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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시》─오언절구 (14): 역사를 노래하다(詠史)

글/ 정견 문화교재 편집소조

【정견망】

yǒng shǐ
詠史(영사)

shàng yǒu tí páo zèng,yīng lián fàn shú hán。
尚有綈袍贈(상유제포증),應憐范叔寒(응련범숙한)。

bù zhī tiān xià shì,yóu zuò bù yī kān。
不知天下士(부지천하사),猶作布衣看(유자포의간)。

【작가】

고적(高適)은 자(字)가 달부(達夫)이고 당나라 발해현(지금의 하북성 경현景縣)사람이다. 측천무후 장안 2년(702년)에 출생해 대종(代宗) 영태(永泰) 원년(765년) 사망했다. 향년 64세.

고적의 가문은 대대로 관리를 지냈지만 그는 젊었을 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과거에 실패하고 종군(從軍)에서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생활이 가난하고 고생스러웠다. 그러다 오십이 넘은 늦은 나이에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아 하서 및 농우절도사로 있던 가서한(哥舒翰)의 막료가 되었다. 이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청운의 뜻을 이뤘고 나중에 발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졌다. 죽은 후에는 또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었다. 시인이 이렇게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고적은 정직하고 열정적이면서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젊어서 가난, 실의, 전쟁 등을 두루 겪었기 때문에 그의 시는 강개하고 호방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가 사용하는 시어(詩語)는 폐부를 직접 찌르면서도 아름다운 운율을 지녀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주석】

(1) 尚有(상유 shàngyǒu):그래도, 여전히.

(2) 綈袍(제포 típáo):굵은 실로 짠 외투로 주로 방한용.

(3) 范叔(범숙 fànshú):전국시대 위나라 사람 범저(范雎)를 말한다. 그의 자가 숙(叔)이라 범숙으로 불렸다. 범저는 일찍이 위(魏)나라의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문하에 있었다. 한번은 제나라 사신으로 가는 수가를 따라 제나라에 갔는데 제나라 군주가 수가는 만나주지 않으면서 범저의 언변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범저에게만 따로 황금과 먹을 것을 주었다. 수가가 이를 알고는 범저가 위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여겨 크게 화를 냈다.

그는 위나라로 돌아온 후 이 사건을 위나라 재상에게 알렸고 범저는 체포되어 거의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받았다. 나중에 범저는 가까스로 위나라를 탈출했고 진(秦)나라로 도망가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꿨다. 진나라 왕을 섬겨 중용되었고 나중에 진나라 재상 자리까지 올라갔다.

막강한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자 위나라는 수가를 사신으로 파견해 평화협상을 하게 했다. 범저는 수가가 사신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떠보기 위해 일부러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수가를 찾아갔다. 수가는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아직도 이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는 연민의 정을 느껴 외투를 선물로 주었다. 나중에야 범저가 바로 진나라 재상 장록이었음을 알게 된 수가는 깜짝 놀라 범저를 찾아가 자신의 죄를 청한다. 하지만 범저는 수가에게 아직 옛 정이 남아 있음을 알고 예전의 원한을 따리지 않고 그가 위나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했다.

(4) 士(사 shì):덕과 재능이 있는 사람.

(5) 布衣(포의 bùyī):베로 만든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 즉 관리가 아닌 일반 백성을 말한다.

(6) 看(간 kān):지금은 4성으로 읽지만 당나라 때는 1성으로 읽었다.

【해석】

그래도 친구라고 외투를 선물했으니
응당 범숙을 가난하다 여겼겠지
천하의 위대한 선비를 몰라보고
오히려 평범한 서민으로 보았네

【관련일화】

이 작품은 고적이 《사기‧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을 읽은 소감을 노래한 것이다. 그는 수가의 행동에 대해 칭찬과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일부러 낡고 헤진 옷을 입고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가장하고 찾아온 범저를 보고 수가는 속으로 옛일을 떠올리며 동정심이 생겨 그에게 먹을 것과 함께 외투를 챙겨준다. 여기서 시인은 수가에 대해 부유하지만 가난한 옛 벗에게 연민의 정을 지닌 따뜻한 사람으로 보았다. 때문에 시의 앞부분 두 구절에서 수가를 칭찬한 것이다.

하지만 수가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낮아 진나라 승상 장록이 바로 범저란 사실을 몰랐다. 시인은 이에 대해 수가가 겉으로 나타나는 의복만 중시하고 그 사람이 어떤 인재인지는 몰라봤다며 넌지시 비판한다. 범저와 같은 인재를 두 번이나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는 없었어야 한다. 때문에 시인은 뒷부분 두 구절로 드러내지 않고 수가를 비판했다.

이 시는 단순히 한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며 사람들에게 평소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을 지녀야 하며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함을 알려준다. 고적 자신이 바로 이런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는 과감한 직언이 있어 그의 시를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진취적이면서 반성하는 정신을 갖게 된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48566