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 좋은 사람은 되기가 힘들다. 사실 이런 좋은 사람은 보답을 바라며,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좋은 사람이다. 기왕 즐겁게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면, 그럼 왜 다른 사람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이것 또한 구하는 것이 아닌가? 설마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알아주지 않는다면, 다시는 다른 사람을 돕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말인가?

이상은 내가 신문에서 한 편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이다.

사실 나는 아마 당신이 이런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웃는 얼굴로 감사를 표하더라도, 오히려 어떤 보답을 바란 것이 아니며, 반대로 다른 사람이 풍자와 조소를 하더라도 그들은 역시 선량한 미소로 대한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멍청하다고 말하며 세상사를 잘 모른다고 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은 그들의 추구가 있다. 나로 말하면 매일 왕래하는 5,6킬로 지역 범위내에 비록 접촉하는 사람이 매우 많지만, 말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도 나는 매우 즐겁다. 비록 몸은 타향에 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말이다. 나는 눈을 돌리면 사라지는 명리보다 더욱 가치있는 생명의 추구를 알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영원불파(永恒不破)한 선량과 순진함이다.

이런 선(善), 이런 순진(純眞)은 완전하게 상대방을 위한 것이며, 결코 어떤 것을 취하려는 것이 없으며, 바로 생명이 수련하여 후천적으로 형성된 나쁜 관념을 버린 후의 각성(覺醒)한 체현이며, 생명의 본성(生命本性)이 자연적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돈이 없고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것에는 다른 견해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직업의 일을 잘하고, 생활에 잘 안배하고, 착하고 순진한 심태로 사람을 대한다면, 상대방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던지 적어도 우리 마음 속의 그 사라지지 않은 양심(良知)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성심성의로 대하며 득실을 구하지 않는다. 진정하게 이 한 점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초상적인 흉금(胸襟)을 가질 것이며 일의 전후 인과(因果)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순진함과 착함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고 자기의 더욱 많은 아름다움을 개창하자!

발표시간: 2008년 1월 28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1/28/506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