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견 문화교재 편집소조
【정견망】
yè sòng zhào zòng
夜送趙縱(야송조종)
zhào shì lián chéng bì,yóu lái tiān xià chuán。
趙氏連城璧(조씨연성벽),由來天下傳(유래천하전)。
sòng jūn huán jiù fǔ, míng yuè mǎn qián chuān。
送君還舊府(송군환구부), 明月滿前川(명월만전천)。
【작가】
양형(楊炯 650~693)은 당나라 화음(華陰) 사람이다. 화음은 지금의 섬서성 화음현이다. 당 고종 영휘(永徽) 원년(650년)에 태어나 측천무후 장수(長壽) 원년(693년)에 사망했다. 향년 44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양형은 어려서부터 총민하고 박학했으며 특히 글쓰기를 좋아했다. 11살 때 신동(神童)으로 천거되어 교서랑(校書郎)을 지냈고 나중에 숭문관(崇文館) 학사가 되어 첨사사직(詹事司直)을 지냈다. 무후 때는 재주(梓州) 사법참군(司法參軍)으로 옮겼다. 임기를 마친 후 무주(婺州) 영천령(盈川令)으로 있다가 관직에서 사망했다.
양형은 흔히 왕발, 노조린, 낙빈왕과 함께 초당사걸(初唐四傑)로 불린다. 양형은 특히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뛰어났고 그가 쓴 변새시(邊塞詩)는 당당한 기세와 호방한 풍격을 지녔다.
【주석】
(1) 趙氏連城璧(조씨연성벽 zhàoshìliánchéngbì):전국시기 조나라 왕에게 화씨벽(和氏璧)이란 보물이 있었다. 진나라 왕이 15개성을 교환하는 조건으로 요구할 정도로 천하에 유명한 보배였다. 당시 조나라 재상 인상여가 기지를 발휘해 진나라에 들어가 화씨벽을 무사히 조나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사기・염파인상여열전》에 나온다.
여기서 벽(璧)이란 평평하면서 둥글며 가운데 구멍이 뚫린 옥기(玉器)를 말한다. 이때 가운데 구멍은 주변보다 얇아야 한다. 고대인들은 옥을 대단히 중시했는데 화씨벽은 뛰어난 품질과 감동적인 일화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더욱 중시되었다. 때문에 진나라 왕이 15개성을 교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2) 由來(유래 yóulái):자고이래.
(3) 傳(전 chuán):유전되어 사람들이 알게 한다는 의미.
(4) 舊府(구부 jiùfǔ):옛날 근무했던 직장 또는 고향을 가리킨다.
【번역】
조 씨는 열다섯 성과 바꿀 수 있는 보옥으로
자고로 천하에 전해져왔네
옛 직장으로 돌아가는 그대를 전송하니
앞 시내에는 명월이 가득하구나.
【관련 일화】
이 작품은 양형이 조종(趙縱)이란 벗이 원래 근무하던 곳으로 떠나는 것을 환송하는 시다. 양형은 달빛 아래 벗과 이별하면서 마음속으로 느낀 친구에 대한 긍정과 기쁨, 보내고 싶진 않지만 또 앞날을 축복하고 싶은 그런 느낌을 시로 표현했다.
우선 “조 씨는 열다섯 성과 바꿀 수 있는 보옥으로 자고로 천하에 전해져왔네”를 통해 벗의 재주와 덕행을 긍정한다. 얼핏 보면 화씨벽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친구인 조종을 화씨벽에 비유한 것이다. 벽(璧)이란 아주 우수하고 아름다운 옥으로 만든 옥기를 말하는데 고대인들은 옥을 몹시 소중히 여겼다.
특히 옥에는 인(仁)・의(義)・지(智)・용(勇)・결(潔)의 5가지 덕이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천하에 이름을 날려 열다섯 성의 가치를 지닌 화씨벽으로 조종의 재주와 품덕(品德)을 비유한 것이다. 이런 칭찬은 양형이 조종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어서 “옛 직장으로 돌아가는 그대를 전송하니 앞 시내에는 명월이 가득하구나.”라고 노래해 먼 길 떠나는 벗을 축복하면서 석별의 정을 표현했다. 벗이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치 화씨벽이 조나라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원래 하던 익숙한 업무라 정치를 잘하면 백성들도 평안해질 것이다. 때문에 “앞 시내에는 명월이 가득하구나” 라는 표현으로 벗에 밝은 전도를 축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별은 늘 아쉬운 법이다. 이 명월(明月)과 흐르는 물을 통해 시인의 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비록 직접 걱정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내용이 나오진 않지만 이 작품을 여러 번 읽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정이 조용히 가슴에 가득찰 것이다.
여기서 양형이 화씨벽이란 전고(典故)를 도입부에 언급한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한 탁월한 선택이다.
첫째 친구의 성이 조(趙) 씨인데 역사적으로 화씨벽은 조(趙)나라 즉 조 씨와 관련이 있다.
둘째, 벗의 재주와 덕을 높이 평가해 사람 중의 호걸(豪傑)로 인정했기 때문에 화씨벽에 비유했다.
셋째, 화씨벽은 일찍이 조나라를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간 경력이 있는데 이는 조종이 원래 직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때문에 이런 전고는 오직 조종에 한해서만 적절하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이런 전고를 사용했다면 적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고전시(古典詩)는 이처럼 운율(韻律)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외에도 또 정경(情境)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매 한편의 시는 모두 감동적인 한편의 이야기다. 때문에 어떤 이는 “시는 완곡한 언어로 직접 말하진 않으면서 뜻을 다 담아낸다.”고 말했다.
여러분들도 세심하게 마음을 쓴다면 아마 이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48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