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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다리를 꼬고 앉는 수련생들과 교류

아직도 다리를 꼬고 앉는 수련생들과 교류

작자: 비명(飛明)


[정견망] 자고로부터 중국인들은 의표를 중시했다. 연장자나 상사 앞에서는 자세를 중시했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기 위해 다리를 되는대로 놓지 않았는데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는 더욱 삼가했다. 중국 신전(神傳)문화에서는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이 곧 위로는 하늘을 섬기지 앉고 아래로는 땅을 섬기지 않는 안하무인인 것으로 교양이 없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꺼려했다. 다만 악당이 중국을 통치한 이후 당(黨) 문화가 전통 문화를 대치하면서 중국인들의 사유가 틀어졌고 행위는 규범을 잃었으며,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이 아주 평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로 되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처음 설법 하실 때 매우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리를 꼬고 앉아 설법을 들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대법 책을 깔고 앉은 채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그 때에 우리는 경사경법을 몰랐으나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탓하시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법의 진귀함과 엄숙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수련한 지 눈 깜박할 사이에 십 몇 년이 지나갔다. 하지만 속인 중의 일부 좋지 못한 습관은 아직도 수련생들 몸에 존재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어느 불(佛)․도(道)가 거기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는가? 그런 것이 어디 있는가?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끊어버려야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수련하려 하면, 당신은 그것을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당신의 신체를 해치며, 또한 일종의 욕망으로서 우리 수련인의 요구와 바로 상반된다.”

대법제자 중에는 다리를 꼬고 앉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예를 들면 수련생 갑은 십 몇 년 수련 했으나 표면상으로 속인의 좋지 않는 습관을 없애버리지 않았다. 가장 돌출한 표현이 어디 가서 앉으나 늘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이다. 수련생들이 여러 번 알려주었으나 그는 그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우리는 속인의 이 큰 염색항아리에서 수련하면서 진정으로 대법에 동화되고 심성이 그 위치에 도달한다면 경지 역시 자연히 거기에 있게 되는데 표현되는 에너지 마당은 모두 바르고 선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우리는 여러 해 수련 했으나 몸에는 여전히 이러한 좋지 못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수련생 을은 노년 대법제자인데 “전법륜”도 모두 암송할 수 있어 비교적 정진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최근 한 차례 교류 중에서 대마두를 말하게 됐는데 그는 말할수록 격동해 수구(修口)해야 하는 것을 잊고 속인처럼 마구 욕을 퍼부었다. 이토록 강렬한 적개심이 얼마나 많은 속인의 것들을 서로 연관되게 하겠는가?

“전법륜”을 암송했다 한들 어쩌겠는가? 관건시기 여전히 속인으로 표현되지 않는가. 이러한 것들은 안을 찾지 않아도 표현되는데 정말 안을 향해 찾게 되면 자신은 몹시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런 나쁜 습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마음이 괴롭게 한다.

수련은 곧 스스로 엄격히 요구해야 하는 것으로 행동거지를 모두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속인 중에서 형성된 이런 관념, 습관과 당 문화는 이미 엄중하게 우리의 수련과 법에 동화 되는 것을 저애하며 심지어 사악에게 이 틈을 주어 우리를 박해하게 한다. 아마도 많은 수련생들은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누가 우리 사존께서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았는가? 없다! 사부님께서 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가 감히 한단 말인가? 여기에도 경사경법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사부에게 어떻게 하든 사부는 마음속으로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어떤 우주 층차의 요소에 의해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제가 있다. 만약 당신들이 사부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말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구세력은 이를 빌미로 틈을 타 당신들을 훼멸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들이 당신들을 훼멸할 수 있는 최대의 약점을 잡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내가 당신들을 제도하는 과정 전반을 보았기 때문이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이런 행위는 비록 무의식적이지만 대법제자 몸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어느 한 번 우리 지역의 몇몇 수련생들이 함께 법회를 열게 됐다. 당지 사악의 발광으로 처음 여는 법회가 많은 교란을 받았고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회의 장면은 아주 장중하게 표현됐고 모두들 좀 엄숙했다. 좀 지나 그 중 3명 수련생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한 수련생이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됐다. 결국 법회도 예정했던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수련생이 한 말은 도리가 있었다. 하늘에서 법을 수호하는 불도신(佛道神)들이 보았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틀림없이 웃음거리로 됐을 것이다. “보세요, 저 몇몇 대법제자들은 아직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네요!” 구세력은 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보라, 저 몇몇 사람들이 어디 대법제자 같은가. 조금도 경사경법 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에서 수련생들이 납치당하는 일이 연속 발생했다. 당시 법회에서 다리를 꼬고 앉았던 수련생을 포함해서였다. 현지 환경은 더욱 악랄하게 변했다. 여기에서 수련생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 박해를 받았다는 말이 아니다. 매 수련생들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므로 오직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우리들은 속인 중에서 형성된 좋지 않은 습관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무엇이 대법제자인가”를 설법하셨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사부님께서는 왜 줄곧 이 문제를 강조하시는가? 여기에서 말한 이런 나쁜 습관은 안에 있고 밖으로 표현되는데 틀림없이 그를 조성하는 심층 요소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대법제자 같지 않게 표현되게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런 것들을 제거하려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공력을 들여 심성이 도달해야만 비로소 이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여하튼 이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가 더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런 나쁜 습관을 버리고 진정으로 법에서 자신을 바로 잡자.

깨달음의 제한이 있으므로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허스!

발표시간: 2011년 10월 2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10/2/777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