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산문시리즈: 어두운 하늘을 지나와서 미소짓다
작가: 소연
【정견망】나는 어릴 때부터 도량이 좁아 작은 일에도 늘 걱정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수련한 이후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늘 웃기를 좋아했다. 처량한 비바람을 만나든지, 만반의 고난을 만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마음은 여전히 늘 웃는다.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인간의 추구를 다 버리면 비로소 무욕이 가장 강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구함이 없을 때 가장 평탄하다. 두뇌에는 오로지 대법만 있고 마음속에는 신성한 사전의 큰 소원을 용납하고 금생에 진정하게 무한한 우주에서 중생을 구하는 천애지기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소원을 알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붓을 다해, 나는 마음으로 사부님을 도와 창생을 위난으로부터 구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인간의 일체는 거의 모두 옳지 않고 부실한 환영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좋고 나쁘게 대하는 가에 영향받지 않는다. 나는 나의 길이 있고 나 자신의 우주의 의지가 있다. 하물며 그렇듯 많은 신이 나를 모시고 있으며 그렇듯 많은 중생의 소원을 이해할 수 있는데 어찌 고단하다던가 적막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나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푸른 하늘 아래서 평탄하든, 굴곡이 있던, 필경은 대지 위에는 대낮에 붉은 해가 있고 밤이면 밝지는 않지만 별빛이 따라오게 마련이므로 나는 여전히 세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아니면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거나 나가서 진상을 말하거나 손을 씻은 후 두 손으로 공경하게 책을 받들고 보는데…… 이런 것에 나는 이미 매우 만족한다. 나는 누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지, 좋게 혹은 나쁘게 대하든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속세에서 미소짓고 다니며, 사람과 사람사이는 모두 종전의 인연관계가 달라 이번 생에 다른 역할을 연기할 뿐임을 조용히 보고 있으며 ,이 배역중에서 서로 많은 은원이 산생하는 것을 보고 있다.
한번은 내가 시장을 걸어가고 있는데 옆에 있던 옥신(玉神)이 호기심이 난듯 말했다.
“저 두 노인네 좀 봐, 송나라 때 한때 원한 맺힌 사이였는데 지금은 부부가 되었어. 저 두 젊은이는 예전에 친구였을 때 생과 사를 같이 했기 때문이 이번 생에서는 서로 도와가며 사는 부부가 되었어. 두 아이는 지금까지 큰 산에서 일백 여살까지 살면서 병 없이 죽었어. 저 두 장정은 예전에는 살인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강도였고, 다른 하나는 조정의 대장이었는데 이번 생에서는 생계를 위해 채소를 팔고 있네…” 봉황이 말을 받아서 말했다.
일체 윤회이든, 인연이든, 최종 목적은 오늘날 대법 진상을 알기 위해서이고, 공산 붉은 악마의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자네들이 보라고 하면서 그녀가 신통으로 한번 가리키자 낡은 옷을 입고 계란을 파는 부녀자 뒤에 갑자기 그녀가 천상에 있을 때의 장면이 나타났다. 그것은 위엄이 대단한 신이었으며 그곳에서 그녀 경지 중의 중생들을 위해 온갖 애를 다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녀의 경지에 변이와 패괴가 나타났다. 나중에 다행히 주불이 인간세상에 내려오려 했는데 환생하여 대법제자가 되는 생명은 이미 확정 되었고, 오로지 보통 중생이 되려는 곳에만 약간의 빈자리가 있었다. 그녀는 주불에 대한 견정한 믿음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그녀 경지의 무량한 중생을 구도하려는 큰 소원을 가지고 온 것이다.
윤회 중에 그녀는 너무나 많은 고생을 겪고 또 너무나 많은 욕을 당하면서 생과 사의 경지에서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으나 마치 무슨 걱정스런 일이 있는 듯 그녀는 사람의 몸을 버리지 못했다. 아직 기회와 인연이 닿지 않아 그녀는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다.
금생에 우주 궁체(穹體)와 일체 중생을 구도하는 우주대법이 인간에게 널리 전해지기 시작했으나 그녀는 법을 얻지 못했고, 우주대법이 사악에 탄압을 받을 때 그녀는 진상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마비된 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미 자신의 생명이 무엇때문에 세상에 왔는지 거의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미소짓는다. 왜냐하면 나는 금생에 내가 깨달은 후 일체의 노력을 기울여, 전적으로 펜을 들어 속세에 미혹된 신들을 깨우치고 그들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집은 여기가 아니다. 너희들의 가족은 여기에 있지 않다. 너희들의 생명도 여기서 내원한 것이 아니다.
나는 미소지으며 속세에서 다니고 있다. 묵묵히 미소지은 채 생활의 일체를 처리하고 있다. 생활에 필수적인 일을 즐겁게 하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극히 자질구레한 일이다. 이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싯구를 읊으며 비할데 없이 미묘한 하늘의 음악을 들으며 진심으로 무수한 생명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의 오묘함, 무궁한 비밀과 방대하고 복잡함은 끝없이 흥미롭다. 사람이 살림을 하며 하루하루 지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무미하며 하루종일 이런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일년전 나는 벽옥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설사 한잔의 맑은 물, 아니면 하나의 모래알이라도 내 눈에는 극히 복잡하며 모두 간단한 게 아닌 것으로 역시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유와 생명의 표현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쌀”을 예로 들어 증명한다.
“쌀”은 사람이 먹는 것이며 신이 안배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초에 문화를 다져줄 때에 이런 물종을 만들어야 했고 이런 물종이 역사상 발전 중에 점점 우리 지구환경에 적응하게 했다. 그렇다면 이 물종은 빈것에 의존하여 생장할 수 없으며 그것은 토지와 영양분 또 빛, 비, 이슬, 관개 등이 있어야 한다. 기왕 이런 것에 연관된다면 그럼 이 외부의 조건은 어디에서 오는가. 배후에 많은 신들이 안배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역사상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도록, 어떻게 먹는지 알도록 하는데, 이 자체가 신이 안배한 것이 아닌가. 이로서 문화를 다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먹어서 생존하고 발전한다.
그 중 몇 명의 신이 각종 각양의 쌀을 안배하는 한편 사람의 영양 균형을 보증하는가. 다른 면은 또 그들 자체의 생명의 특징과 문화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 가지 쌀로 그렇게 다양하게 밥을 짓는 방법이 있다. 같은 종류의 쌀이라도 짓는 방법이 나뉘어 있고 불의 세기와 시간도 달라야 우리가 원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사실은 배후에 그렇게 방대한 요소가 있는 것이다. 또한 쌀 자체 속에 또 많고 많은 생명이 있지 않는가, 그래서 비로소 표면적인 소위 영양이 이루지 않는가!
이 일체의 근본 목적은 그저 우리로 하여금 인간생활을 유지하도록 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먹음으로써 직간접으로 참여한 무수한 생명과 기타요소들이 있어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면 그들도 간접적으로 법실증에 참여한 것으로 친다. 우리에게 법을 실증할 신체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그것들도 공이 있는 것으로 친다. “네가 잘하지 못하면 네가 먹은 것과 사용한 것에게 미안하다.” 봉황이 나에게 깨우쳐주었다. 내가 잘하지 못하면 너와 옥신에게 미안할 것이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이 만장한 역사 중에 너무나 많은 세월을 지나왔고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고 위로를 해주었다. 이는 신의 연분이며 이 일체는 중생을 구도하는 자비와 역량이 될 것이라고 하며 안심하라고 했다.
“좋아, 너무 엄숙하게 말하지 않아도 돼. 우리 함께 저 벽을 봐, 집안의 저 생명을 봐. 저런 생명은 정말 매우 천진하게 놀고 있는데 생명은 너무나 다채롭고 늘 다채롭다.” 옥신은 좀 장난기가 있기 때문에 가끔 고의로 자기 고향의 말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처럼 가볍게 웃으며 함께 무진한 창궁의 무궁한 오묘한 함을 깨달았다.
속세에 웃으며 하늘에서 웃고 있다……
발표시간:2011년 1월 22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22/712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