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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찰기 (2) : 최후의 최후

연심찰기(蓮心札記)(2) : 최후의 최후

작자:정련(净莲)

【정견망 2008년 4월 6일】

며칠이 지났는데 동수 평(萍)과 내가 겪은 일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천목이 열린 어느 동수가 사부님의 일부 설법에 근거하고 다시 그녀 자신이 본 일부 느낌을 결합하여 대법제자는 이미 원만했다고 하였으며 세 가지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책을 보고 연공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녀와 몇 명의 동수는 앞뒤로 그녀의 체험을 나누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그녀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절차한 후 동의를 했다. 4~5 명의 동수는 이미 사부님의 경문과 책을 모두 거두어 그들이 하던 일부 일들도 취소했고 세 가지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어떤 동수는 직장에서 사표를 쓰고 집에 조용히 앉아서 수련한다. 그들 역시 다른 동수와 소통을 하며 그들의 인식제고를 권하며 원만으로 향하라고 했다. 이런 정황을 알고 나서 평은 몇 차례 그 중의 한 명의 동수와 소통했는데, 이 동수는 오히려 “수련의 길은 부동하니 매 사람마다 개인의 이해와 수련방법이 있다.”고 했으며 또 사부님의 최신 경문 <<모래를 일다>>를 이야기하며 그들도 보았는데 이것과 그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느꼈다. 그들이 이렇게 깨달은 것이 옳고 이렇게 수련하는 것이 옳다, 층차가 다르면 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좀 의아했다. 우리가 아는 몇 동수는 모두 노수련생이다. 당초 박해가 엄중할 때 그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내내 사악을 향해 진상을 하고 삼퇴를 권했다. 그들은 몇 차례 사악세력과 싸웠으며 의연히 견정하게 두려움 없이 정법의 길을 걸었다. 그중 한 명은 더욱이 여러차례 사악에 의해 감시당하고 미행당하고 거주지를 포위당했으며 심지어 심문을 받았으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정념은 사악을 놀라게 하여 안전하게 계속 진상을 말하고 중생을 구도했다. 이런 행동은 눈물을 흘리게 할만 했으며 우리가 법공부로부터 참으로 많이 알게 했다. 어떻게 정법이 최후에 달한 이 시각에 그들은 오히려 이런 감각과 행동이 나오는가? 이런 일은 명혜망에도 몇 차례 토론된 적이 있는데 어떻게 또 출현했는가?

몇 편의 사부님의 최신경문을 보고 또 보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우리는 몇 차례 소통하였으나 결과가 없었다. 평(萍)과 나는 서로 쳐다보며 말이 없었고 그때로부터 그들을 위해 발정념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기회를 만들어 그들과 다시 소통하기로 했다.

이 일에 대해 깨달음이 참으로 많다.

1. 사부님은 <<모래를 일다>>에서 “정법시기 최후 단계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최후로 갈수록 우리는 더욱 정진수련해야 하며 자신의 일체 집착을 버려야 한다. 만일 공능의 추구에 집착하고 들은 것에 집착하고 본 것에 집착하여 이 때문에 사분님의 경문을 똑똑히 보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천목이 본 것에 대한 문제는 나도 좀 체험이 있다. 천목이 열리니 정말 천목이 열려 수련하기 어려운 곳이 있다.(내가 본 층차는 제한적이다) 때로는 들은 것, 본 것 이런 것이 마음을 움직여 나로 하여금 신의 계시라고 여기게 하며 장래 어떻게 하라고 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에 많은 집착이 있었다. 나중에 비로소 발견했는데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고 일부는 자심생마였고 교란을 조성한 것이었다. 만일 당시 자신의 심성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염두가 바르지 못했더라면 문제가 나타날 뻔 했다.

그러나 현재 최후단계에 문제가 나타나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게 거대한 손실을 조성하니 정말 안타깝다.

2. 사부님은 근래 몇 차례 설법중에는 우리에게 “사전의 홍원을 완성하고 서약을 실행하라!”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나는듯이 지나가는 이 시각에 우리는 응당 어떻게 세인을 구도할지 더욱 고려해야 하며 어떻게 세 가지 일을 해야할지 고려해야 한다. 사부님은 “정법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모래를 일다>>고 하신 바 사부님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즉시 정법이 결속되는 것을 긍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우리 대법제자가 아직 원만의 표준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일체를 잘하기 전에 정법이 어떻게 끝날 수 있겠는가? 응당 이런 형식의 개인원만이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3. 사부님은 우리에게 정법의 관건적 시기에 태도와 방향은 명혜망을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현재 명혜망에서는 동수들이 “어떻게 사람을 구하고 홍법진상을 하는가” 하는 문제를 토론하고 있다. 우리는 진상, 삼퇴를 권하는 일만 더욱 잘하면 되며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4. 사부님은 <<전법륜>>과 기타 경문에서 여러차례 제자들을 깨우쳐 주셨다. 이지적으로 대법을 공부하고 진정하게 수련해야 한다고. 사부의 제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사부님의 경문 <<전법륜>>조차 공부하지 않을 수 있는가? 공도 연마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이 어떻게 원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인가?

수련의 길에서 아무리 수련을 몇 년을 했건, 진상, 삼퇴를 아무리 많이 했건, 책을 많이 보고 법공부를 많이 하며 진정하게 마음을 수련하는 이것이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고험이 나타나면, 빠짐없이 원용하는 씬씽을 기초로 하지 않아 수련원만하지 못하고 층차의 제고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속인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으로 변하게 되어 복을 얻는데 그치고 만다.

5.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능히 알 수 있는데, 우리는 부족한 곳이 있는지 없는지, 견정한지 안 한지, 착실하지 않은 곳이 있는지 안으로 찾아야 한다.

이 사건은 역시 우리에게 대한 고험이다. 어떤 때이건 모두 “법으로 스승을 삼아야” 하며 “사람을 스승으로 삼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정황이 나타나더라도 우리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더욱이 사람의 마음, 정이 나오거나 심리적, 정서적 파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구세력의 배치나 고험에 딱 들어맞는다. 합격하여 바르게 걷고 우리는 사부님이 우리에게 안배하신 수련의 길만 걷고 정념정행하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면 된다.

그날부터 나는 매차 발정념할 때 늘 그들을 상기했다.

동수들이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고 힘든 길을 걸어왔으며 얼마나 피비린내나는 비바람을 겪으며 왔는가…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 도달하였는데 우리 매 하나의 대법제자들은 안정되고 이지적으로 원용하여 빠짐없이 매 일보를 잘 걷자.

발표시간 : 2008년 4월 6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4/6/521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