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사격(文思格)
【정견망】
가을밤에 홀로 앉아(秋夜獨坐)
왕유(王維)
홀로 앉아 양쪽 귀밑머리 슬퍼하노니
텅 빈 마루는 어는 덧 이경이 되어가노라
빗속에 산 과실 떨어지고
등잔 밑엔 풀벌레가 운다
백발은 끝내 다시 변하기 어렵고
황금(내단)은 이룰 수 없노라
늙고 병듦 없애는 법 알고자 한다면
오직 무생(無生)의 도를 배워야하네
獨坐悲雙鬢,空堂欲二更。
雨中山果落,燈下草蟲鳴。
白髮終難變,黃金不可成。
欲知除老病,唯有學無生。
【작가소개】
왕유(王維 700~761)는 자가 마힐(摩詰)이며 성당(盛唐)시기 위대한 시인・화가이자 음악가다. 그의 시는 표현이 정미하고 생생하며 참신하면서도 세속을 벗어나 독보적인 일가를 이뤘다. 그는 이흔(李欣), 고적(高適), 잠참(岑參) 등과 함께 ‘왕리고잠(王李高岑)’이라 불리는 변새시(邊塞詩)의 대표인물이다. 또한 맹호연과 함께 ‘왕맹(王孟)’으로 불리는 전원시의 대표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선시(禪詩)’에 있어서는 고금에 독보적이다. 소동파는 그를 가리켜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畫,畫中有詩)”고 평했다.
【자구해석】
이 작품은 시인의 유명한 선시(禪詩)의 하나다. 시인이 불가에서 수련하기로 결심하고 인간의 고해를 영원히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했다.
당(堂): 집안의 대청을 가리킨다.
이경(二更): 밤 9시부터 11시까지.
산과(山果): 산에서 나는 나무 열매.
초충(草蟲): 풀숲에 사는 작은 벌레.
황금(黃金): 여기서는 도가 연단 수련술 중 선약(仙藥) 또는 내단(內丹)을 말한다.
노병(老病): 늙고 병듦. 생로병사로 보기도 한다.
무생(無生): 불교 용어로 생멸(生滅)이 없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함을 말한다.
【시에 담긴 내포】
이 시는 언어가 너무 쉽고 분명해서 한번 읽기만 하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선(禪)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단지 문자표면만 분석할 수 있을 뿐이다. 시 전체를 크게 나누면 앞부분은 풍경을 노래했고 뒷부분은 이치를 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친근하고 세밀해서 생생하지만” 후반부는 설교조로 무미건조하게 보인다.
선을 어느 정도 이해하거나 심지어 직접 좌선(坐禪)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도 만약 일정한 층차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이 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가령 “빗속에 산 과실 떨어지고(雨中山果落)”는 요시공능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저 시인의 상상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또 “등잔 밑엔 풀벌레가 운다(燈下草蟲鳴)”에 대해서도 사실 당시에 아마 고요한 적정(寂靜)만이 있어 일반인이라면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어느 정도 경계(境界)에 도달하거나 또는 시인의 당시 수준을 뛰어넘는 사람만이 비로소 이 시의 경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후반 4구절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추론하고 이치를 설명한 부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시인이 직접 본 이미지를 묘사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으면 자신이 만진 것만이 진짜 코끼리라고 여기겠지만 정상인만이 코끼리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있고 그것도 한번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장님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거나 고심(高深)한 게 결코 아니다.
사람의 인식과 이해능력은 이처럼 자신의 생활경험과 지식배경 및 상상능력 등 요소의 제한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아마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초상적인 사물이나 현상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늘 자신과 그 어떤 사람이든 모두 동일한 감지능력이 있다고 가정(假定)한다. 이런 착오적인 가정이 바로 그들을 영원히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게 만들고 확실하고 확실하게 존재하는 다른 시공(時空)을 이해하고 인식할 소중한 기회를 잃게 만든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6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