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지화(將相之和)
작자: 소련(小蓮)
[정견망] 추석 전날 어머니와 어느 아주머니가 이곳에 나를 보러왔다. 우리 여기에서 같이 일하는 몇 명 수련생들은 그분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을 때 A수련생이 말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얻기 어려운 인연입니다.”
이때 나는 갑자기 천목으로 한 경치를 보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밥상은 “장상지화(將相之和-장군과 재상의 화합)”라고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A수련생은 원래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신하 인상여(藺相如)였으며 어머니와 함께 온 아주머니는 조나라 장군 염파(廉頗)였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 이 아주머니에게는 장군의 과단성과 능수능란한 태도가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나는 갑자기 알았다. 무엇 때문에 당초 역사상 우리 대법제자가 장상지화라는 일막의 연극을 연출했는지.
당초 염파는 인상여의 지위가 자기에 비해 높은 것을 보고 불평하며 늘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인상여는 오히려 큰 국면을 생각해 곳곳마다 그에게 양보했다. 마침내 인상여의 관용하는 마음에 감동한 염파는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사죄했는데 그래서 고사성어 부형청죄(負荊請罪)가 나오게 된 것이다. (염파와 인상여에 대한 이야기는 지면의 제한으로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인터넷 자료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면 오늘날 대법제자는 법을 실증하는 이 위대한 장거로 말하면 우리 매 사람은 모두 중생을 구하는 희망이며 중생을 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우리가 당초에 맹세한 소원 역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인데 우리 수련생 사이에 일부 생각의 틀린 것을 볼 때 우리는 법을 크게 보고 중생구도를 크게 보며 전체 국면을 고려해야 한다. 자기의 마음의 느낌만 생각하면 안 되며 관용할 줄 알고 정체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왕에 과거 우리가 함께 연출하여 무수한 휘황찬란함과 그렇게 많은 문화를 다졌으면 오늘날은 마땅히 수련자의 관용과 자비와 바른 믿음을 미래에 남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상지화가 다진 문화
관용과 참음으로 그를 감화시켜
오늘 신의 길에 동행하니
서로 손잡고 귀가하세.
將相之和奠文化
寬容忍讓感化他
今朝同行走神路
相互提攜同歸家!
발표시간: 2011년 9월 14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9/14/773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