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빙련
【정견망2008년 2월 17일】수련과정 중 늘 일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수련의 길을 어떻게 걷는가?” 나는 늘 미소짓는데 비록 옛날의 기억이 가까운 지척에 있지만 아득히 먼 곳에 있음을 느낀다.
출국 후 일류 대학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꽃이 만발하게 핀 교정을 쉴새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귀처럼 험한 인심은 심법의 구속이 없다보니 늘 나쁜 짓을 하려고 해, 어디 나쁜 곳이 있으면 그곳에 가보았다. 잡다한 것도 가까이 해보았고, 무슨 유행도 따라 해 보았다… 또 한 때는 대사관에 있는 모모씨에게 비위를 맞추어 모모 회사에서
조그마한 직책을 맡으려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평소 친구들과 돈을 헤프게 쓰며 먹고 마시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고 부모에게 거짓말하는 것도 배웠다. 학교에는 몇 보만 걸어도 도착하는데도 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되었고, 정계의 고관자제들에게 멸시당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시 말해서 그 몇 년간 생명은 타락했고 인생의 존재가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 타락한 기분은 밤의 적막이 찾아오면 늘 놀랐고 담이 떨렸다. 그처럼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은 밤낮이 다르게 나타나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었다. 이런 생활은 만족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매우 쉽게 피로를 가져다 주었고, 온순하던 성격이 조급하고 폭력적이 되었다.
나중에 나는 늘 보던 파룬궁 수련생이 길거리에서 나누어 주던 진상자료 전단지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 본 것은 SOS 신문이었다. 받아보니 죽거나 관을 당한 사람의 사진이 있었는데 돌연 무엇에 찔린 것 같은 마음이 들면서 그 아픔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옆에 있는 친구들 때문에 괴로움을 억지로 누르고 조소하는 표정을 가장했다.
중국대륙 사람들은 전통문화의 영향을 잃고 장기적으로 당문화에 세뇌되었으니 실질상 매우 슬픈 일이다. 인성의 연민과 양심을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사람이 생존하고 의지하는 연속된 도덕정수가 끊어졌다. 만일 정통이 없으면 사람의 생명은 정말 영원히 만회할 길이 없다. 사람들은 바쁘고 적이 되고 일그러짐이 사람의 일체 정신을 가득 채웠다.
하루는 내가 농담 반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진선인”이 어디가 나쁘냐, 명백히 좋지 않니? 왜 연마를 못하게 하나. 나도 연마해 볼래. 말이 나오자 마자 친구들은 “헉”하고 놀라더니 약속이나 한듯이 일어나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네가 연공하면 우리는 관계를 끊겠다. 나는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보자 마치 차가운 얼음으로 덮인 빙산처럼 한참동안 정신이 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심으로 더욱 갈망했으며 이런 좋은 느낌은 갈수록 갈망하게 되어 정말이지 법과 파룬궁수련생에게 접근하고 싶었다.
처음에 부자 친구들은 분분히 나의 선택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한 친구는 칼을 내 목에 대고 위협했다. 네가 다시 “진선인”이 좋다는 말을 하면 머리를 잘라버리고 5층에서 밀어버리겠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놀랐다. 아침 저녁으로 같이 지내던 친구가 황언에 독해되어 이런 험한 폭력을 쓰다니. 이전에 동창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수천 달러를 꺼내어 도왔다. 그리고 지금은 나 자신의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누구에게 조금의 방해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수난을 당하다니. 정상인의 사유로는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9평>을 읽지 않았더라면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문화에 변이된 중국인, 그들은 심령심처에는 정통의 맥락이 끊겨있다.
이상하게도 내가 파룬궁을 선택하기로 결정했을 때 마음이 열리는 게 아주 멀리 열렸다. 설사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도 느낌은 환하고 당당했다. 마치 머리 위에 등불이 비추는 것처럼 두렵지 않았고 즐거웠으며 두려움과 걱정이 없었고 오로지 즐거움만 있었으며 생명은 새로운 희열로 바뀌었다.
법을 읽을 때 <전법륜> 책 위의 글자가 빛을 발하면서 각종 색깔로 변했고, 투명한 광채가 발산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돌고 있었다. 때로는 수련 시간이 충분한지 부족한 것인지 하는 생각을 면하기 어려웠다. 한번은 심혈을 기울여 “진정 고층차에로 사람을 이끌다”를 얼마나 걸려 외울 수 있는지 보기로 했다. 나는 가부좌하고 결인하여 즉시 정에 들었다. 다 외운 후 한번 보니 아! 겨우 몇초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당시 믿기 힘들었다. 나는 다시 시도해보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수련은 시간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을 쓰는 문제였다.
수련이 점점 깊어짐에 따라 천천히 알게 되었다. 수련자의 일념이 산생되면 대응되는 모 천체의 생명과 연관되어 그들이 구도될수 있는지 없는지의 선택이었다. 선념을 선택하면 모 한 경지의 생명은 생존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선택한다. 내가 자료를 나누어 줄 때 마주한 생명을 보면 자연스럽게 전법륜 중에서 말한 것을 기억하게 된다. “고급생명이 볼 때 사람의 생명은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은 우주 공간에서 생긴 것으로서, 우주와 동일한 성질이고 선량한 것이며 眞、善、忍(쩐, 싼, 런)이런 물질로 구성된 것이라고 여긴다.”
생명의 내원을 알고 진상을 하게 되면 상대를 더욱 아끼고 보호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체험을 한 것이다.
외래요소에 충격을 받을 때 더욱 법에 대한 믿음이 견정해진다. 정념을 견정히 하는 과정은 사실 자비로 생명을 용납하는 과정이다. 어떤 생명은 매우 소란을 피우기 좋아하는데 정념으로 대하면 이런 생명은 자동으로 눈치있게 군대의 진용처럼 당신의 말을 들으며 호법의 책임을 다 한다.
중국의 전통예절에는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구하고 있다. 사실 “법륜대법은 좋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게 할 수 있으면 바로 아름다운 선택을 따르는 것이며 천지인이 함께 구하는 영원한 상서로움이며 사람마다의 생명 역시 자연히 그중에서 여의롭게 되며 사람의 선천적 생명안에 신운의 아름다움이 포함된다.
발표시간:2008년 2월 17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2/17/510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